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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온(溫)’맵시로 따스한 겨울을

기자명 최원형

내복은 공생의 길 선택하는 뜻 깊은 실천

늦가을, 거리에 마른 낙엽 뒹구는 소리가 더욱 스산하다. 비가 몇 차례 오락가락하더니 나무는 이제 잎을 거의 다 떨구었다. 해의 길이는 점점 짧아져 마침내 밤이 가장 긴 시간에 이를 것이다. 24절기 가운데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이 지났다.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소설이라 부르는데 이 무렵에 첫눈이 내린다한들 눈발이 날리는 정도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소설은 앞으로 닥칠 추위에 대비해 홑바지를 솜바지로 바꾸고 김치를 담그는 때라는 걸 알려주는 절기였을 테다. 요즘이야 난방도 잘 되고 일 년 내내 푸릇한 야채가 나오는 시절이니 솜바지는 고사하고 김장마저 전처럼 무게감 있는 연중행사로 여겨지는 것 같진 않다.

단열없던 시절 비해 훌륭한 현대
편리 추구하며 주변 바꾸려고 해
난방으로 인한 자연파괴 생각하면
지구 살리는 따뜻한 옷차림 필요

어릴 적 내게 겨울은 연탄과 내복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연탄가게 아저씨가 리어카 가득 연탄을 싣고 오면 대문이 활짝 열리고 뭔가 분주한 공기가 집 안팎을 한껏 떠돌면서 대문에서 연탄 광으로 가는 길이 새까맣게 되었다. 연탄가루 묻는다며 근처에 접근이 불허되었기에 궁금해도 기다려야했다. 드디어 아버지가 청소를 마치고 대문을 닫으시고 분주한 공기가 가라앉고 나서야 나는 연탄 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빈 틈 없이 줄을 맞춰 빼곡히 채워져 있는 연탄들이 어린 나에겐 아쉬움 그 자체였다. 봄이 끝나갈 무렵부터 점점 공간이 넓어지다 여름에는 텅 비어버린 그곳은 나만의 비밀 공간이었다. 한낮에도 컴컴해서 숨바꼭질할 때 그곳에 숨으면 들킬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공간이 사라졌으니 서운할 수밖에. 그러나 꽉 찬 연탄 광 덕분에 우리는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추억은 불 꺼진 밤에 번쩍번쩍 정전기가 일던 빨간 내복이다. 후에 꽃무늬가 프린트된 내복들도 나왔으나 여전히 내 기억엔 빨간 내복이 강렬하다. 토끼를 비롯한 동물들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촘촘한 털로 털갈이하듯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 어머니는 내복을 챙겨주셨다.

중앙난방이던 아파트에 살 때는 집에 사람이 없어도 돌아가는 난방이 너무 아까웠다. 식구들은 귀가하면 덥고 답답하다고 한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젖히곤 했다. 그러니 겨울 내내 내복은커녕 반팔 차림으로 지냈다. 그러다 작년에 개별난방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우리 집 실내온도는 20℃에 맞춰졌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처음 집안 온도를 20℃에 맞추기로 결심하면서 조금 염려스러웠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내복을 준비했고 늦가을부터는 집에서도 늘 스카프를 둘렀다. 목은 몸을 보온하는 첫 관문이니까. 썰렁한 한기가 느껴져도 20℃에 맞춰진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으면 조끼나 스웨터를 껴입고 두툼한 양말을 신어서 몸에 온기를 보충했다. 서늘한 공기는 기분 좋게 상쾌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뜨듯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2리터 주스병(페트병이 아닌 바닥이 움푹 들어간 주스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 수건으로 둘둘 말아 끼고 있으면 몇 시간 동안 더는 아랫목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엔 단열이라는 말자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문틀과 벽 사이로 바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러니 실내는 바닥만 뜨끈했지 웃풍이 휙휙 불었다. 겨울을 대비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창문을 바깥에서 비닐로 막고 커튼을 치고 문풍지를 바르는 게 전부였다. 내복을 입고 털실로 짠 스웨터를 걸쳐 입고도 이불을 뒤집어쓴 채 책상머리에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그 격을 따질 수 없으리만치 훌륭하다. 이렇게 훌륭해지고 편해질수록 사람들은 우리 몸을 계절에 적응시키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우리 몸에 맞추려 한다. 가령 추우면 먼저 옷을 껴입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난방을 하고 집안 전체 공기를 덥히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 추운 시절에 비해 지금 옷들은 또 얼마나 고급지고 따뜻한가 말이다. 그럼에도 ‘편리’라는 이름 뒤에서 나를 바꾸지 않고 커다란 주변을 바꾸려한다. 과연 그게 합리적일까?

난방을 위해 쓰이는 전기나 가스는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해보면 공간을 덥히느라 희생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숨 막히는 공기, 여름날 폭염, 엄청난 한파, 봄마다 되풀이되는 가뭄, 우리 곁을 떠나가는 생명들 등등. 날이 추워지면서 전기소비가 늘기 시작하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로 또다시 대기 질이 나빠지고 있다. 지구를 살리는 따뜻한 옷차림을 뜻하는 ‘온(溫)맵시’라는 말이 있다. 내복을 입고 무릎담요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실내온도를 낮추자는 얘기다. 내복을 입는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희생 대신 공생을 선택하는 유의미한 실천이 아닐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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