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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으로 맺은 우정, ‘법연’으로 도반 되어 부처님 닮아갑니다”

‘공부하는’ 고교 동문 경남중·고동문불자회

▲ 경남중·고동문불자회는 2013년 창립해 내년이면 5년차에 접어드는 신생단체다. 하지만 창립 초기부터 자발적 법회를 이끌어가면서 매회 50~70명이 참가할 만큼 활성화됐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배출한 명문 고등학교.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3직의 대표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만한 인사들을 다수 배출하고 전국 고교야구의 으뜸으로도 손꼽히는 곳. 서울의 유명 사립고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부산 경남 중·고등학교를 일컫는 표현들이다. 지난 1942년 설립된 이후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배출된 덕분인지 동문간의 유대 역시 끈끈한 학교로도 정평이 난 이곳에 한 가지 타이틀을 더 추가해도 좋을 듯하다. ‘전국 최초의 중·고등학교 동문 불자 모임이 조직된 학교’ 살을 더 붙인다면 전국 최초의 ‘공부하는’ 고교 동문 불자 모임이다. 바로 부산 경남중·고동문불자회(회장 정영천, 이하 경남고동문불자회)를 일컫는 말이다.

1942년 개교 후 동문 교류 활발
산악회로 불자 결집 2013년 창립
개신교반 자극받고 불교반 합세

50~70명 동참…자발적 법회기획
동문스님도 찾는 법회로도 유명
열린 법석으로 승가공동체 지향

지난 11월26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쏟아지던 토요일 저녁, 부산 연산동 법계정사에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들이 법당으로 모여들었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민족사)’을 출간한 이중표 전남대 교수의 초청강좌에 참석하기 위한 걸음이었다. 중년의 부부, 은발의 노거사, 장삼을 수한 스님들까지 각양각색의 참여자들은 내내 진중한 자세로 강의에 몰입했다. 이들의 손에는 신간이나 다름이 없는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 이미 한 권씩 들려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법회에 앞서 미리 책을 구해 읽어 왔을 정도다. 이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를 스펀지처럼 쏙쏙 가슴에 흡수하고 있다는 듯, 이들은 영롱한 눈빛으로 법석을 장엄했다.

주로 서울과 광주에서 강의해 온 이 교수를 부산까지 이끈 경남고동문불자회는 회원들이 직접 강의 섭외부터 참가자를 모으고 홍보 및 법회 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정을 도맡는다. 2개월에 한 차례 진행되는 정기 법회를 알차게 진행하고자 쉴 틈 없이 달려온 이들은 이날 법석을 마친 뒤에도 머무름 없이 2개월 뒤 새해 법회를 의논했다. 아니, 사실상 2017년 1년의 계획이 정기법회 날짜는 물론 템플스테이와 삼사순례까지 거의 확정되어 있었다. 규모 있는 신행단체에서도 쉽지 않은 연간 사업 구상을 이제 3년이 된 신생 단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부족함이 많습니다. 다만 여러 법회와 신행단체서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더욱 실용적인 법회를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다행히 불교 공부에 관심이 많은 동문 덕분에 다음 법회를 계획하는 시간 자체가 즐겁습니다.”

▲ 정기법회 초청 법사가 확정되면 관련 서적을 미리 읽고 올 만큼 열정적이다.

경남고동문불자회 초대회장을 맡은 정영천 변호사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경남고 21기 출신으로 조계종 포교사 자격을 갖춘 신심 깊은 불자다. 그는 경남고 동문모임 중 하나인 ‘용마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불자 동문들과 가까워졌다. 산악회 소속 불자 회원들을 중심으로 동문불자회를 조직해보자는 뜻이 모였고 3년 동안의 준비 끝에 3년 전인 2013년 1월19일 창립법회를 갖고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한 것이 경남고동문불자회의 출발이다.

