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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결제 법어]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6.11.15 16:26
  • 수정 2016.11.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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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정진 미루면 일생 동안 허송세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금일(今日)은 병신년(丙申年) 동안거 결제일(冬安居 結制日)이라. 이 삼동구순(三冬九旬)의 결제기간 동안 대중들이 모인 것은 모든 반연(攀緣)을 다 끊고, 시비분별을 내려놓고 오직 각자가 대오견성(大悟見性)을 위함이니, 대중들은 오로지 화두정진에만 몰두하여야 할 것이라. 이 일을 조금이라도 미루는 마음이 있다면 벌써 십만팔천리나 어긋남이로다. 만약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이 달에 못하면 다음 달에 하지’ ‘금년에 못하면 다음 해에 하지’ 하는 생각이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생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게 됨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이 한 철에 반드시 견성(見性)하리라는 각오로 일각일초(一刻一秒)도 허비하지 말고 화두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 이 귀중한 시간, 오늘이라는 날은 다시는 오지 아니함이로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곧 시시각각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니, 누구라도 마음광명을 밝히는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염라대왕의 추심(推尋)을 피할 길이 없음이로다. 그러나 이 일을 분명히 밝혀서 자기의 마음광명을 본 사람에게는 생사의 괴로움이라는 것이 원래 없는 법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은 오직 마음의 빛을 돌이켜서 대오견성하겠다는 대발심(大發心)과 대용맹심으로 각자(各自)의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겨 화두(話頭)의심이 지속되게끔 혼신의 노력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기 바라노라. 금생(今生)에 견성(見性)하지 못한다면 불견성법(佛見性法)을 어느 생(生)에 또 만날 수 있으리오.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볼지어다.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하루에도 천번 만번 챙기고 의심하고 의심할 지어다.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이후로 무수한 도인(道人)들이 배출되어서 멋진 법거량(法擧揚)을 많이 하셨으나, 그 가운데에 다음의 대문(大文)을 들어서 진리의 법문을 공양 올리니 잘 받아 가지소서.

옛날 중국(中國) 당(唐)나라시대에 한산(寒山) 스님이 천태산(天台山)의 국청사에 살 당시에 풍간선사(豊干禪師)에게 물었다.

“옛거울(古鏡)을 닦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빛을 비춥니까?” “빙호(氷壺)는 원래 그림자가 없거늘, 원숭이가 공연히 물속에 비친 달을 건지려 하는 것과 같구나.” “그래도 아직 비추지 못했으니 스님께서 다시 일러 주십시오.” “만 가지 덕(德)을 가져오지 않았거늘 나에게 무엇을 이르라고 하는가?”

이러한 법문(法門)의 낙처(落處)를 알 것 같으면 다른 어떠한 법문에도  바른 답이 흉금에서 흘러나와 여탈자재(與奪自在) 살활종탈(殺活縱奪)의 수완을 갖추고 억겁세월이 지나도록 진리의 낙을 수용하며, 불조(佛祖)와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 불은(佛恩)에 보답하고 홀로 하늘과 땅에서 종횡하는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될 것이라.

 


“이사 걸림이 없어야 바로 보게 될 것”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너무나도 안타까운 미증유(未曾有)의 사건들이 온 나라를 힘들고, 슬프게 하고 있는 동안 시간은 어느 듯 동안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앙산(仰山)이 위산(潙山)선사에게 묻기를(山因仰山問) “참 부처님이 어디에 머뭅니까(如何是眞佛住處)?” 위산선사가 “생각하되 생각 없음의 미묘함으로써(以思無思之妙), 신령스런 불꽃의 끝없음을 돌이켜 생각하라(返思靈焰之無窮). 생각이 다해 근원으로 돌아가면(思盡還源),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性相常住),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어서(事理不二),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함이니라(眞佛如如)”고 했습니다.

앙산이 이 말씀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仰山言下頓悟). 앙산의 깨달음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단지 언구(言句)의 이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정체험(禪定體驗)으로 우주만상에는 성품이 상주하고, 제행은 무상함을 볼 수 있는 도리(道理)를 직관하면, 이론과 실제가 둘이 아님을 알 것이요. 이것이 곧 참 부처가 계신 곳임을 단박 알아차린 앙산의 깨달음일 것입니다.

납자들은 화두(話頭)를 참구(參扣)하되 이(理)와 사(事)에 걸림이 없어야만 바로 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선과 악이 둘이 아니고, 생사와 열반도 두 가지가 아닌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치상으로만 본다면 1700 공안이 하나도 막힘이 없을 것 같고, 걸림 없이 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치만 맞고, 사를 무시하게 되면 이것은 공(空)의 도리를 보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어서, 이치와 현실에도 맞아야 도리를 바로 봤다고 인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제기간 동안 마음을 잘 단속하여, 마음의 파동 즉 번뇌 망상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일대사인연을 통철(通徹)하는 대오각자(大悟覺者)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이라는 변명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

