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판적 지식인의 거침없는 한국불교 비판

  • 불서
  • 입력 2016.08.16 10:49
  • 수정 2016.08.16 10:51
  • 댓글 143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 강병균 지음 / 살림

▲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인 저자의 불교 인연은 깊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혼자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할 정도였지만 갈수록 신앙은 그에게서 멀어졌다. 강요된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이다. 1976년 그는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해 신심 깊은 불자 친구를 만나며 불교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무조건적인 믿음보다 진실에 부합하면 따르라’고 말한다는 점이 크게 와 닿았다.

과학에 근거해 참나·윤회설 지적
스님들 육식문화도 노골적 비판
종교적 체험·상징 희석될 수도

이후 숱한 불경과 불교서적을 읽었으며,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가 삼천배를 하고는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도 받았다. 1984년 미국 유학시절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2시간씩 참선하는 등 지금까지 30여년 넘게 수행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가 1987년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논문 앞쪽에 부모나 배우자가 아닌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상가에 바친다’는 헌사를 써 화제가 됐다. 때로는 몇 달 씩 매일 새벽 목탁을 치며 ‘금강경’을 독송하거나 스스로 집중수행기간을 정해 대여섯 시간씩 정진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려 애쓰는 채식주의자다.

저자가 ‘불교닷컴’ 등에 기고한 글들을 엮어 펴낸 이 책은 감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전 세계 수학자들을 괴롭혀오던 난제를 여럿 풀 정도로 뛰어난 학자인 그가 생물학, 뇌과학, 물리학 등 과학 전반에 정통한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는 물론 온갖 동서양의 종교사상과 문화를 비롯해 철학, 문학, 역사학, 인류학 등에 대한 탁월한 이해는 놀라울 뿐이다. 520여쪽의 두툼한 볼륨에도 때때로 숨 쉬고 있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 것도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논리력에서 비롯된다. 새롭고 흥미로운 주장과 기록들이 펼쳐지는 데다가, 웬만한 전업 작가 못지않은 글쓰기 실력도 가독성을 크게 높인다.

그렇다고 여느 불서들처럼 신심 나거나 불교를 찬양하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불자라면 이 책을 ‘편안히’ 읽어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저자의 글은 잘 벼려진 시퍼런 칼날 같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사유에 근거해 종교가 지닌 비합리성과 부정적인 면을 혹독히 지적하고, 때로는 무자비할 정도로 메스를 들이댄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현대 고승들이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스님들까지 예외는 없다.

▲ 저자인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저자는 무아를 주창해야 할 스님들이 공공연히 참나(眞我)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매섭게 질책한다. 참나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힌두교의 아트만에 해당하는 것으로 참나가 되자는 주장은 무정물이 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는 단멸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맡기라’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도 곤경에서 구해주는 것도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스님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라”는 유일신교의 신앙고백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또 스님들 사이에 확산되는 육식문화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스님들이 식당에서 고기와 회를 먹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으며, 심지어 절에서 고기요리를 하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아침저녁으로 목어, 북, 운판을 치면서 중생구제를 발원하고, 자비로운 아버지인 ‘사생자부(四生慈父)’ 부처님을 큰 소리로 부르며 예불하는 것은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윤회론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이다. 윤회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윤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오히려 윤회론이 사회적인 무책임을 조장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인류가 짧게는 수십만 년에서 길게는 35억 년 동안 삶과 죽음의 투쟁 속에서 축적한 ‘삶과 죽음의 지혜’가 종교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단지 환망공상만 제거하면 그 지혜와 대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학은 생명, 우주의 기원, 작동원리를 밝힘으로써 사람들이 미신에 빠져 불행해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강조한다.

‘불교는 과학’이라는 저자의 이번 비판이 사상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불교계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과학적인 사고를 앞세워 종교적 체험과 상징성을 걷어내고, 불교 전반을 평가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직접 실명으로 거론되며 우매하거나 비불교적인 인물로 낙인찍힌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확산도 다소 우려스럽다. 저자는 ‘진리를 논함에 있어 계급장이 없다’지만 서울대와 미국박사, 게다가 유명대학 교수라는 사실 자체가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엄청난 계급장이기 때문이다. 2만3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