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모순의 삶
33. 모순의 삶
  • 성원 스님
  • 승인 2016.09.12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깨어나 이 가을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새벽에 도량석 소리에 앞서 잠을 깼습니다. 간밤에 창을 열어놓고 잠들었는데 창문 너머로 넘치게 밀려들어온 가을 찬 기운이 잔뜩 오만한 기세를 띄우며 잠을 깨웠습니다. 창을 닿으며 바라보니 어둠 사이로 가을 기운이 가득 밀려옵니다.

전도된 생각으로 힘든 상황에도
우리는 스스로 극복하지 못해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간 곳에서
자꾸 무언가 찾고 있는건 아닌지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의 무더운 추억들을 채 접지도 못했는데 추분이 지났다고 가을 기운이 주인인 양 너무 활기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본적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불자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불자들이 스님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세대’라고 한 말이 자꾸 되새겨집니다. 현각 스님의 각성을 요구하는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파가 엄습하는 것만 갔습니다. 최근 용주사 건을 다루던 법원이 결국 비구승에게 유전자 감식을 하라는 판결을 내려 교계는 몹시 어수선했습니다. 정말이지 불자들이 승가를 염려하고 충고해야만 하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져 가고 있습니다.

아픈 환자에게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병에 관한 일은 차라리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사실을 숨기기가 다반사입니다.

오늘 약사재일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목욕하여 육신의 몸을 깨끗이 하고, 약사여래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삼아 흐트러진 우리들의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날입니다.

대부분 목욕재계라는 말을 누구나 자주 사용하면서도 사찰에 가서 불공 올리는 재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께서 고쳐주시려 하는 중생의 병은 육신의 병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송에 보면 ‘중생전도병근심(凡夫顚倒病根深) 불우약사죄난멸(不遇藥師罪難滅)’이라 했습니다.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병들어 고생할 때 약사여래를 만나지 못하면 능히 죄를 소멸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된 그 현상들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고, 분노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떤 사회적 문제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견해만 있고 그 견해를 지지하는 구성원들의 비율이 높으면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활개를 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당시 대부분의 사회분위기는 다출산, 즉 많은 자녀를 두는 것을 복덕으로 여겼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저의 탄생은 온전한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학교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정부의 산아제한 운동이 전개되면서 형제자매가 많은 것이 참으로 부끄러워졌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산아제한을 독려하는 표어들이 넘쳐 났습니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표어와 더불어 훨씬 자극적인 표어도 생각나네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당혹스러운 표어까지 걸고서 우리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들었던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출산은 공공의 적이라는 인식을 반도의 착하디착한 온 백성에게 주입시켰습니다. “정부의 많은 시책 중에 너무 잘해서 실패한 것이 있는데 바로 산아제한운동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잘하는 것도 때로는 더 큰 모순을 낳나 봅니다.

언젠가 일입니다. 보건복지부 출산 장려 계몽운동을 하고 있다면서 ‘한 가정 2인 이상 갖기를 권유 해달라’는 통지를 받고 얼마나 웃었던지 모릅니다. 산아제한운동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우리 세대에게 산아촉진정책을 홍보하라고 하니 정말 코미디에나 나올법한 일이 우리 대한민국 백주대낮의 현실에서 직접 나타났답니다. 사람들에게 출산을 장려하면서 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도무지 무엇인지, 자꾸 웃음만 나왔답니다.

이렇듯 정의와 비정의가 정말 완전히 뒤집어지는 일이 우리의 한 생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찌 이 일 뿐이겠습니까?

이야기가 좀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왕 우리들 앞에 펼쳐져가는 모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한가지 만 더 해보겠습니다. 예전 법타 스님께서 일찍이 북한 동포돕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너무 일찍 북한에까지 다녀왔었는데 당시 국가정보기관에 감금되어 심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져서 지난 날 스님을 고초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에 관해 강의를 하는 강연회에 초청이 됐다고 하니 이일 또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회의 정의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무엇을 기준 삼아야 할까요? 우리들 현실에 펼쳐지는 이러한 일들을 우리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전도된 생각 탓이라고 인정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모순 앞에 명백히 정의로운데 말입니다. 전도된 생각에 스스로 힘들어 하면서도 우리들 자신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명백합니다. 스스로 모순을 인정하고 약사여래부처님께 깊이 귀의심을 내고 싶은 하루입니다.

오죽했으면 우리들이 현재 살아가는 세상을 모순의 세계, 즉 모순을 참고 인내해야 하는 사바세계라 했을까요? 부처님 가르침의 손길을 놓지 말아야 할 텐데 그야말로 현대사회는 그 자체가 모순의 정점에 서 있는 것만 같습니다.

갑자기 다가오는 낯설기만 한 계절의 문턱, 부적응의 현실 앞에서 자꾸만 계절을 탓하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전하고 싶어 하는 환절기에 우리들이 배워야 할 일들이 넘치도록 많은데도 우리들은 자연의 흐름이 주는 가르침을 완전히 등지고 무언가 인위적 조작이 들어간 곳에서만 자꾸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찬바람에 깨어버린 잠은 이제 다시 잠들고 싶지 않습니다. 계절이 지날 때 찬바람이 잠자는 나를 깨웠던, 가을 하늘 날카로운 별빛이 나를 깨웠던, 이제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는 여름으로 돌아가지 않는 계절처럼 저도 과거의 달콤함으로 빠져 들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낯설기만 한 또 한 번의 가을이 다가 왔습니다.

계절은 쉼 없이 우리들을 자극하면서 잠들어가는 우리들을 깨우려 하고 있는데 저의 의식은 스스로 자꾸만 잠들어 있고만 싶어하는 듯합니다. 이제 깨어나 이 가을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