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성심당 가족들의 나누며 살기
16. 성심당 가족들의 나누며 살기
  • 김정빈 교수
  • 승인 2017.04.2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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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세요”

▲ 그림=근호

대전에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있다. 대전 역사(驛舍)에도 있고, 원도심에도 있고, 롯데 백화점에도 있다. 자매 식당 격인 여섯 곳과 빵집 세 곳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400명에 이른다.

성심당 창업주 월남하며 결심
성장일로 달리던 2005년 화재
전화위복 계기돼 현재까지 번창
사훈은 열심히 일하고 나누는 것

성심당은 임길순에 의해 창업되었다. 1912년생인 그는 함경남도 함주에서 자랐다. 한국 전쟁 때 남으로 내려왔다. 가족과 함께 흥남 부두로 갔을 때 부두에는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영화 ‘국제시장’과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배경이 되었던 흥남 철수 작전 덕분에 그와 그의 가족은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러구러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1955년에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를 타고 흥남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동안 여생을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던 임길순은 찐빵 300개를 만들면 200개는 팔고 100개는 남에게 주었다. 뱃전에서 했던 결심을 실천하려면 이 정도는 당연했다.

임길순은 남에게 빵을 나누어 주는 일을 공짜는커녕 복리 계산으로 돌아온다고 말했고, 한덕순은 그런 남편에게 당신은 천당에 가겠지만 나는 못 갈 거라며 눙쳤다. 여장부 같았던 한덕순이 허리에 전대를 차고 길을 가면 소매치기가 많았던 그 시절에도 끼니를 굶는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 주는 빵집 안주인인 그녀를 건드리는 소매치기는 없었다고 한다.

공장을 증축하던 때 구청 허가를 받는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철거반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철거반장이 빵집을 둘러 본 다음 직원들을 데리고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철거반장이 은혜를 갚은 셈 친 거였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길순이 고인의 장례를 꼼꼼히 챙겨준 일이 있었던 것이다.

2005년 1월22일, 성장 일로를 달리던 성심당이 불길에 휩싸였다. 대전의 명소였던 성심당 1층 매장 일부와 3층 공장이 폐허로 변했다. 성심당이 불붙기 시작할 때 창업주의 며느리인 김미진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불타는 성심당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던 그녀는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성당으로 들어가 실컷 울었다.

잠시 후, 무릎을 꿇고 있던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후련하고 상쾌했다. 서울에 피정을 간 남편과 큰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둘째 아들, 학교에서 공부하던 막내딸이 식당에 모여 앉았다.

텔레비전이 화재 소식을 전하고 거리에선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지만 미진은 침착했다. “우리 지금까지 참 열심히 했지?”하고 그녀가 말했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생 큰딸이 피식 웃었다. “휴학할래요.” 둘째 아들은 군 입대를 택했다. “그래, 다들 고생했다.” 그들 가족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대기업 제과점과의 승부에서 밀리는 중이었다. 고군분투하는 동안 빚이 늘었고,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더 곤란한 것은 앞길이 어두운 것을 아는 직원들의 사기가 현저하게 떨어진 점이었다. 그래서 사업을 접기로 마음먹으려는 차에 불이 난 것을 미진은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튿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모여 잿더미 속에서 집기를 찾아 닦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리적 성심당이 죽자 정신적 성심당이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잿더미 속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라고 써붙였다. 엿새 후, 임시 공장에서 앙금빵과 카스테라를 만들었다. 그 빵을 들고 모두들 엉엉 소리를 내며 아이처럼 울었다.

화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별생각 없이 일하던 사람들은 성심당을 나가고, 빵 만들기와 팔기를 좋아하는 사람, 남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만 남았다. 창업주의 아들이자 성심당의 현 대표인 임영진은 그때 성심당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세련된 빵이 아니라 촌스럽고 투박해도 따뜻함이 넘치는’ 성심당의 빵은 그렇게 재탄생되었다.

임 대표는 공유경제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십시오’라는 성서 구절을 적어 붙여 놓고 포콜라레(focolare: 벽난로) 운동에 참여하는 그는 매달 3000만원 어치의 빵을 기부하고, 수익의 15퍼센트를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돌려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사업장에 ‘주님이 사업을 번창케 하리라’는 유의 글을 걸어놓지만 성심당 곳곳에는 ‘모든 사람이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 임 대표는, 회사가 직원을 배려하는 것,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것, 회사가 이익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이 사훈의 실천으로 여긴다.

“만일 다시 화재가 난다면?”하고 취재 나온 신문기자가 묻자 임 대표의 가족들은 “와!”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임 대표의 큰 딸이 말했다. “아빠는 저금을 못하게 하시고, 보험도 안 드세요.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을 줄 알고 그러느냐는 거예요. 그저 열심히 일하고, 벌어서 쓰고, 남는 건 다 어려운 사람 주고, 그러다 저 세상 가면 된다는 거죠. 저에게 대학 가라는 말씀 한 번도 안 하셨어요. ‘대학 입학증 들고 오는 날 죽을지도 몰라’라고 하시면서 말예요.”

광고를 하지 않고도, 시식 빵을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내놓으면서도, 같은 값의 빵을 더 크게 만들면서도, 갓 구운 빵만 팔면서도 성심당은 지금 번창 중이다.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를 안에서도 보고 밖에서도 보아야 한다. 안에서 볼 때 불경과 성경은 일점의 오류도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밖에서 볼 때 그것들은 6000년 인류사의 어느 시점에 등장한 문서 자료들일뿐이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자 종교적 존재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나는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시간 중 짧은 한 단락을 차지할 뿐이지만 종교적 존재로서는 시간을 능히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물리적 존재이자 정신적 존재이다. 물리적 존재로서 나는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한 공간을 차지할 뿐이지만 정신적 존재로서는 우주를 인지, 분석하고, 내 삶의 의미를 선택, 결정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불교인이고, 성심당 가족들은 가톨릭인들이다. 그러나 모든 시간을 종교 안에만 머물 수는 없다. 그래서 종교 밖으로 나오면 성심당 가족들과 함께 나는 종교인이기 이전의 인간이다.

한 인간으로서, 나는 성심당 가족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 오랜 벗 부끄러움이 나에게 말한다. 열심히 살라고, 많이 나누라고. 그가 다시 말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위기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죽음까지도 그러하다고.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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