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무원으로 일하면서도 나는 특히 청년 불교에 애정을 가졌다. ‘청년불교운동 활성화는 포교의 희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청년 불자들의 활동에 대한 긍정적·부정적인 성과를 소상히 평가해 대안을 제시했던 일은 나름의 호응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항상 무엇인가가 아쉬웠고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싶다는 원력을 품고 있었다.
대한불교청년회 서울지구 회장 소임을 역임한 후인 2003년경, 나는 포교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시험을 통과해 2004년 2월 일반포교사(9기)로 품수 받았다. 당시 조계사청년회장이던 정우식(8기) 포교사와 구룡사청년회장 출신 김영만(1기) 포교사 등 열정 있는 이들과 함께 청년포교사 양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논의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지금도 조계사 청년회와 서울지역 사찰청년회 회원들이 포교사가 되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할 따름이다.
2009년부터는 군포교팀 소속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군법회의 실상은 너무나 열악했다. 매주 둘째 주 일요일 법회를 맡아 빵과 과자를 간식으로 제공해도 장병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능한 장병들의 마음에 와 닫는 생활법문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군포교 활동을 지속하면서 훈련 중 다치거나 아픈 장병들에게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가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총기난사 사건, 28사단 윤일병 사건 등 비상사태가 생각 이상으로 군장병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점도 알게 됐다. 종교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안을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지면을 빌어 군종교구 소속 군법사님들과 포교사단 군포교사, 대불련동문회, 동국대대학원법사단 등 군부대에서 민간인성직자 활동을 하는 분들이 현장 경험을 담아 군장병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통일된 법문안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생명평화를 위한 1000일 정진 결사’에 동참한 경험은 나의 본래 마음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불자란 기도하는 삶을 동반해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마음의 본래자리를 올곧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교사라는 신분으로 예참의를 입고 내 근기에 맞는 방법으로 정진하노라면 늘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가족과 매주 일요일 재적사찰인 화계사를 다니는 것은 종단에서 종사하는 종무원으로서, 또 불자로서 꾸준히 지켜온 원칙이다. 사시불공이 끝나면 나는 일요법회에 참석해 신규 법우들을 위해 사찰안내를 한다. 15기 포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는 화계사어린이회 자모회에서, 두 아들은 어린이회와 학생회에서 활동한다. 아내는 삼성암어린이회 지도포교사이기도 하다.
“부처님 세상과 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서원으로 가족과 함께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행복해지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직장과 사회가 행복해지면 온 세상이 살기 좋은 불국토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정리=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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