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낙산사 의상대-홍련암-해수관음상
48. 낙산사 의상대-홍련암-해수관음상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7.01.23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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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닷가에서 관음·천룡팔부의 붉은 전설을 듣다

▲ 홍련암에서 바라 본 낙산사 일출 전경. 고고히 서 있는 의상대가 운치를 더해준다.

굴속에 자리를 편 의상 스님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채 앉았다. 들려오는 건 바위덩어리를 때리는 바닷물 소리뿐이었다. 한 터럭의 번뇌조차도 허용치 않는 용심과 청심으로 7일을 보낸 후 새벽 바다 위에 앉았던 자리를 띄웠다.

원효암서 1패 당한 의상 스님
의상대선 한 수 위 법력 보여

의상 스님 ‘자리’ 띄운 그 파도
붉은연꽃암자 아래서 ‘처얼썩’


의상 스님이 해안절벽의 굴속에 좌복을 깔고 가부좌를 튼 연유가 있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어느 굴 안에 상주한다는 전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역(西域)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성지를 일러 ‘보타낙가산(寶拖落伽山)’이라 했다. 이곳에 관세음보살이 나툰다면 그 즉시 이 자리도 성지로 변모하는 것이니 정성을 다한 7일간의 기도였다.

여명의 바닷가에 상서로운 기운이 퍼져갔다. 가만 보니 하늘의 신과 용(龍)ㆍ야차(夜叉)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건달바(乾達婆)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 8부중(八部衆)의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내려오고 있었다. 신장(神將)들은 의상 스님이 바닷물에 띄운 자리를 굴속으로 인도했다. 의상 스님은 일어나 마음을 다해 극진한 예를 올렸다. 그러자 신장은 수정으로 만든 염주 한 꾸러미를 내 주었다. 그 보물 소중하게 받아 지니며 굴속에서 물러나오니 동해의 용이 여의보주 한 알을 바쳤다. 의상 스님은 염주와 보주를 안고 굴에서 다시 7일 동안 재계(齋戒)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관음의 진용(眞容)이 현전에 나타났다. 이어 깊고도 은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앉은 자리 위의 산 마루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 날 것이다. 그 곳에 불전을 지어라!’

▲ 낙산사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해수관음상을 친견할 수 있다.

의상 스님이 굴에서 나와 산마루를 보니 한 쌍의 대나무가 땅을 뚫고 솟아나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 금당을 짓고 흙으로 빚은 관음상을 안치하니 한 쌍의 대나무는 다시 사라졌다. 관음의 진신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신묘한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리라! 의상 스님은 두 보주를 성전에 안치하고 ‘낙산(落山)’이라 이름 하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이렇듯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의상 스님과 천룡팔부 그리고 관음 진용의 전설을 품으며 세워졌다.

의상 스님이 선정에 자주 든 곳이라 여겨진 곳에 정자 하나가 오늘의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의상대’다. 조선시대의 체조 스님이 정자에 앉아 절벽 아래 굽어보며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는 시 한 수 지었더랬다.

‘우연히 낙산대사 누대를 노닐다가/ 높고 오래된 의상대에서 나그네 시름을 씻누나/ 의상대사 가신 지 천년이건만/ 돌아오시지 않으니/산 아래로 흘러가는 푸른 물결만 바라 보누나’

▲ 낙산사 일주문에서 홍예문으로 이어지는 소나무길이 일품이다.

북동쪽으로 시야를 돌려 보니 해안절벽에 앉은 암자 하나 보인다. 홍련암(紅蓮庵)이다.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신장과 용이 준 보주를 얻은 곳이 저기다. 파도 소리 법음 삼아 새벽녘 어스름 길을 따라 걷는다.

아, 이 길을 원효 스님도 걸었더랬다. 경기도 북한산, 부산 금정산, 포항 운제산에서 보이듯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은 한 곳에서 함께 정진한 경우가 참 많다. 두 스님이 ‘법력’을 겨뤘다는 설화를 전하는 사찰도 있다. 경산 원효암(元曉庵)이다.

어느 날 의상 스님은 원효암에 머물고 있던 원효대사에게 점심 공양을 하자고 청했다. 천신들로부터 늘 공양 받아 온 의상 스님. 원효에게 그 광경 직접 보여주면 ‘천신들의 공양을 받는 의상은 정말 대단하다’여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천신에게 요청했다.

▲ 바닷가 절벽에 세워 진 홍련암이 일출 빛에 물들고 있다.

‘오늘 점심은 원효와 함께 하니 두 사람분의 공양을 준비해 주시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공양은 내려오지 않았다. 천신의 천의(天衣)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원효는 의상에게 보란 듯이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이 일을 이상히 여긴 의상 스님이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천신들은 제 시간에 맞춰 왔다. 그러나 끝내 공양물을 내려 보내지 못했다. 원효 스님을 지키는 신장들이 의상 스님이 머무는 암자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효의 법력이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이 설화는 전하고 있다.

