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미래불교 십이정도(十二正道) [끝]
48. 미래불교 십이정도(十二正道) [끝]
  • 김정빈
  • 승인 2016.12.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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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 있어

필자는 본고 39회분에서 미래불교 수행법을 팔정도에 정신(正信)과 정원(正願)을 더해 십정도(十正道)로 제시한 바 있다. 또 그에 뒤이어 필자는 팔정도의 정념(正念)이 사마타사띠와 위빠사나사띠로 분별된다는 점, 그 중 위빠사나사띠가 불교를 힌두교와 분별하는 명상법이라는 점을 분별해 보였다. 이는 정념을 두 덕목으로 나눌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더하여 필자는 유가(儒家)의 덕목인 인·의·예(仁義禮)를 정례(正禮)로 묶어 정사(正思)와 정어(正語) 사이에 배치함으로써 미래불교 수행법을 열두 가지 덕목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자연과학 등 발달에 발맞추고
유가와 기독교 장점 수용해야
정진, 능동적으로 해석하면
선·기독교·예술 포함 가능


필자는 기존의 미래불교에서는 이들 덕목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 재해석의 여지가 가장 풍부한 덕목은 정진(精進, viriya)일 것이다. 경전이 설하는 내용과는 별도로 필자는 이 덕목을 선(禪)이 강조하는 대분심(大忿心, 大憤心)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본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정진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 및 예술 정신이 된다.

신자들에 의해 ‘복음(福音, gospel: 기쁜 소식)’으로 불리는 기독교 교리는 예컨대 “악인은 구제받는다. 그것도 선인보다 먼저”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불교로 번안하면 “복음은 인과법을 넘어선다”가 될 것이다. 인과법은 사칙연산법처럼 경직 고정되어 있으며, 이 법에는 죄(업)에 대한 용서와 자비가 없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는 예수의 대속을 믿을 경우 죄의 사면이 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이 교리는 자신이 죄인(중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에 비해 불교는 중생(죄인)에게 자신의 중업을 스스로 감당하라고, 다른 사람이 너의 업을 대신 경감시켜 주지는 못한다고 설한다. 이 자업자득법, 또는 업-자기감당법은 자연과학 및 인문학적인 세상의 모든 이치와 부합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이 법을 견지해야 한다(법교의 입장). 그러나 불교는 자연과학 및 인문학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을 감당하는 종교이며 이 부분에서 불교는 죄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용서하여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해야만 한다(신교의 입장).

일본 정토종의 신란(親鸞) 스님은 “선인도 구제되거늘 하물며 악인이랴?”라고 말했는데, 이 법문은 ‘악인이 먼저 구제받는다. 선인은 그 다음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불교의 전통에서도 복음적 요청을 수용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대승불교가 진여(眞如)·불성(佛性) 등의 교리를 개발한 것은 그것이 ‘사실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에게 그런 유의 교리를 요청하는 ‘진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실존 상황은 법칙(다르마)의 엄격성·경직성을 누그러뜨릴 것을 요청하는 면이 있다. 제2차적인 면, 즉 ‘파격(破格)의 법’ 또는 ‘경직된 법을 넘어서는 유연하고 넓은 법’에서 3에 3을 곱한 답이 언제나 9는 아니다. 3×3=28, 10-500=37,000! 장서방이 술을 마셨는데 이서방이 취하고, 토끼뿔 위에서 기독교인은 물론 세상의 모든 부족한 자, 버려진 자, 아픈 자, 숙업 깊은 자들이 도리천녀와 함께 부처님을 찬미하며 춤추는 광경이 이 법에 의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파격, 또는 법의 확장은 예술 정신과 맞닿아 있다. 예술의 본령은 창조이며, 창조는 법과 격(格)을 지우고 무너뜨리고 넘어섬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불교는 이 면에서 기독교 및 예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 결과 불교는 갈수록 법과 격이 강화되는 흐름(인류의 인지는 날마다 발달하고 있는데, 이는 법과 격이 더 강화됨을 의미한다)에 의해 무의식적인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현대인에게 파격의 자유로움과 창조적인 역동성을 제공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불교는 그 면을 교리(수행법)에서 보정해야 하는데, 그 보정이 이루어지기에 가장 적당한 덕목이 정진인 것이다(열반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도 그 면을 보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미진한 대로 여기에서 본고를 마친다. 그동안 정독해주신 불제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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