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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삶과 역사로 이끌어내는 사색의 힘

  • 출판
  • 입력 2016.08.23 13:46
  • 수정 2016.08.29 14:15
  • 댓글 0

‘깨달음과 역사’ / 현응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깨달음과 역사'
불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이다. 1600년 전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절에서 생활했듯 오늘날에도 일정한 습의과정을 거친 스님이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일상을 지낸다. 이러한 전통의 무게는 승가라는 공동체에 동질성과 일체감을 갖도록 하며, 개인에게는 말, 행동, 생각은 물론 젓가락을 쥐고 놓는 일까지 영향을 준다.

전통적인 불교 개념 재해석
깨달음에 대한 파격적 주장
진지한 사색 돋보이는 역작

하지만 전통은 때때로 심각한 무기력을 동반한다. 익숙함에 순응하고 이질적인 것에 불편해 한다. 그러다 보니 전통은 개개인을 매너리즘에 빠뜨리고 정체되도록 하기 십상이다.

저자도 표면적으론 전통불교의 영향 아래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스님이다. 17살에 해인사로 출가해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봉암사, 해인사 등 선원에서 정진했으며, 승가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이렇듯 전통의 훈습 아래 살아왔지만 저자를 유별나게 만든 것은 전통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는 깊은 사색과 생각의 유연성이다.

저자는 가장 익숙한 행동과 개념들에 대해 숙고하고 되묻고 따져나간다. 기라성 같은 해인사의 선승이나 강백들의 권위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찰한다. 익숙하지만 정작 설명하려면 한없이 모호한 마음, 부처, 중생, 연기, 공, 윤회, 대승, 소승, 보살, 방편, 무심, 돈오, 회향, 정토, 왕생 등의 개념을 원점에 놓고 차근차근 따져나간다. 그렇게 도출된 저자의 불교 이해는 기존의 불교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수의 견해와 다르다 보니 반발과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근간을 돌아보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 저자는 대승불교승가회, 선우도량 등 단체를 결성해 한국불교의 변화를 주도했으며, 2009년부터 조계종 교육원장을 맡아 이 시대에 부응하는 승가교육개혁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삶과 역사의 문제를 껴안고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물이다. 맹목적인 깨달음만 추구하면서 삶과 역사에는 무관심한 불교를 ‘가난한 불교’라고 규정한 저자는 다양한 논의를 통해 불교를 다시 삶과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낸다.

‘깨달음과 역사(Bodhi & Sattva)’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핵심 개념은 보살(보디사트바)의 구성요소인 ‘보디(깨달음)’와 ‘사트바(역사)’다. 여기서 깨달음은 초인적인 능력을 얻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내다보거나 물 위를 걷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포교나 봉사를 수행으로 삼겠다고 해서 저절로 깨달아지지 않는다. 그것을 추구하는 시간과 노력의 많고 적음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깨달음은 변화와 관계성의 법칙, 즉 공(空)의 시각으로 삶을 통찰하는 일이다. 모든 삶과 존재들은 물론 깨닫는 주체 역시 비실재적(무아)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항상 변화(무상)하는 가설적이고 환상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와 올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선정이나 삼매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 “불교의 요체는 ‘이루는 깨달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깨달음’에 있다” 등 파격적인 주장도 저자의 이러한 평소 신념에서 비롯됐다.

깨달으면 세상일도 다 알고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풍토에 대한 저자의 비판도 흥미롭다. 바둑돌에서 돌의 색깔과 질감이 다른 차원이듯 깨달았다고 현실적인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으로 훌륭한 업적으로 남겼다고 깨달음이 절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유독 방편바라밀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시(베푸는 일), 지계(도덕적 규범의 실천), 인욕(참는 일), 정진(노력), 선정(집중하는 맑은 정신), 반야(존재의 속성을 통찰하는 지혜) 바라밀은 소승의 영역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여기엔 구체성(역사)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곱 번째 바라밀인 ‘방편’이 육바라밀과 결부될 때 비로소 대승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으며, 공성에 대한 투철한 이해를 토대로 방편바라밀을 활용해 깨달음과 역사를 통합시키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고 말한다.

윤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도 눈길을 끈다.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거나 심지어 개로 태어나고 비둘기로도 태어나는 생명의 쳇바퀴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生萬死)’이라는 염불구절처럼 하루에도 수만 번 나고 죽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윤회의 실상으로, 윤회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일컫는다고 설명한다.

1990년 초판이 나온 이래 이 책은 개정판을 거치며 불교인들의 안목을 열어주었으며, 논쟁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다. 지금도 저자의 불교이해에 반발하거나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더라도 승가에서마저 명예와 이해관계가 주된 화제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세태에서 불법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노력은 찬탄받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한국불교의 변화를 이끌고, 생기를 잃어가는 불교전통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1만7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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