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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성전암,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재

  • 교계
  • 입력 2017.01.14 05:03
  • 수정 2017.01.1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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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주지 도성 스님 집전·유족 동참
“곧잘 법당 찾아오던 종철이 지금도 생생”

▲ 양산 성전암은 1월13일 경내 대웅전에서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재’를 봉행했다. 박 열사의 모친 정차순 보살이 영단에 향을 올리고 있다.

민주항쟁에 앞장서다 고문으로 인해 꽃 같은 생을 마감한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재가 기일을 하루 앞두고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엄수됐다.

성전암(주지 도성 스님)은 1월13일 경내 대웅전에서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재’를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박 열사의 부친 박정기 거사와 부인 정차순 보살 그리고 누나 박은숙 보살 등 가족들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은 박 열사의 49재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일마다 재를 올리며 박 열사를 위한 추모의 자리를 가져왔다.   

▲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스님이 주지 소임을 지내던 부산 괴정동 사리암은 박 열사의 부친과 모친 재적사찰로, 박 열사는 중학교 시절에도 곧잘 절에 올라와 뛰어놀며 가슴 속에 불심을 키운 신심 깊은 불자다. 스님이 사리암에서 성전암으로 주석처를 옮긴 이후로는 성전암에서 지금까지 추모재를 지내고 있다. 사진은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과 박 열사의 부친 박정기 거사.

이날 도성 스님은 “조계사 같은 큰 절에서 지내야 마땅할 텐데 산중에 위치한 작은 도량이라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에 재라도 정성스럽게 지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스님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스님이 주지 소임을 지내던 부산 괴정동 사리암은 박 열사의 부친과 모친 재적사찰로, 박 열사는 중학교 시절에도 곧잘 절에 올라와 뛰어놀며 가슴 속에 불심을 키운 신심 깊은 불자다. 그 인연으로 박 열사의 서거 당시 49재부터 해마다, 스님이 사리암에서 성전암으로 주석처를 옮긴 이후부터는 성전암에서 지금까지 추모재를 지내고 있다.

▲ 이날 도성 스님은 “조계사 같은 큰 절에서 지내야 마땅할 텐데 산중에 위치한 작은 도량이라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에 재라도 정성스럽게 지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스님은 “음으로 양으로 압력이 들어온 일들을 어찌 다 말로 하겠는가. 그저 절에서는 간절하게 염불을 모시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고 조촐하지만 항상 이날이 오면 지극하게 모시려고 한다”며 “세월이 흘러도 종철이의 숭고한 뜻이 변함없이 이어져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다”고 밝혔다. 스님은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전했다. “불교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당시 종철이의 안타까운 죽음도 묻혀버릴 뻔 했지만 명동성당의 카톨릭 미사에서 성직자들의 양심고백에 의해 세간에 드러날 수 있었고 이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됐다”고 언급한 스님은 “촛불집회는 정치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민중의 힘으로 옳지 못한 일을 바로 잡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종철이의 30주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그 시절과 지금 그리고 미래 대해 생각하며 열사의 희생에 담긴 의미를 살려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박 열사의 부친 박정기 거사는 “못다 살고 간 그대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자리들이 단순히 30주년 추모회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고인이 염원했던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상이 연속될 수 있도록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성전암 추모재에 동참한 박 열사의 부친 박정기 거사는 “그 동안 추모재에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30주기를 맞아 이곳 성전암 뿐만 아니라 기념사업회 그리고 종철이의 혜광고 동기들까지 고인을 기리는 특별한 자리를 갖는다니 그저 감사하다. 다만 지금 개인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해 (모든 자리에 동참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못다 살고 간 그대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시간들이 단순히 30주년 추모회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고인이 염원했던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상이 연속될 수 있도록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 도성 스님의 상좌인 양산 통도사 전법도량 정각사 주지 정도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된 추모재에서는 정각사 합창단이 추모의 음성공양을 올리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 도성 스님의 상좌인 양산 통도사 전법도량 정각사 주지 정도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된 추모재에서는 정각사 합창단이 추모의 음성공양을 올리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추모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은 말이 없었고 눈시울은 촉촉이 젖었다.

▲ 추모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은 말이 없었고 눈시울은 촉촉이 젖었다.

박종철 열사는 1965년 4월1일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아버지 박정기 거사와 어머니 정차순 보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토성초, 영남제일중, 혜광고를 졸업한 그는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 학과 학생회장을 지냈다. 특히 대학시절 사회사상연구회에 가입해 학생 운동을 시작한 그는 1985년 서울 사당동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지원 시위를 비롯해 청계피복노조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하는 등 학생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87년 1월13일 자정 무렵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 의해 참고인 진술을 명목으로 연행되어 폭행, 전기 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박 열사는 하루 만인 14일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당시 사실을 은폐하려던 정권에 맞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1987년 5월18일 명동성당 미사에서 ‘고문 경찰 축소 조작’이 폭로되었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같은해 6월 항쟁이 촉발됐다.

▲ 성전암에서 엄수된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재.

한편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는 1월14일 오후4시 서면 소민아트센터(영광도서 옆 카페클레어 3층)에서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식’을 갖는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의 공동 주관으로 마련되는 시민 추모제다. 이날 오후 6시 서면 일대에서 진행될 '제11차 박근혜정권 퇴진 시국대회'에서도 박 열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된다. 부산 혜광고 28기 동기회는 같은 날 오후6시 부산 광복로에서 기념음악회와 사진전을 통해 박 열사를 추모한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10시30분에는 박 열사의 묘역이 위치한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합동 참배의 시간이 마련되며 오후2시에는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의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전 남영동대공분실) 앞마당에서 추모제가 진행된다.

▲ 성전암 주지 도성 스님은 박 열사의 49재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일마다 재를 올리며 박 열사를 위한 추모의 자리를 가져왔다.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77호 / 2016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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