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의 근원을 더듬다 보면 대표적인 식재료로 콩이 나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효음식인 된장이나 두부 등의 원료이기도 하고, 전체 곡식을 상징하는‘오곡(五穀)’중의 하나이기도 하여 콩을 빼고는 우리 음식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하여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콩을 귀하게 여겼는데 새해 들어 처음으로 오는 쥐날(子日)인 ‘상자일(上子日)’에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경계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큰 솥에 콩을 볶으며‘쥐알, 콩알 볶아라’라는 주문을 외었다.
한편 그렇게 볶은 콩을 주머니에 담아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는데 이에 유래하여 대궐에서는 오색실을 매단 주머니를 만들어서 나눠주었다. 이 날 뿐만 아니라 새해 첫 돼지날(亥日)에도 콩을 볶아 한 알씩 종이에 싸서 주머니에 넣은 후 이를 종친들에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이 모두 콩의 신이함을 믿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절에서도 콩을 단순히 먹는 음식으로만 여기지 않고 교화의 한 방편으로 삼기도 하였는데 ‘동국세시기’의 ‘초파일조’에 평소 염불을 하며 숫자를 헤아릴 때 썼던 검은 콩에 소금을 넣고 볶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이를 ‘인연맺기’라고 하였다는 기록이나, 청나라 세시풍속기인 ‘제경세시기승’에 초파일날 소금에 절인 콩을 나눠줬는데 이를 ‘보결랑연(普結良緣)’, 즉 두루 좋은 인연을 맺는다고 하였으니 우리와 다르지 않은 풍속이라 하겠다.
또한 ‘삼국유사’의 ‘혜통항룡(惠通降龍)’조를 보면 혜통국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던 시절 교룡(蛟龍)이 일으킨 공주의 병을 치유할 때 흰 콩과 검은 콩을 신병(神兵)으로 화하게 해서 교룡(蛟龍)을 쫓아냈던 일화가 나오는데 이 또한 콩을 범상치 않게 여겼던 상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음식문화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불교 교화의 주요 수단이기도 한 콩의 고향은 우리나라와 만주일대이다. 그래서 수천종의 다양한 콩들이 이 땅에전해져 왔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비잡이콩, 푸른콩, 어금니동부, 호랑이강낭콩, 줄강낭콩, 작두콩, 제비콩, 흰양대, 귀족서리태, 오리알태, 개골팥 등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토종 콩들이 지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콩 자급율이 약 5%정도이고 9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수 천종에 달했던 토종콩 보존 종자 수도 약 110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늦게 재배를 시작해서 불과 200여년 만에 세계 콩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대두콩만 약 1만7000여 종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 중 3700여 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하니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미국식 단일품종 대량농업방식의 폐해를 막고 다양한 토종종자 보존을 위한 노력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데 세계 최대 종자보존시설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씨앗 저장고’라든지 1996년도부터 ‘슬로푸드국제협회’에서 토종자원 보존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맛의 방주’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맛의 방주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4000여종이, 우리나라는 제주도 푸른콩과 어금니동부콩을 비롯해 약 55종이 등록되어 있다.
콩은 한자로 원래 ‘숙(菽)’이라 하였다. 우리가 흔히 숫기가 없거나 어리숙한 사람을 ‘숙맥’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콩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적 질서가 작용하기에 한 알의 콩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우리는 삼시세끼마다 우주의 경이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 한 톨이 지닌 진정한 무게를 알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숙맥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총괄부장 yskemaro@templestay.com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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