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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천 동춘동 흥륜사‘할 수 있다’ 희망불사로 동반성장 꿈 일구다
김현태 기자  |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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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3  14: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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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열린 흥륜사 산사음악회. 흥륜사는 장학금, 환경운동, 무료급식 등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인천 대표사찰이다.

인천 흥륜사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청량산 줄기 따라 사찰로 향하는 108계단을 오르면 송도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에 서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일몰하는 낙조는 청량산 흥륜사를 더욱 장엄하게 만든다. 푸른 숲과 맑은 바다, 그리고 황금빛 낙조 어우러진 이곳은 오래전부터 수행자들이 찾던 정진처였다. 처음 도량이 들어선 것은 고려 우왕 때인 662년 나옹 스님에 의해서다. 이후 흥륜사는 지역민들의 귀의처이자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1000여년간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구에 의해 전각이 소실되면서 흥륜사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가능성’ 조차 무의미했던 지역
손으로 도로 놓으며 변화 희망
살림 커진 만큼 회향불사 확대
지역주민 삶 중심으로 자리매김


기억 속 멀어진 흥륜사가 다시 인천 사람들 품으로 돌아온 것은 1966년 법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다. 당시 흥륜사는 뚫린 지붕에 무너진 벽, 부처님마저 상처투성이로 방치된 채 사실상 사찰로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스님이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광과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 그것이었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지금 흥륜사는 대웅전, 만불보전, 약사전, 지장전, 삼성각, 범종각 등을 갖춘 여법한 대가람으로 변모했다.

흥륜사의 변화는 인천의 발전과 결을 같이한다. 인천 그중에서도 동춘동은 특히 가난한 마을이었다.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며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마을에는 제대로 된 도로(道路)조차 없었으니 ‘가능성’이란 말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춘사람들의 불심에 기대어 스러진 흥륜사를 다시 일으킨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희망의 씨앗부터 심어야 했다. 흥륜사로 향하는 흙길을 정비해 모래를 깔고 자갈을 덮기 시작했다. 지역이 변화하기 위해선 우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청년들에게 이 같은 생각을 전했고, 몇몇이 스님의 생각에 동참을 표명했다. 길이 닦이는 동안 스님은 지속적으로 시청을 방문해 버스운행을 요청했다. 그러기를 몇 달, 상상 속에나 이뤄질 것 같았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전히 사람들 손으로 만든 도로 위에 마을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불어온 변화의 바람은 이내 동춘마을 곳곳에 스며들었고, 절에서 하는 일이라면 주민 누구나 팔을 걷어붙이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법륜 스님 역시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을정비, 협동조합, 통장갖기운동 등을 펼치며 희망의 불씨를 지펴나갔다. 어느새 흥륜사는 동춘사람들 삶의 중심이 됐다.

동춘마을의 변화는 다시 흥륜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선한 인연들이 모여들면서 경내에는 여느 사찰 못지않은 대웅전이 들어섰고, 전각들도 하나둘 늘어갔다. 법륜 스님은 커지는 살림만큼 주민들을 위한 일들을 확대해 갔다. 동춘주민들이 없었다면 흥륜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1983년 관음장학회를 세워 형편이 어려운 지역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했다. 지금까지 257명에게 1억4000만원이 전달됐다. 2000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가 쌀과 함께 어려운 이웃에 전하는 일도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과 목욕봉사를 비롯해 경로잔치, 환경운동도 정례적으로 이어가는 흥륜사 대표 불사다.

관계라는 게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법. 흥륜사와 동춘주민 사이에도 틈이 벌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봉안당 ‘정토원’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역의 복지와 포교의 일환으로 시작한 불사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동춘사람들은 흥륜사의 결정에 동의로 응원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는 것처럼 이후 흥륜사와 동춘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동춘마을의 희망되기를 발원했던 흥륜사는 이제 동춘사람들 삶의 중심이 되어 대를 이어 찾아오는 도반되기를 서원한다. 그리고 그 바람은 흥륜사가 성장했던 것처럼 동춘사람들과 함께 이뤄가고 있다.

 


“모든 아픔 덜어내는 모두의 힐링공간 발원”

인천 흥륜사 주지 법륜 스님

   
 
“흥륜사를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수보살이고 관음보살입니다. 이곳이 부처님 법을 만나는 도량이자, 삶의 쉼표가 되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흥륜사 주지 법륜<사진> 스님은 누구를 만나건 먼저 합장으로 인사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기독교세가 강한 인천에서 흥륜사가 다시 일어나 대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흥륜사를 잊지 않고 찾아준 불자들 덕분이다. 법륜 스님이 흥륜사를 찾는 모두를 불보살 대하듯 맞이하고 회향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흥륜사의 수많은 인연불사 가운데 스님이 꼽는 최고는 단연 ‘정토원’이다.

“정토원은 봉안당의 의미를 넘어 가족이 소통하고, 대를 이어 불교와 만나는 공간입니다. 특히 죽음을 맞은 이들에게 종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정토원은 흩어진 가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부처님 법으로 위안을 주는 전법과 힐링의 공간입니다.”

향후 집중하고 확대해야 할 불사 역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데 있다. 법륜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시간에 쫓기는 불안한 삶을 호소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큰 문제이지만 사회적 손실도 막대하다”며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흥륜사의 자연환경과 다도, 포행, 참선 등 불교프로그램을 결합시킨 ‘힐링캠프’를 정례화하고 확대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역 포교와 회향을 위한 불사도 계속된다. 스님은 “이 시대 최고의 포교는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고, 한 명이 근무를 하면 그 가족이 모두 불자가 된다”며 “현재 흥륜사에는 종무소와 정토원, 쉼터 등에 4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향후 복지법인과 요양원을 건립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품에서 미래를 함께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변함없는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한편 법륜 스님은 1960년 해인사에서 종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관음종 포교원장, 중앙종회의장, 인천불교총연합회장, 인천경찰청 경승실장 등을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인천 녹색연합·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 남북평화재단 공동대표 등 불교계 원로로서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천=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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