원효 스님이 낙산의 관음성지에 예를 올리려 길을 나섰다. 사하촌의 남쪽 논 가운데 이르렀을 때 흰 옷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 스님이 ‘그 벼를 달라’는 농을 던졌다. 그 여인은 ‘아직 영글지 않았다’며 맞받아쳤다. 대사는 그 여인을 그냥 지나쳤다. 곡식을 관장하는 여인이 지모신(地母神)이었음을 , 그 지모신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대사는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 사천왕문이 아침 햇살을 한껏 안고 있다.

다리 아래 이르니 한 여인이 월경에 젖은 월수백(月水帛)을 빨고 있었다. 대사가 물을 달라 청하자 여인은 월수백 빨은 물 그대로를 건넸다. 그러자 대사는 그 물을 엎질러 버리고는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 때 들 한가운데의 소나무 가지에 앉았던 파랑새 한 마리가 ‘제호(醍醐)를 마다한 화상아!’라 하고는 사라졌다.
‘제호’라면 우유에 녹말이나 칡뿌리 가루를 타서 쑨 죽이니 영양식이다. 해골물도 마셨던 원효. 원융무애의 삶을 살았던 대사가 ‘더럽다’는 한 순간의 분별심에 사로잡혀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은 위트 있다.

파랑새가 사라진 소나무 아래를 보니 신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걸음을 이어 관세음보살상을 친견하고는 그 자리 밑을 내려 보았다. 그 곳에도 신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대사는 그 때서야 좀 전에 만난 두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임을 확인한 대사가 성굴(聖崛)에 들어가 의상 스님처럼 관음의 진용을 친견하려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관세음보살이 성사를 직접 맞이하려 했으나 의상 스님을 호위하던 천룡팔부가 막아섰던 것일까? 어쨌든 원효 스님의 발길이 머물며 낙산의 품격은 한층 더해졌다.

▲ 낙산사 전경.

홍련암에 이르자 붉은 해가 떠올랐다. 새벽 바다를 건너 온 빛은 의상대를 서서히 물들이더니 홍련암으로 뻗어 온다. 관세음보살의 광명도 이렇듯 따사로울까? ‘불설관무량수불경’에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설한 대목이 있다.

‘관세음보살의 키는 80만억 나유타 유순이나 되고 몸은 자금색이며 머리 위에는 육계가 있고 목 주위로는 원광(圓光)이 있는데 그 빛이 비쳐지는 거리는 각 방면으로 모두 백천유순이나 되느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가 나유타인데 80만억 나유타라면 얼마나 큰 관세음보살이란 말인가. 그 보살이 내는 광명은 또한 얼마나 밝을까? 강렬한 저 태양빛도 그 광명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늘 우리 곁에 상주해 계시는 보살님이기에 ‘일념으로 부르면 친견’할 수 있는 것이리라.

신라 사람들은 저 낙산에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받으며 삼국전쟁의 상처를 씻어 내고는 안식을 찾았다. 갈등과 반목의 현대를 사는 우리 또한 지금의 낙산에서 위로라도 받아야겠다.

천신들의 공경을 한 몸에 받은 관세음보살이 애써 이 땅으로 강림한 궁극적 이유를 자문해 본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함일 것이다. 재앙과 환난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세음보살과의 만남을 통해 극락과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함이다. 극락문 여는 열쇠는 수미산만큼의 칠보를 주어도 얻지 못한다.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해야만 손에 쥘 수 있다.

열반의 길목에서 만나는 ‘극락’에 가려는 사람들이 간절히 부르는 관세음보살! 그 보살 좀 더 확연히 친견하고자 한다면 낙산사로 가 볼 일이다. ‘일심일념’이 좀 더 청명해지기 때문이다.

1300년 전 울렸던 성굴 파도 소리는 오늘도 들려오고 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참고자료 : ‘삼국유사’(고려대학교출판부), 소은애 논문 ‘신라 문무왕대의 낙산 관음신앙’.

 

 

[도·움·말]

 

 

 

길라잡이

낙산사에는 낙산사 주차장과 의상대 주차장이 있다. 해수관음상을 먼저 보고 싶다면 낙산사 주차장을 시작으로 일주문을 지나 홍예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홍련암 참배를 먼저 하고 싶다면 의상대 주차장을 시작으로 의상대를 지나 해안 길을 따라 가면 된다. 낙산사와 홍련암을 참배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이것만은 꼭!

 
원통보전과 7층석탑: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금당으로 불린다.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후 흙으로 빚은 관음불을 금당에 안치하며 낙산사가 창건됐다. 7층 석탑은 원통보전 앞에 있다. 높이 6.2m. 보물 499호다.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탑신에 비해 기단의 폭이 좁고 옥개석의 체감비율도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수관음상: 1972년 착공 돼 1977년 11월 점안됐다. 높이 16m, 최대너비 6m의 입불이다. 대좌 위 연꽃 위에 서 있으며 왼손에 감로수병을 들고 있다. 해수관음상 앞에 관음전이 있다.

 

 

 

 

 
보타전: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함께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불전 안에는 1500관음상이 봉안돼 있으며 낙산사에서 가장 큰 전각이다. 1993년 조성된 이 전각은 2005년 산불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의상대: 의상 스님이 산세를 살피고 좌선에 든 곳이다. 언제부터 존재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의상대를 소재로 한 체조 스님의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8세기에도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1377호 / 2017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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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2017-02-03 07:44:40
좋은 글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