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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마경의 특징

기자명 이제열

비판과 역설 통해 정토 향하는 바른 길 제시

부처님 말씀 가운데에 가장 독특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경전을 들라면 ‘유마경’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유마경’은 ‘금강경’이나 ‘법화경’처럼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으나 불교의 진수를 알려는 사람은 반드시 탐구해야 할 중요한 경전이다. ‘유마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경만의 특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전 속 법문 설한 주인공이
부처님 아닌 평범한 재가자
냉정하고 예리한 법문으로
대립된 개념들의 초월 강조

첫 번째 특징은 이 경을 설한 주인공이 부처님이 아니라 거사라는데 있다. ‘유마경’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유마힐이라는 거사에 의해 설해진 경전이다. 불교경전은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초기경전의 경우 부처님 외에 출가제자, 재가자, 천인 등이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경전 전체의 내용을 부처님이 아닌 다른 인물이 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유마경’과 함께 짝을 이루는 ‘승만경’을 제외하고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주(設主)가 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예로부터 경전에 이름을 붙이는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어 왔다. ‘원각경’ ‘능엄경’ ‘반야경’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그대로 경명으로 삼는 경우(이를 법(法)에 의한 방법이라고 한다),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인 법을 세상의 사물에 비유하여 경명을 삼는 경우(이를 유(兪)에 의한 방법이라고 한다), ‘아미타경’ ‘관음경’ ‘유마경’ ‘승만경’처럼 불보살이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경명을 삼는 경우(이를 명(名)에 의한 방법이라고 한다), ‘대승입능가경’처럼 설법을 한 장소를 경명으로 삼는 경우(이를 처(處)에 의한 방법이라고 한다)이다. 보다시피 ‘유마경’의 경명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 경이 불보살의 이름도 아니고 출가한 제자의 이름도 아닌 일반 재가신도의 이름을 경명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가히 파격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특징은 매우 비판적이고 역설적인 언어로 법을 설한다는데 있다. 유마거사의 설법 방식은 온화하고 수순하기보다는 냉정하고 예리하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는 물론 대보살들까지도 유마거사의 걸림 없는 비판과 질책 앞에 맥을 추지 못한다. 대승경전에 보살들이 부처님의 출가제자들을 향해 설법하는 모습은 나와도 감히 재가거사가 출가제자들을 향해 설법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십대제자들을 상대로 재가의 거사가 꾸짖기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유마경’에는 여타의 경전들에는 등장하지 않는 반정서적 내용들이 등장한다. 사악한 법이 여래의 종자가 된다거나 무간지옥에 갈 업을 지어야 불도를 이룬다거나 보살의 길을 가지 않는 자라야 불도에 통달한다는 등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들이 여과 없이 설해진다. 오직 유마경에서만이 찾을 수 있는 교리라 할 수 있다.

이 경의 세 번째 특징은 대립의 초월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전들을 접하다보면 서로 상반된 의미의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중생과 부처, 생사와 열반, 세간과 출세간, 번뇌와 보리, 유위와 무위, 죄와 복, 지옥과 정토, 사법과 정법 등 수많은 용어들이 대대(待對)를 이루며 교리가 전개된다. 진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들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들이다. 중생과 부처가 어찌 같은 존재이며, 생사와 열반이 어찌 차별이 없을 수 있는가? 중생을 벗어나야 부처가 되고, 생사를 떠나야 열반을 이룬다. 이는 세간과 출세간, 유위와 무위 등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쪽을 버려야 만이 다른 한쪽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유마경’에서 밝히고자 하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경에서는 두 가지 가치들은 서로 충돌하고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저쪽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쪽이 있을 수 있는 상의상존(相依相存)의 관계라고 설한다. 여기서 중생을 떠난 부처는 존재할 수 없고 생사를 떠난 열반도 존재할 수 없다. 중생이 곧 부처이며 생사가 곧 열반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가르침을 불이법(不二法)이라고 한다. 불이법은 연기(緣起)와 공(空)사상에 의해 대대와 상반을 종식시키는 중도묘리의 가르침이다. 결국 이 경은 통렬한 비판과 역설을 통해 중생들이 불이를 깨닫도록 인도하고 있으며, 이 땅에서 정토를 실현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제열 yoomalee@hanmail.net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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