경남고동문불자회의 시금석이 된 단체는 용마산악회뿐만 아니었다. 경남고 학내 동아리 불교반은 동문불자회를 조직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28회 졸업생 서정환 거사는 현재 경남고동문불자회 사무국장으로, 재학 당시 불교반 반장을 맡으면서 부산 서구지역 청소년 불교학생들의 모임 ‘바라밀 불교학생회’를 이끄는 주축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서 국장은 “동문불자회가 결성된다는 소식에 무척 반가웠다. 대불련은 있지만 고등학교불교반 동문회는 사실상 전국에서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청소년 시절 불교반을 넘어 현재 불자로 살아가는 동문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경남고동문불자회의 삼사순례에서 항상 사찰안내를 담당해 온 그는 “순례를 떠날 때면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더 젊어지는 것 같다”며 “경남고동문불자회가 굴리기 시작한 이 법륜이 앞으로도 동문에서 동문으로 힘차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 경남고 모든 동문은 물론 동문 가족들에게도 열린 모임이다.

서 국장과 같은 경남고 28회 출신인 도일 스님은 오히려 학창 시절에 개신교 신자였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스님은 “고등학교 때에는 사실 불교를 몰랐다”며 “출가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 경남고동문불자회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가능하면 법회 때마다 동참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동문,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 동문들도 편안하게 동참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 받아들이고 나눔을 실천하는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경남고동문불자회에 따르면, 입적한 파계사 성전암 철웅 스님을 비롯해 도일 스님에 이르기까지 경남고 출신 스님으로 확인된 분들만 10여명이 넘는다. 창립 초기 가장 먼저 전국 각 지역을 수소문해 경남고 출신 스님들의 사찰을 참배하고 법문을 청하는 순례법회를 진행한 것도 그만큼 경남고 출신 스님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님들을 찾아가는 순례가 마무리 될 즈음부터는 부산 연산동 법계정사를 정기법회 장소로 활용, 경남고 출신 재가 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법석을 이어갔다. 불서번역가인 김윤수 전 판사, 불교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 원장 등 경남고 출신 재가 지도자들도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올해 초부터는 동문회 임원들의 제안으로 2개월마다 4회에 걸쳐 초청법회를 갖고 연 1회 삼사순례와 템플스테이를 갖는 등 총 6회의 법회를 진행, 지난 11월26일 원만 회향했다. 법회 때마다 50~70여명이 모였고, 화엄사 템플스테이, 수덕사 순례 등은 동문불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매김 됐다.    

▲ 템플스테이는 동문불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정진의 장이다.

경남고동문불자회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경남고 동문 모임 가운데 개신교 동호회가 활발하게 운영된다는 사실도 자극제로 작용됐다. 33회 출신의 김법영 간사는 “경남고는 어느 고등학교보다 동문들의 교류가 활발하다”며 “개신교 모임이 잘된다는 소식을 듣고 불교 모임도 있다면 분명 잘 운영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그만큼 불교계에서 활약하는 동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자신했다. 김앤정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 간사 스스로도 부산불교교육원 참선반 회장을 역임하고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 이사를 지내는 등 남다른 불심으로 신행활동을 이어온 장본인이다. 경남고동문불자회 법회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39회 윤원욱 간사 역시 금강수선회에서 참선 공부, 해피법당 근본경전연구회에서 초기경전 공부를 이어온 불자다. 그는 “가까운 동문들과 불교 공부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다”며 “친목 이상의 배움과 공감 그리고 실천이 있는 이 모임이 앞으로도 거듭 발전될 수 있도록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7년, 5년 차에 접어들 경남고동문불자회 회원들은 연말을 맞아 참석하게 되는 크고 작은 모임마다 일찌감치 세워 둔 2017년 법회 소식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남고 출신이면 모두 회원이나 다름없다”며 “모든 동문과 동문 가족들에게 열린 법회”를 지향했다. 또 앞으로는 정기 법회와 더불어 경남고동문불자회 차원에서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실천하는 나눔의 장도 계획하고 있다.

정기회비도 없고 규정된 회칙도 없지만 자발적인 운영을 원칙으로 매 순간 수행과 전법의 가치를 실천해 온 경남고동문불자회. 학연을 고리로 이어졌으되 이제 학연을 넘어 불연(佛緣)으로 마주하는 이들은 어느새 나누는 생각과 행동마다 부처님 당시 ‘승가 공동체’를 닮아가고 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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