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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출가정신으로 사는 것

기자명 조정육

조건 바뀐다 해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산다

▲ 강요배, ‘월아사(月芽沙)’, 캔버스에 아크릴, 97x145.5cm, 2010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였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실크로드의 월아천이었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호화요트여행도 아니고 럭셔리한 골프여행도 아닌 뜨거운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순례여행은 그런 것이다. 목마른 내 삶에 시원한 물을 들이켤 수 있게 해 주는 곳, 그곳을 찾아가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올해 아흔세 살인 그녀는 열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녀가 젊었을 때는 다산이 시대의 트렌드라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친정집도 부유했고 시댁도 넉넉해 도와주는 일손이 많았다. 때론 병에 걸려, 때론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는 집안이 많았지만 그녀의 집은 예외였다. 열 명의 자식들이 한결같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했다. 잔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는데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열 명의 자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홍복이 따로 없었다.

믿었던 자식들에 수모당한 뒤
출가·수행으로 적멸에 든 소나
모두가 출가할 수는 없겠지만
출가 정신으로 산다면 충분해

그런 어느 날이었다. 눈매가 선한 남편이 그녀를 부르더니 폭탄선언을 했다. 자식도 여러 명 낳아 가문의 대를 이었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도 잘 관리하여 노후 걱정없게 해두었으니 자신은 이제 출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눈매 선한 남편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집은 적막하고 괴괴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그리워졌다. 아이들로 북적거리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음을 나누며 대화할 사람 하나 곁에 없는데. 그녀는 옛날처럼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내 자식들. 내가 함께 살자고만 하면 어떤 자식이고 마다하지 않고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그녀는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은 희망에 부풀어 집과 예금 등 전 재산을 정리해 골고루 분배해줬다. 그녀 앞으로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유산을 받은 자식들은 감격했다. 서로 자신들의 집에 어머니를 모시겠다며 팔을 잡아끌었다. 역시 내가 자식 농사는 잘 지었지. 왜 진즉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녀는 큰집에서 혼자 지냈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오직 행복한 노년의 시간만이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확인하는 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재산을 줄 때는 평생 모시고 살 것처럼 살갑게 대하던 자식들이 막상 늙은 어머니가 빈털터리가 되자 완전히 태도가 바뀌었다. 어느 집에 가든 며칠도 되지 않아 노모를 거추장스러워했다. 행여 그녀가 체류하는 기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형제도 많은데 왜 자신이 어머니를 모셔야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어떤 자식은 형이 받은 땅 위치가 더 좋다고 불평했고, 어떤 자식은 동생이 받은 집 가치가 더 높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열 명의 자식들 모두가 빈털터리 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이유를 열 가지쯤은 가지고 있었다.

정말 얘들이 내 자식들이 맞을까. 정말 내 속으로 낳아 애지중지 기른 내 자식들이 맞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식들의 태도는 낯설고 남 같았다. 아니 남보다도 못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결혼 후에도 넉넉하게 살아온 그녀로서는 난생처음 당해 본 수모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외롭고 쓸쓸해도 혼자 살 것을. 후회와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천덕꾸러기 신세를 모면하고 싶었지만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주고 난 터라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오직 막막한 노년의 시간만이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녀는 2017년 대한민국에 사는 노인이 아니라 2500여년 전 부처님 시대에 살았던 ‘소나’라는 여인이다. 그런데 마치 우리시대의 노인을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10년 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령화사회가 아니라 초고령화사회다. 손길이 필요한 노인은 많고 손을 내밀어야 할 자식들은 적으니 소나 같은 노인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식들만을 나무랄 수도 없다. 부양하고 싶어도 부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며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위협을 느낄 정도로 삶의 조건이 피폐하다. 오죽하면 결혼은커녕 연애마저 포기한 사람이 늘어날까.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모두가 살기 힘든 나라. 그곳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것이 어찌 우리 대한민국만의 문제겠는가. 혜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소나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내가 이렇게 멸시받으며 집에서 살아봤자 무엇하겠는가?’

결국 그녀는 출가를 단행한다. 늦은 나이에 출가한 만큼 그녀의 각오는 남달랐다. 낮에는 다른 수행자들을 위해 헌신했고, 밤에는 자신의 수행을 위해 정진했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수행을 허물어져가는 노인의 몸으로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낮은 건물 기둥을 손으로 잡고 발걸음을 옮기며 수행했고, 어두운 곳에서는 머리가 다치지 않도록 나무에 손을 대고 걸으며 수행했다. 그 결과 부처님으로부터 ‘열심히 노력하는 수행자 가운데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오래지 않아 해탈을 얻어 집착 없는 적멸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수행하기에는 출가가 최상의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 하여 우리 모두가 소나처럼 출가할 수는 없다. 다만 출가의 정신으로 살아도 충분하다. 출가의 정신은 무엇일까. 출가해 본 적이 없으니 잘 알지 못한다. 모르지만 찾는 노력은 필요하다. 법보신문에서 주최하는 삼국유사 성지순례에 참여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지난달에는 순례팀을 따라 익산 미륵사지에 다녀왔다. 열 번도 넘게 다녀 온 미륵사지를 다시 갔다 온 이유는, 갔다 오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조건은 쉽게 바뀌지 않고 그 조건 위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기는 더욱 쉽지 않다. 바뀌지 않는 조건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출가 정신일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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