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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수좌회의 씁쓸한 ‘직선제’ 지지 선언

  • 기자칼럼
  • 입력 2017.03.24 19:23
  • 수정 2017.03.28 09:37
  • 댓글 61

1947년 가을. 청담, 성철, 향곡, 우봉, 자운 스님 등 당대 젊은 수좌들이 문경 봉암사에 모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혼탁해진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젊은 수좌들의 당찬 결단이었다. 그들은 대처·식육 등 파계가 만연한 한국불교를 재건하는 것은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사는 것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곤 서슬 퍼런 계율을 세우고 목숨을 건 구도행을 발원했다.

대외적인 선언은 없었다. 오히려 산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수행에만 몰두했다. 젊은 수좌들이 봉암사에서 뿜어내는 구도열기는 바람을 타고 세간에 전해졌다. 비록 완전한 결사로 회향하지는 못했지만 젊은 수좌들의 치열한 구도행은 혼탁한 한국불교를 경책하는 장군죽비였다. 또한 그들이 보여준 수좌정신은 바닥으로 추락했던 한국불교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 토대가 됐다.

문득 70년 전 봉암사 결사를 되짚게 된 것은 3월23일 전국선원수좌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때문이다. 제방선원에서 수행에 매진하는 수좌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는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이자 조계종단의 정신적 상징이었기에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부터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가 씁쓸함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종단 집행부를 향한 수좌스님들의 날선 비판으로 시작해 구체적인 대안 없는 ‘총무원장 직선제’ 도입 요구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날 수좌 스님들은 최근 불자수 300만 감소 사태로 대변되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종권과 이권에만 탐착하고 종권연장을 위한 담합과 매수에 골몰하는 권승과 범계승들의 부도덕성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이 파당을 만들어 종권을 장악하고 유력사찰의 주지를 차지하는 비승가적 양태를 보이며 본사와 말사의 주지까지도 자파의 세력으로 채워 승가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직선제’ 시행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스님들은 “한국불교와 조계종단에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오직 청정승가의 확립과 청정한 지도자의 선출”이며 “직선제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자신에 찬 목소리를 드러냈다.
 
기자회견에서 나온 수좌스님들의 발언은 갈수록 쇠락해 가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는 애정 어린 비판일 수 있다. 그러나 “전국선원수좌회가 왜 총무원장 선거 때만 되면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느냐”는 불편한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쏟아낸 발언들이라고 보기에는 사뭇 이해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 송지희 기자

 

무엇보다 청정승가와 불교적 삶을 강조하는 수좌스님들이 한국불교 쇄신을 위해 내놓은 대안이 세속의 제도인 ‘직선제’라는 점이 그렇다. 또 오늘날 한국불교가 직면한 현실은 사부대중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임에도 특정 집단의 탓으로만 돌리며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물론 ‘혼탁한 한국불교를 바로 잡겠다’는 수좌스님들의 드높은 원력은 70년 전 봉암사 결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70년 전 수좌스님들이 ‘나로부터의 변화’를 외친 반면, 오늘날 수좌스님들은 외부의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간극의 차가 한량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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