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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충만한 삶

기자명 조정육

남김없이 피고 진 자리에 솟는 희망의 새순

▲ 조재임, ‘바람숲’, 55×89cm, 장지에 분채, 석채, 생견, 순지, 2013 : 무리지어 핀 풀꽃의 합창을 들어본 적 있는가. 네가 곧 나야. 네가 있어 나도 살아. 이파리는 줄기에게, 꽃잎은 나비에게 서로 어깨 내어주고 의지하며 노래한다. 풀꽃처럼 살라고 우렁차게 소리친다. 바람 불고 빗방울 떨어져 잠시 주저앉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하늘 향한 풀들의 어깨동무. 손에 손잡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풀들에게 구름이 내려앉는다. 행복이 스며든다. 우리 머리 위에도 구름이 흐른다.

점심 무렵 산책을 나갔다. 햇볕을 쬐기 위해서였다. 노루꼬리만 한 햇볕이 스러지기 전에 서둘렀다. 옛날 사람들은 표현력도 참 대단하다. 겨울 햇볕이 얼마나 짧으면 개꼬리도 아니고 노루꼬리라 했을까. 사물에 대한 진지한 관찰에서만 나올 수 있는 비유다. 지금도 이 비유법을 대체할 만한 표현이 없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가 사물을 건성건성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은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도 아까워 방안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발이 시리면 전기방석을 깔고, 등이 시리면 등에 전기매트를 둘렀다. 전기에 둘러싸여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은 흡사 미래영화에 나오는 기계인간 같았다. 그런 내가 인생을 굉장히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였다. 큰 병을 치르고 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모하게 살았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후회가 밀려왔지만 너무 늦지 않게 깨달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김수영은 ‘봄밤’이란 시에서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이 태양보다 혁혁해 보일 때가 있었다.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중략) 결코 서둘지 말라’고 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했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햇볕 쬐기 위해 나선 산책길서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생각
지혜와 지식으로 봉사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사람의 도리

지금은 발이 시리면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나가 걷는다. 걷는 것은 단순히 손발이 따뜻해져서만 좋은 것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온 몸을 움직여 한 시간 동안 걷다보면 마음 상했던 일과 억눌렸던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홍콩에는 닭장집이 있다. 싱가포르는 인권침해가 심하다. 등등의 해외 사례를 떠올리며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결코 당연하지가 않다. 나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졌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맹자가 양혜왕(梁惠王)을 만나자 왕이 말하였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 아니하고 오셨으니,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일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역시 인의(仁義)라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찌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하시면, 높은 관리들은 ‘어찌하면 내 가문을 이롭게 할까’라고 생각할 것이고, 백성들 역시 ‘어찌하면 내 자신을 이롭게 할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 사람들이 서로 이익만 취하려 해서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중략) 진실로 정의를 뒤로 미루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어질면서 자기 어버이를 버린 사람이 없고, 의로우면서 임금을 배반한 사람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역시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하필이면 이익을 거론하십니까?”

‘맹자(孟子)’의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로움(利)만 챙기는 위정자에게 어짊과 의로움(仁義)이 먼저라고 일갈하는 내용이다. 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사람의 도리를 말할 수 있는 맹자가 자랑스럽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에게는 왜 맹자 같은 사람이 없었을까. 왜 없었겠는가. 귀 기울여 듣지 않았겠지. 나이든 사람은 지혜로 도와주고, 많이 배운 사람은 지식으로 봉사하고, 더 가진 사람은 재산으로 구휼하는 것.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지식인의 책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다. 그런데 왜 하필 이익을 거론할까. 아니 왜 이익만을 챙길까. 이런 생각들은 아무리 오랫동안 걸어도 발바닥을 통해 쉬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나는 맹자처럼 당당하게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혹시 연탄재 만진 시커먼 손으로 흰옷 입은 사람 옷을 더럽히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더욱 발걸음이 무겁다.

오늘 날씨도 역시 춥다. 춥다 못해 맵다. 입춘이 지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봄 역시 노루꼬리만큼만 기미를 보여준 까닭에 봄이 올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냇가에 선 버드나무 줄기에는 어느새 연둣빛 기운이 감돈다. 봄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위안을 삼아도 아직은 춥다.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더욱 춥다. 작년에 피었다 진 억새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한때 나는 죽은 억새풀을 보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새봄이 되면 다른 풀들은 말끔하게 깎으면서 왜 다 죽은 억새풀은 남겨놓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우연히 어떤 책을 읽고 해답을 얻었다. 촘촘히 뻗은 죽은 억새풀들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중심을 잡아주어 새순이 곧게 자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술논문을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 논리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글을 읽고 탁견이라 생각했다. 재난 현장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은 채 웅크리고 죽은 어머니를 보는 듯했다. 억새풀은 생명이 다한 이후에도 새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구나. 그런 감동도 함께였다. 사람의 가치는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때 눈부시다.

박노해는 ‘다른 길: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이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자이지요. 이 초원의 꽃들처럼 남김없이 피고 지기를 바래요. 내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새 풀이 돋아나고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겠지요.”

팔십 노인이 한 얘기가 아니다. 야크 젖을 짜던 스무 살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천막집으로 들어가면서 한 얘기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우주적인 진리를 깨달았을까. 태생적으로 랍비 같은 지혜를 갖춘 여인이 아니었다면 초원의 바람소리가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사람은 억새풀처럼 산다. 이런 인생은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상관없다. 젊은 누군가의 인생이 곧게 피어날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주고 중심을 잡아준다면 달의 행로와 비슷하게 회전해도 괜찮다. 아니 훌륭하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억새풀처럼 죽어서까지 바람막이는 되지 못할망정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함께 사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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