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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내일을 생각하는 소비

기자명 최원형

소비 속도 늦추는 것만이 쓰레기양 줄일 수 있어

‘기변’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난 글자가 있다. 그 뜻이 뭘까 궁금해 하다가 우연히 휴대폰 가게 앞에 붙여진 광고를 읽고서야 기기변경의 줄임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과장을 좀 보태어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팔아야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니까. 관건은 소비자가 ‘많이’ 사줘야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런데 어지간한 가전제품은 소비자가 이미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해결은 의외로 쉽다. 현재 갖고 있는 가전제품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된다. 그 문제라는 것이 비단 고장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미 유행이 지난 것도 이 ‘문제’에 속하게 된다. 이런 걸 일컬어 ‘상징적 진부화’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상징적 진부화를 맞이할까? 가장 가깝게 광고를 통하면 된다. 필요에 의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제품을 뭔가 부족한 듯이 만들어버려서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데 광고만한 게 또 있을까?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된 새로운 제품을 알리는데도 광고는 요긴하다. 집안에서는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등을 통해 광고가 쏟아져 들어오고 길을 나서면 지나다니는 버스, 택시 등 차 바깥에 붙이고 다니는 광고들, 눈을 어디에 두든 그곳에서 쉴 새 없이 광고들이 속삭인다. 이게 당신의 품격을 높일 거니까, 어서 소비하라고!

가전제품은 나날이 기술의 진일보와 함께 새록새록 편리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게 제품의 수명은 갈수록 짧다. 왜 일까? 이미 제품 설계 때부터 몇 년 사용하면 고장이 나도록 계획되어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계획된 진부화도 역시 물건을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일종이다. 제품 생산라인을 몇 년 안에 멈춰 버려서 부품만 교체하면 충분히 오래 쓸 수 있는 물건도 결국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니 계속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다. 이런 전략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패러다임이 굳건할 수 있는 구조를 영속화시키려 한다.

가끔 어마어마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를 보고 있자면 지구에서 꺼내 쓰는 자원이 유한하다고 하는데 어딘가에 화수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거기다 쓰고 버린 쓰레기들은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은 월드컵 경기장으로 바뀐 서울 상암동 일대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 산이었던 곳이다. 물론 그곳 땅 속에는 여전히 쓰레기들이 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이 쓰다 버린 전자제품 쓰레기들이 가나 등 서아프리카로 모인다. 가나 수도인 아크라 인근 한 마을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 가전제품은 부품들의 재료뿐만 아니라 전선 납땜 등으로 인해 각종 중금속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그게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오염을 전제로 한 것이다. 돈 될 것을 찾느라 모여든 그곳 주민들은 폐 제품에서 구리나 금속 등을 건지려고 폐 제품을 태운다. 그런데 소각에 쓸 땔감이 없어 폐타이어 등을 쓴다고 한다. 폐 가전제품과 타이어가 탈 때 나오는 유독가스는 공기를 오염시킨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건강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 나라는 현재도 미래도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선진국들이 쓰고 버린 폐전자제품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린 저개발 국가들의 슬픈 현실이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가전 쓰레기는 매년 5천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저개발국가로 흘러들어가 그 일대 토양을 오염시키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오염시킨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성이 강한 지정폐기물 매립지가 전국 곳곳에 주민수가 적고 주로 노인들만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소외된 지역은 도시의 쓰레기장이 되고 저개발국가는 선진국의 쓰레기장이 되어야 하는 게 윤리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의 속도를 늦춰 쓰레기양을 줄이는 것 말고 답이 있을 수 없다. 물건을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이 물건이 없다면 생활이 불가한지, 누군가와 함께 쓰는 걸로 해결이 가능한 건 아닌지를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물건이 있어서 필요성을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되니까. 내 돈 주고 물건 사는데 왜 골치 아프게 그런 고민까지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물건은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고 그 쓰레기가 누군가에게 불행의 시작이고 결국 우리 모두의 재앙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니 미래의 쓰레기를 만드는 소비에 앞서 백번 고민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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