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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45. 박경리의 ‘남해 금산사’불심 돈독한 작가 사찰순례 노래
섬광 같은 깨달음의 시구 돋보여
김형중  |  ililsihoil10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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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0  13: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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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뚫고
남해 금산사에 오른다
안내인은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애석해 했지만
내 허약한 몸에
정수리를 쪼개는
햇볕이었다면
비가 쏟아졌다면
어찌 이곳에 올랐으리

벼랑에 선 금산사
거룩한 신심이여
오르내리며 절을 지은
그 넋들은 지금 어디에
수미산에 안좌해 계시는가
소망 여쭙고
내려오는 중생
수많은 중생
싸구려 흰 블라우스에
해맑은 얼굴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백성들
참으로 그들이 희망이로구나

남해 금산사(金山寺)는 정확한 절 이름이 남해 금산사 보리암(菩提庵)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산(錦山)에 있는 절이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성지로 유명하다. 남해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비단을 펼쳐놓은 풍광은 천하제일이다. 

1990년대 발표한 시집에 수록
‘토지’의 대미 장식 위한 답사
왕유 시작에 대한 안목 구사

시인은 절 이름을 금산(錦山)과 금산(金山)을 혼동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남해 금산사(金山寺)라고 하여 헛갈리는 신비한 사찰이 되었다.

시의 1연 시작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안개 뚫고/ 남해 금산사에 오르다/ 안내인은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애석해 했지만” 이렇다.

중국 당나라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절창시 ‘향적사를 지나며’란 시를 보면 “향적사 어디쯤인지 몰라/ 몇 리 산등성이 구름 속을 헤매이네”라는 시구가 있다. 왕유가 종남산의 향적사를 찾아간다고 하면서 오히려 ‘알지 못한다’고 하여 절을 찾아가는 불자의 마음 자세가  부처의 깨달음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수법을 쓰고 있듯이 박경리(1926~2008)는 소설가이지만 이 정도의 시작(詩作)에 대한 안목을 구사하고 있다. ‘구름 속을 헤매이네’를 ‘안개 뚫고’라고 하였다.

인생사나 세상사는 변화무상하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안개 속이다. 산사를 찾는 것은 부처의 깨달음의 지혜를 삶의 등불로 삼기 위함이다.

‘남해 금산사’는 불심이 돈독한 원로 작가가 일상의 사찰 순례를 노래한 평범한 작품이다. 난해한 상징적 시어가 없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이 삶의 여정에서 체득했던 번쩍이는 섬광 같은 깨달음의 시구를 2연에서 찾을 수 있다.

“소망 여쭙고/ 내려오는 중생/ 싸구려 흰 블라우스에/ 해맑은 얼굴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백성들/ 참으로 그들이 희망이로구나”

이 시구는 선사의 오도송이다. 대가의 역량이 활화산처럼 뿜어 나오는 깨달음의 환호성이다. 혜능 대사의 ‘육조법보단경’에 “중생을 알면 능히 부처를 볼 것이요,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도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 한다”고 하였고, 만해 선사도 ‘님의 침묵’의 서시 ‘군말’에서 “부처의 님은 중생이다”고 하였다.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 땡감이 익으면 홍시가 된다.

작금 광화문에서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든 백만 시민이 이 땅의 주인이다. 하나의 촛불이 모여 세상의 어둠과 부정을 몰아내는 무진등(無盡燈)을 이루어 민주주의의 꽃등으로 피어날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그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요 영웅이다.

‘남해 금산사’가 수록된 ‘우리들의 시간’은 박경리의 다른 책에 흩어져 있던 시편과 1990년대에 새로 발표한 신작시를 모은 시집이다. 한국현대소설사의 금자탑인 ‘토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 길상(서희)이 ‘관음보살상’을 그리기 위하여 작가가 남해 금산사로 기도하러 간 것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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