 
산천의 초목도 선정에 드는 삼동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우리 대중도 언제나 결제에 들어갑니다. 결제의 초입에는 모두가 의지를 굳게 다지고 반드시 공부의 성취를 보고야 말겠다고 결심합니다. 초지일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입니다. 생사는 폭포와 같아서 잠시도 여유부릴 틈이 없는데도 망념의 꼬임에 빠져버립니다. 결제에 들어가는 각자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간절한지 부터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때가 되어서 의례히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고인의 말씀을 뼈에 새긴 뒤 한바탕 공부를 지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약한 의지는 한 가지씩 이유를 붙이고 변명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안타까워하고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한창 때는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있어서 새벽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공부인에게 다음은 없습니다. 다음이라는 변명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마음속에서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화두를 들고 생사의 큰 적과 맞붙어야 합니다.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바다가 되는 무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외외하고 낙낙한 주인공을 만나기 위한 정진의 배에 오르는 날입니다. 이제 일념의 화두로 노를 삼아 배가 멈추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공부인들 불교 인생관 확립이 우선”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간화선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위기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간화선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훌륭한 수행법이며 여전히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요즘 간화선이 왜 비판에 직면해 있는가를 겸허히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간화선자들이 자가성찰의 철저한 정진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함으로써 만고에 훌륭한 수행법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자들이 조금의 자만이나 집착도 없이 위법망구의 정신으로 정진하여 조사들의 법등을 새롭게 밝힐 수 있을 때 간화선의 지평은 확장될 것이고 간화선은 현대의 문명사회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희망으로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공부인들의 불교 인생관이 확립돼야 합니다. 공부인의 인생관은 한 수행자의 정신적 지주요, 한 수행자의 마음의 대들보요, 한 수행자의 삶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철저한 신심과 철저한 원력과 철저한 공심이 항상 마음에서 떠나선 안 됩니다. 그리하여 나의 설자리를 바로 알고, 나의 할 일을 깊이 깨닫고, 내가 살아가는 목표를 옳게 세우고, 나의 생명을 불교라는 높은 이념에 바칠 때 불교의 사명적 자아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사명감이 우리를 위대하게, 성실하게, 용감하게, 부지런하게, 진지하게, 견성하게, 중생제도하게 합니다. 공과 유, 시와 비, 성과 패, 고와 락, 해탈과 속박 등에 집착하지 맙시다. 집착하면 무형의 족쇄를 채우는 거와 같나니.
 


“애써 정진하여 널리 세상 이롭게 해야”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근세의 고승인 경허스님께서는 침체된 선불교를 중흥시킨 중흥조이십니다. 스님은 아홉 살때 모친을 따라 경기도 광주 청계사에 입산하여 계허(桂虛)화상을 스승으로 축발하고 법명을 성우(惺牛)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속한 스승인 계허화상이 보고 싶어 길을 나섰는데 천안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일더니 폭우가 쏟아져 비를 피하여 어느 집 추녀 밑으로 들어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열자가 번져 전염이 되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밤새도록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말로는 생사와 열반이 허공 꽃에 불과하다 했으나 막상 죽음이 닥쳐온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해산하고, 이로부터 문을 닫아 걸고 단정히 앉아 밤새워 정진하는데 턱 끝에 송곳을 받쳐놓고 용맹정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기를 3개월이 지났을 때 어느날 한 사미가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스님은 이 말 끝에 크게 깨달아 오도송을 읊었습니다.

하안거 해제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동안거 결제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아무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다 보내고 허송세월 할 수가 있습니다. 실속 있게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이번 동안거 결제기간에는 애써 정진해서 공부를 성취하여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합시다.

 

“군생들 열반하게 하는 게 참다운 출가”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 스님

 
一步二步 三四步로 不落左右前後去(일보이보 삼사보로 불락좌우전후거)하니
山盡水窮無人處에 不勞踏着本故鄕(산진수궁무인처에 불로답착본고향)하리라.
한걸음 두걸음 셋넷걸음으로
유와 무와 망상에 떨어지지 말고 가라,
산이다하고 물이다하고 인아사상이 없는곳에 힘들이지 아니하고 본고향에 이르리라.

시회대중은 무슨일을 구하고져 하는고? 의식을 구하고져 하는가? 명리를 구하고져 하는가? 재물과 색을 구하고져 하는가? 다 아닐진댄 무엇을 구하는고? 다만 삭발하고 몸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절에 머물러 소일하면 이름이 참된 출가가 아니요. 능히 분심을 발해서 속히 번뇌망상을 끊고 용맹 정진해서 원만히 정각을 이루고 널리 군생을 제도해서 한가지로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 이것이 이름이 참다운 출가니라.

若人端坐反照觀하면 刹刹塵塵是眞佛(약인단좌반조관하면 찰찰진진시진불)
三佛形儀總不眞(삼불형의총부진)이요 箇箇本分是眞佛(개개본분시진불)이로다.
만약 사람이 단정히 앉아 반조해 관하면 세계마다 티끌마다 참다운 부처님이로다. 법신보신 화신불의 형상은 참부처님이 아니요.개개인의 본마음이 참다운 부처님이로다.

나는 나고 너는 너인데 부처는 이무슨 물건인고? 주장자를 한번치고 이르시되 산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물은 곧 움직이는도다.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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