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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고승이 펼치는 활인검 세계

  • 불서
  • 입력 2016.07.26 13:23
  • 수정 2020.09.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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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인문학’ / 김현용 지음 / 안티쿠스

'스포츠 인문학'
'스포츠 인문학'

불살생을 지향하는 불교와 생명을 살상하는 검은 상극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불교문헌에는 종종 검이 등장한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과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그것이다. ‘벽암록’에도 ‘바람에 날아온 머리카락이 칼에 베였다’는 전설의 명검인 취모검이 등장한다. 선에서 검은 어떤 번뇌망상이라도 잘라낼 수 있는 예리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선의 역사에서 검은 상징성을 넘어 현실세계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특히 사무라이의 나라인 일본에는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말이 널리 회자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스포츠 인문학’은 일본 선승인 다쿠앙 소호(澤庵宗彭, 1573~1645) 스님이 1638년경 검술가 야규 무네노리(1571~1646)에게 보낸 서간문인 ‘부동지신묘록(不動智神妙錄)’을 번역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이한 책이다. 다쿠앙 스님은 전란이 끊이질 않던 전국시대에 일본 무도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종래의 전투 기술인 무술에 철학을 부여함으로써 무술을 인격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무도로 승화시킨 고승으로 일컬어진다.

미야모토 무야시의 ‘오륜서’와 쌍벽을 이루는 무도서인 ‘병법가전서’를 쓴 야규 무네노리와 다쿠앙 스님의 관계는 첫 만남부터 흥미롭다. 행각 중이던 다쿠앙은 우연히 선착장에서 무네노리를 만났다. 무네노리는 그곳에서 행패를 부리던 사무라이를 혼내주고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다쿠앙 스님은 선착장 옆의 밭에서 채소를 뽑고 있었다. 스님을 본 무네노리는 순간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나면서 칼집을 잡았다. 다쿠앙 스님에게서 강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무네노리에게 다쿠앙 스님이 말했다.

“당신이 살기를 느낀 것은 당신이 스스로 만든 환영일 뿐이오. 항상 상대에게 이기려는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마음이 항상 강해질 수밖에 없소. 더 약해지시오. 상대에게 이기는 것보다 우선 자기에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하오.” 이 말에 무네노리는 크게 깨닫고 다쿠앙 스님에게서 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선과 화엄, 그리고 검에 정통했던 다쿠앙 스님은 평생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인연 따라 사람들을 일깨우며 걸림 없는 삶을 살았다. 특히 스님이 남긴 ‘부동지신묘록’은 살생의 도구였던 검을 스스로의 진면목을 깨우치도록 하는 활인검으로 이끈 명저다. 다쿠앙 스님은 ‘부동지신묘록’의 첫 시작에서 ‘상대에 대응해서 움직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 교육학 박사이자 대한무도학회 이사인 저자가 일본 중세시대의 선승인 다쿠앙 소호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했다. 그림은 다쿠앙 스님 자화상.안티쿠스 제공

“불법 수행에는 52개 경지가 있는데, 그 중 마음이 어딘가에 머무는 상태를 주지(住地)라고 한다.… 이를 병법에 비유해 말하자면 만일 상대가 휘두른 칼을 보고 즉시 이에 대응하고자 할 때 상대의 칼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결국 상대의 칼에 베일 것이다. 이는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휘두른 칼을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보긴 보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뺏기지 말란 뜻이다. 상대의 박자에 맞춰 반격하려 들지 말고, 상대의 칼을 봄과 동시에 뛰어들어 그 칼을 낚아채 빼앗는다면 상대의 칼은 오히려 상대를 위협하는 칼이 될 것이다.”

저자는 다쿠앙 스님이 쓴 원문을 번역한 뒤 다시 알기 쉽게 해설한다. 교육학 박사인 동시에 대한무도학회 이사, 재일본대한검도회 이사 등을 지낼 정도로 검도에 능한 저자의 설명은 비범하다. 다쿠앙 스님이 말하는 ‘부동(不動)’이 ‘화엄경’의 ‘십지품’에 나오는 용어임을 자세히 설명한 뒤 이것이 ‘한 번 치고 들어갔다면, 실패할지 성공할지에 마음을 두지 말고 마음을 무(無)로 해 성공할 때까지 여러 번 치고 들어가는 중요함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부동지신묘록’ 원문에는 미혹되지 않는 법, 적이 10~20명일 때 상대하는 법, 부동지를 익히는 법, 손과 발이 기억하게 연습하는 법, 간발의 차이도 허락하지 않는 법, 전광석화의 기회를 살리는 법, 마음을 그 어디에도 두지 않는 법 등 검술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적’을 ‘번뇌’라는 말로 치환하면 곧바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론으로 연결된다. 다쿠앙 스님에게 검도는 살육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무사들로 하여금 칼끝을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도록 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전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 일본의 역사와 무도정신, 병법과 불교사상 등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할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시퍼런 칼날이 번득이고 생사가 갈리는 검의 세계 한복판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았던 고승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1만48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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