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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전일하게 하는 공부

기자명 조정육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다

▲ 지호 스님, ‘지장보살도’, 종이에 연한 색, 120x160cm, 2016 : 공부를 하다 보면 그 공부가 자기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문장도 책장이 너덜너덜하도록 되풀이해 읽다 보면 순식간에 이해되는 때가 온다. 그때 비로소 문리가 터진다. 지호 스님이 그린 지장보살도는 고려불화가 원형이다. 그 원형을 바탕으로 경전구절을 써서 그림을 완성했다. 경전으로 쓴 지장보살도다. 공부를 전일하게 하다 보면 이렇게 자기만의 성취를 맛볼 수 있다.

“그 형님이 방송통신대 중국어과에 입학했대.”
“그래? 정말 잘 됐네. 사업 새로 시작하셨나보네. 요즘 중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데 무슨 일 하신대?”
“새로 시작한 건 아니고 워낙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분이니까 시간 여유 있을 때 공부해두려는 거지.”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구나. 그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내가 예전에 알아봤다니까.”

은퇴 후에도 공부 이어가며
주변에 용기·희망 주는 지인
어려워도 반복하면 익숙해져
생각 거듭하면 통찰력 얻어

늦은 저녁, 모임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분 얘기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도 훨씬 지난 나이에 다시 대학에 입학했단다.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기왕 공부할 바에는 제대로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란다. 그분은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 모셨던 상사로 은퇴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상사라 어려워서 만나지 못했고, 그분이 은퇴한 후에는 부담이 없어 부부동반으로 여러 차례 만났다. 은퇴 후에 만나는 관계는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는다. 그분은 대학 후배인 남편을 자상하게 잘 챙겨주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때문인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한참 후배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분과 만나고 돌아올 때는 왠지 내가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웬만하면 높은 사람들 만나기를 피하는 내가 자발적으로 만나자고 할 정도였으니 그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특별했음이 분명하다.

“배우긴 배웠는데 제대로 배운 거지. 자신이 배운 지식을 무기 삼아 나쁜 짓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형님은 그렇게 살지 않잖아?”
“맞아. 배우는 것 따로 실천하는 것 따로인 사람들이 태반이지. 육십이 넘었는데도 사고가 열려 있었던 비법이 끊임없는 학구열에 있었나봐.” 

좋은 사람에 대한 소식은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다. 한 사람이 모범적으로 살면 그 삶의 결과가 개인 한사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일파만파로 퍼져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촘촘히 짜인 인드라망처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몇 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달리다 보면 몇 달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2017년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벌써 올해의 4분의 1이 흘러가버렸다. 어어,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사분기가 지나고 이사분기에 들어왔다. 올해만큼은 꼭 해내야지 싶었던 목록 중 몇 개는 벌써 지워버린 것도 있다. 끈기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여 모든 계획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이 육십이 넘어 학생이 된 사람도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잠시 대충대충 했더라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어’의 ‘위령공’편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생각해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으며, 배우는 것이 더 나았다.’ ‘순자’의 ‘권학’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 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 동안 공부한 것만 못하였다.’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라도 더 배우라는 충고다.

도일(道一)이라는 사문이 전법원에 머물면서 매일 좌선(坐禪)을 하고 있었다. 회양(懷讓)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아보고서 곁에 가서 물었다.

“대덕은 좌선을 해서 무엇을 도모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대사는 바로 벽돌 하나를 잡아서 절 앞의 바위 위에다 갈았다. 도일이 이를 보고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벽돌을 갑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하거늘, 어찌 좌선을 하여 부처를 이루겠는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소가 수레를 몰고 가는 것과 같으니,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옳은가, 소를 때려야 옳은가?” 도일이 대답이 없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 것인가. 앉은뱅이 부처를 배우는 것인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고 눕는 데 있지 않고, 만일 앉은뱅이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머무름이 없는 법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만일 앉은뱅이 부처라면 곧 부처를 죽이는 일이니, 만약 앉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한 것이 아니다.” 도일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자, 마치 제호(醍?)를 마신 것 같았다.

언제 읽어봐도 큰 가르침을 주는 남악회양과 마조도일의 대화는 ‘경덕전등록’에 나온다. 제호는 우유를 숙성시켜 만든 유제품 중 최상의 품질을 가진 것을 뜻한다. 우유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음료수 중에서 자신이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을 생각해도 좋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마침내 핵심에 이르는 과정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본질과 핵심을 짚어냈을 때의 심정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신 듯 경쾌했으리라.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는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것처럼 허망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벽돌 갈기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노력이 있어 스승도 만나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 중에 가장 행복한 공부는 역시 마음공부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책도 처음 읽을 때는 낯선 문장이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낯익어진다. 익숙해지면 나의 것이 되고 어느덧 나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책을 되풀이하여 읽어도 나이에 따라 혹은 공부의 숙성 정도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장을 넘기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일 수도 있다. 거기서 물러서면 상처만 남는다. 벽돌만 갈다 거울도 만들지 못한 사람처럼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날카로운 종이라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되풀이하여 넘기면 손가락에 상처 입는 일은 없게 된다. 어느새 낯선 문장과 예리한 종잇장이 고분고분해지고 순해진다. 그때까지 읽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궁리해도 알 수 없었던 의미가 어느 순간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어질 때의 통쾌함. 그것이 아마 제호의 맛일 것이다. 경전과 고전도 마찬가지다. ‘퇴계문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물의 이치가 남김없이 이해되고 깨어있음이 전일(專一)하게 되는 것은, 모두 공부가 깊이 나아간 뒤에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다.’ ‘전일(專一)’은 ‘마음과 힘을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쓰는 것’을 뜻한다. 잠깐의 노력만으로 제풀에 지친다면 제호의 맛을 알 수 없다. 전일하게 공부해야 맛볼 수 있다. 4월이다. 공부하기 좋은 달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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