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의 만남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암자를 오가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늘 두 손에는 보시물을 들고 걸어서 산사를 향하는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참 예뻐해 주셨던 스님들의 미소도 떠오른다.
하지만 결혼 후 나의 삶은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달기 위해, 연등 구경을 하기 위해 절에 오르는 무늬만 불자였다. 막연하게 불교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만 앞섰지 쉽게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신도들의 사주를 봐주는 어느 작은 암자에서도 이왕이면 경전 공부를 하라고 당부하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을 쳤다. 그리고 얼마 뒤, 늘 다니던 집 가까운 한 가게에서 우연히 반야원(지금의 대광명사)의 사보 ‘아름다운인연’을 보고 망설임 없이 불교대학에 등록한 것이 2007년 3월이었다.
첫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행복함을 느낀 것 같다. 진작 해야 할 일을 이제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쉼 없이 공부에 몰입했다. 불교대학에 들어간 지 두 해가 지나고 반야원이 대광명사로 새 둥지를 틀었다. 이번에는 무작정 참선반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참선이 어떤 수행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절에서 하는 활동이라면 일단 동참하고 볼 일이라는 입장에서 참 겁 없이 시작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가슴을 친 단어가 ‘내 안에 부처’가 있다는 표현이었다. 점검해주신 주지 목종 스님과 지도해 주신 진희 보살님께서는 누구나 갖추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고 믿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러면 언젠가는 체험하고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수행에 서서히 물들어갈 수 있었다.
참선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나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급한 성격인 데다 무엇인가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입장이었다. 처음 안거를 시작하고서 도반들과 자기 경험을 얘기하며 토론할 때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내 모습에 감사하기도 했다.
특히 도반들과의 토론 시간은 큰 도움이 됐다. 대화를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이때부터 나를 없애는 공부는 모든 걸 내려놓는 공부라는 각오가 생겼다. 자존심, 부끄러움 등은 나의 반성으로 생각하고 ‘여태 살아온 내 모습은 잘못된 것이었구나, 모든 게 나의 고정관념이었구나’라는 생각에 거듭 참회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이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이 들 때는 ‘아! 나도 몰랐을 땐 저렇게 살았겠지’ ‘나의 지나간 모습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고, 상대방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고 보이면 ‘몰라서 그러지 알면 그렇게 하겠는가?’라며 다시 마음을 평정심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렇게 조금씩 성숙해지는 나의 모습에도 거듭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수행을 이어가던 중 우리 가족에게 힘든 시련도 있었다. 아마 참선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때의 힘든 상황을 어떻게 견뎠을지 먹먹하다. 결국 더 벌기 위해서 부린 욕심이었다. 사업이 실패했고 말 그대로 빚더미에 앉았다. 처음에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참선 공부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돌이키던 마음을 내가 처한 상황에 비추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1361호 / 2016년 10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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