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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 그림을 만나 이미지가 되다

  • 불서
  • 입력 2017.02.27 13:50
  • 수정 2017.02.2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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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좋은날’ / 채지충 지음·정광훈 옮김 / 느낌이 있는 책

▲ ‘매일 매일이 좋은날’
“운문문언 선사가 말했다. ‘봄에는 백화가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네.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쓰지 않으면, 그것이 곧 인생의 좋은 시절.’ 선은 무아 속에서 시공으로 들어가 영원히 이 찰나의 순간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대 마음은 마치 거울처럼 항상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관념에 빠질 시간이 없다. 그는 이때와 저때를 나누는 분별심이 없어, 어떤 상황이든 영원히 시시각각이 좋은 시절이고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그렇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대자유인이 되었기에, 매일 매일이 그저 좋은 날이다. 선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스승과 제자 간, 혹은 도반끼리 나누는 선문답이다. 그래서 선문답은 깨달음의 정수를 담고 있어 수행자들을 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어 왔다. 선문답에 장황한 교리 해설이나 미사여구 없이 일상적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읽기 힘든 내용은 없다. 하지만 글자만 보고 따라가다 보면 이내 막다른 길에 이르고 만다.

특히 단순해 보이는 대화가 일상의 시각으로 보면 평범한 법칙에서 벗어난 동문서답에 가깝다. 선에서는 쉽게 규정짓고 분별하는 것을 금하며 진리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생각을 무너뜨리라고 말한다. 때문에 쉬운 언어로 쓰였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선어를 격외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그동안 수많은 선지식이 길잡이가 되어 막다른 길 끝에서 헤매는 수행자들 미로에서 벗어나도록 안내해왔다. ‘덕산 방’ ‘임제 할’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만의 만화가 채지충이 그림으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깨달음의 정수를 그림으로 안내하는 선지식”으로 불리는 채지충은 공자, 맹자, 손자, 장자의 사상을 담은 중국 고전을 해학적이고 쉽게 풀어내 45개국 1억 명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며 중화권 만화의 입지를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 깨달음 얻은 선사에겐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채지충 作.

“도겸 선사가 친구 종원과 함께 행각의 수행에 나섰다. 종원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여정이 너무나 힘들어 몇 번이나 돌아가려고 했다. 도겸 선사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 수행하며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인제 와서 중도에 포기하고 가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겠나? 지금부터 내가 자네의 수고를 대신해 주겠네. 다만 다섯 가지 일은 도와줄 수가 없네.’ 종원이 물었다. ‘다섯 가지가 무엇인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길을 가는 것이네.’ 이에 종원은 크게 깨닫고 다시는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 책 ‘매일 매일이 좋은날’은 이처럼 임제, 조주, 도겸, 운문 등 선지식들의 선문답과 설법이 채 화백의 선화와 함께 실렸다. 선문답이 선화를 만나면서 문장의 나열을 넘어 맑고 정갈한 하나의 이미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순간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만나는 동안 마음 닦기의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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