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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생각에서 자재하면 두려움 사라진다

기자명 정운 스님

구름 흩어지면 해 절로 드러나

원문:수도자가 수행의 요결을 알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에 한 물건도 집착하지 말라. 부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 곧 비유하자면 법신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법신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법신이 허공 곳곳에 두루 펼쳐져 있어 허공 가운데 법신이 함용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법신이 곧 허공이고, 허공이 곧 법신인줄을 모르는 것이다.

법신·진여·여여·여래 모두
깨달음 당체의 인격적 표현
번뇌 끊으면 열반이  아니라
번뇌 그 자리가 열반의 자리

혹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법신이 아니다. 또한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해도 법신은 허공이 아니다. 다만 ‘허공’이 실재한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않으면, 허공이 곧 법신이다. 또한 ‘법신’이 실재한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않으면, 법신이 곧 허공이다. 허공과 법신의 형상에 차이가 없으며, 부처와 중생의 형상에도 차이가 없다. 생사와 열반이 다르지 않으며, 번뇌와 보리도 다르지 않다. 일체의 상을 여읜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경지이다.  

범부는 경계에 집착하고, 도인은 마음에 집착한다. 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는 것이 참된 법이다. 그러나 경계를 잊기는 쉽지만, 마음을 잊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공에 떨어져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이 사라질까 두려워서이다. 공도 본래 공이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참된 법계일 뿐이다.

해설:원문에서 ‘부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는 부분을 보자. 법신은 진여(眞如)요, 여여(如如)요, 여래이다. 또한 법신은 여래의 당체로서 깨달음을 상징하며, 깨달음을 인격적으로 표현한다. 곧 법성이나 불성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이 의미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5조 홍인은 “구름이 아닌 태양 그 자체를 보아야 하는데 수심(守心)만 잘 한다면 망념이 일어나지 않으며, 마음이 본래 청정하므로 부처와 동일한 본성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구름을 번뇌에 비유하고,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불성에 비유하였다. 마조의 제자인 백장도 “마음이 허공과 같이 지혜의 해가 저절로 나타나는데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6조 혜능도 ‘육조단경 참회품’에서 선(善)한 자성을 태양과 달에, 악(惡)한 성품을 구름에 비유하였다.

이렇게 여러 선사들이 불성을 태양에, 번뇌를 구름에 비유한 반면 황벽은 법신[불성]을 허공에, 번뇌를 태양에 비유하였다. 모든 선사들의 비유는 망(妄)을 꿰뚫어 참됨 법신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망을 여의어야 참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망 속에 참됨이 있는 것이다. ‘유마경’에서 ‘번뇌를 끊고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일어난 그 자리에서 열반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곧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을 얻을 필요가 없는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달마가 강조한 불안한 마음 이외에 안심할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번뇌가 일어난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요[煩惱卽菩提], 생사가 일어난 그 자리가 열반의 자리이다[生死卽涅槃]. 그래서 황벽은 ‘부처와 중생의 형상에도 차이가 없고, 생사와 열반도 다르지 않으며, 번뇌와 보리도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원문에서 ‘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는 것이 참된 법이다’라는 내용을 보자. 이 부분은 선리(禪理)가 아닌 ‘천수경’ 내용을 이끌어 삶과 연관지어보자. 경에 “죄에는 본 성품이 없고 단지 그 마음에 따라 일어나니, 만약 그 마음이 멸한다면 죄도 또한 없어지고 죄와 마음, 이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면 곧 진실한 참회이다” 이 내용은 단순한 참회를 넘어 공사상이 담겨 있다.

전반적으로 사람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두려움, 비굴함, 자괴감, 낮은 자존감으로 자승자박하는 경우가 많다. 허상으로 만든 것에 스스로 실체가 있다고 착각하고 괴로워한다. 죄의식이라는 것도 번뇌가 만들어낸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곧 죄라고 하는 경계와 그 마음이 만들어낸 죄의식, 두 가지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대부분도 생각과 관념으로 만든다. 만약 이 생각과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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