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댈 곳 없는 모녀 보듬는 안식처 되길”

  • 상생
  • 입력 2016.12.26 18:00
  • 수정 2016.12.26 18:01
  • 댓글 1

미혼모지원센터장 혜전 스님

 
“스님, 아기를 좀 맡아주시면 안될까요?”

2004년 석문사 경내 개소
30년전 미혼모 마음에 걸려
‘찾아가는지원센터’ 운영
출산비용·분유값 지원

이웃집 처녀가 만삭의 몸으로 찾아왔다. 원치 않게 아이를 임신했고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잠시나마 아기를 보살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청주 석문사 주지 혜전<사진> 스님은 당시 대전에서 작은 포교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좁은 사무실 같은 공간에 부처님 한 분 모신, 포교당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이니 도저히 신생아를 키울 수가 없었다. 처녀는 몇 달 후 아이를 안고 다시 찾아왔다. 아기는 아픈지 축 늘어져 있었고 처녀는 바싹 말라 있었다. 병이 있어도 돈이 없어 병원을 못 간다고 했다. 있는 돈을 털어 쥐어주고는 “차라리 보호센터로 가는 것이 좋겠다”며 돌려보냈다. 벌써 30년도 훌쩍 지난 일이다.

혜전 스님은 내내 그 처녀와 아기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다. 출가 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직후 스님은 심하게 앓았다. 몸이 마비되고 생사를 오갈 정도로 고생을 했다. 아기는 아픈 엄마 곁에서 100일을 채우지 못한 채 속가 언니에게 보내졌다. 혜전 스님은 이후 3년을 꼬박 아팠다. 주변에서는 ‘신병’이라고도 했다. 결국 사찰에 들어갔다. 밤낮없이 기도·수행하고 불경을 외우면서 병은 조금씩 호전됐다.

병이 완전히 나은 뒤에는 불연이 깊어졌다. 부처님 가르침이 가슴을 두드렸다. 스님은 그 길로 출가를 했다. 아기를 안고 선 처녀 생각이 날 때마다 스님의 아기가 함께 떠올랐다. 항상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품고 있는 듯했다.

1990년 경 ‘찾아가는 미혼모지원센터’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센터 직원은 스님 혼자였다. 의지할 곳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혼모 소식이 전해지면 한달음에 찾아가 출산 전·후 함께 머물며 돌봐줬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출산비용을 후원했다. 알음알음 전해진 스님의 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미혼모들이 이어졌다.

혜전 스님은 2004년 지금의 석문사에 터를 잡았다. 스님은 “절이 생겼으니 부처님 흉내라도 제대로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법당 수리도 하기 전에 중앙공원에서 독거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했고, 도량 불사도 뒷전으로 미루고 경내에 미혼모지원센터부터 개원했다.

혜전 스님이 ‘석문사 주지’보다 ‘미혼모와 아기를 보살피는 스님’으로 더 유명한 이유다. 무엇보다 석문사 미혼모지원센터는 제도적으로 어떤 지원금도 받지 않고 오로지 스님의 힘만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법인을 설립하고 제도화할 경우 일정부분 운영 비용은 지원받을 수 있겠지만, 보호시기의 제한이 있고 입소 자격이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스님은 힘든 길을 택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까다로운 자격이나 절차 없이 스님과의 면담만으로 입소할 수 있다 보니 도움의 손길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미혼모들이 적지 않다. 매년 석문사 미혼모지원센터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최소 5명, 센터가 문을 연 지 13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최소 65명 넘는 아기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 중에는 갑작스러운 진통으로 스님이 직접 받아낸 아기들도 있다. IMF 직후에는 의지할 곳 없는 할머니들도 입소했다. 많을 때는 엄마와 아기, 할머니들까지 13명이 북적대며 살았다. 스님이 바쁘면 할머니들이 산모와 아기를 살뜰히 챙겼고 할머니들이 다치거나 아프면 미혼모들이 간호를 했다. 센터에 머무는 이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니 서로 가족 부럽지 않은 정이 쌓일 수밖에.

“10년 넘게 산 아이들도 있어요. 밖에 나가도 찾아오죠. 센터에서 맺어진 가족이니까요. 가정을 꾸려 나간 미혼모들이 간혹 신도나 후원자가 돼요. 자신들이 도움을 받은 만큼 조금이나마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가장 뿌듯하고 행복하죠.”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경우는 미성년자 산모다. 임신·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는 데다, 가출청소년인 경우 몸 상태를 스스로 알지 못해 자칫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을 돕기 위해 스님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출산비용과 기저귀·분유값을 지원하는 후원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 머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보호할 수 없는 경우 비용을 지원하거나 직접 가서 돌봐줘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모두 무료로 운영되다 보니 정작 스님은 돈이 없어 쩔쩔매기 일쑤다. 보험료가 없어 매번 독촉전화를 받고 식재료 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각종 채소를 재배한다. 혼자 몸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니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혜전 스님은 “내 몸이 허락하는 한 미혼모지원센터를 운영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힘든 상황에 처한 미혼모들을 더 든든하고 단단하게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싶어요. 그들이 센터에 머물면서 다시 사회로 복귀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죠.”

석문사를 나서는 길, 스님의 다실 앞 문턱에 스님 신발과 아기 신발이 나란히 자리했다. 자칫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 풍경이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모습 그대로가 곧 석문사의 일상이기 때문일 터다.

청주=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