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7.22 토 17:00
> 특별기획 > 부처님오신날 특집
어머니 향한 마지막 효도, 부처님 전에 바치는 사모곡총무원장상(대상)-김승은
법보신문  |  webmaster@beop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01  19:55:2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그림=육순호

“누나 빨리 좀 내려오면 안돼?”

절박한 막내 동생의 전화에 친정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함을 느꼈다.

“25일 내려갈게”

자식들 나눠 줄 김장을 담그다
허리 다쳐 2년째 병원서 투병

치매·폐렴·부정맥 중환자실
고통으로 수시로 소리 질러

대다라니 108독송·사경하며
병실서 어머니 마지막 간호

오래 집 비워 잠시 다녀오려다
간병인 늦은 탓에 사경 마무리

사경 끝내자 어머니 이별 직감
식구들 모두 불러 마지막 임종

간병인이 갑작스레 늦은 것은
임종을 지키라는 부처님 가피


2017년 정유년 설을 앞두고 가정일이나 사찰신도회일이나 바빴지만 동생의 음성이 귀에 쟁쟁거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급한 일을 대충 해놓고 설날 전에 잠시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부산행 KTX를 탔다.

어머니는 자식들 줄려고 김치를 담그다 허리를 다쳐 2년째 요양병원에서 투병생활하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뵈러 가는 중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병석에 계신 어머니를 자주 뵙지 못해 늘 죄스러웠다. 금방이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아이처럼 누워 간병을 받고 있다.

기억 속 어머니는 불사조였다. 힘들 때마다 염호하면 어떤 모습으로든 화현하시는 관세음보살처럼. 내려가는 내내 쏟아지는 걱정을 관세음보살 정근으로 달랬다. 어머니에 관한 이런저런 상념으로 기차는 금방 부산역에 도착하였고 마중 나온 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의 표정은 무거웠다. 병원으로 가는 10여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병실에서 만난 어머니는 너무 낯설었다. 치매초기가 와서 머리에 지우개를 갖고 계시는지 딸을 보고도 표정이 없으셨다.

나를 보면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뻐하시던 어머니. 내가 금방이라도 가버릴까 봐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찾으시던 어머니. 배뇨가 잘 안 돼 몸은 몰라볼 정도로 부어있었다. 폐렴까지 걸린 어머니의 코엔 산소호스가 연결되어 있었고 호스를 뽑지 못하도록 두 손에 벙어리장갑을 차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져 어머니를 안았더니 고통스럽게 고함을 치셨다. 놀라서 살펴보니 어깨부터 팔까지 대상포진이 와 있었다. 의료진을 불러 포진 부위를 보여줬다. 의료진은 모르고 있었다. 상태로 봐선 경과가 좀 된 것 같았다.

방치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당황해하는 의료진과 간병인에게 화가 났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우리남매는 급히 부산대학병원 응급실로 어머니를 옮겼다. 치매로 인해 의사표현이 서툰 어머니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앰뷸런스 안에서 나의 손만 꼭 잡은 채 말씀이 없으셨다. 딸과 함께 타고 가는 이 길이 집으로 가는 길인 줄 알고 계셨는지 평온해 보였다.

병원에서 새로운 검사가 진행되었다. 폐렴으로 폐 손상이 심했고 부정맥이 와서 위험하다고 했다. 퉁퉁 부은 어머니 몸엔 소변호스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치매로 소리를 지르시는 바람에 1인실을 사용해야 했다. 처음 사용하시는 특실이었다. 치매만 없었다면 비싼 병실 이용한다고 혼을 내셨으리라. ‘아야’하며 소리를 지르실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관세음보살을 염호하면서 어머니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기도했다.

어머니는 묽은 미음을 드셨다. 그러나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음식호스를 코를 통해 위속으로 연결해야했다. 어머니 몸에 걸린 줄들이 고달픈 인생이 주는 슬픈 훈장처럼 보여 가슴이 무너졌다. 하나씩 기능을 잃어가는 어머니. 문득 스님께 들은 법문이 떠올랐다.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가 울림이 되어 가슴에 사무쳤다. 죄스러웠다.

이렇게 무상한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도리에 소홀했던 나. 나는 어머니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거추장스런 것들을 싫어하셨다. 그런데 연명을 위해 몸에 걸친 의료기구들이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대학병원으로 옮긴 뒤 내가 어머니 간병을 대신하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가 될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가슴을 저몄다. 남들 자주하는 여행 한번 같이 못하고 손잡고 다정하게 백화점 쇼핑 한번 못해본 나의 어머니. 외동딸인 나에게 어머니는 “남들처럼 나도 딸이랑 시장 다니고 구경 다니고 싶다”고 늘 넋두리처럼 말씀 하셨지만 그게 뭐가 어렵다고 못해 드렸는지. 회한이 온몸을 저리게 휘감아 왔다. 소풍삼아 어머니 모시고 절에 갈 때면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어머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담당의사의 말은 꿈인 듯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어머니는 아무리 아파도 한밤 자고 나면 오뚝이처럼 일어나셨다. 나는 신묘장구대다라니경을 독송하며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매달렸다. 불편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그러다 지치면 아기가 되어 주무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평생을 불자로 살아오신 어머니. 향 내음을 향수처럼 좋아하셨던 어머니. 어머니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하려고 유튜브에 있는 ‘금강경’을 들려 드렸다. 평소에 즐겨 들으시던 경전이었다.

경전을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고 합장을 하셨다. 의식 속에 가둬뒀던 언어들을 반추하듯 또박또박 기도를 하셨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사랑합니다.”

기적처럼 반갑고 그리웠던 어머니의 기도 모습이었다. 오랜 병고로 예전의 모습이 아니지만 어머니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으로 화현하셔서 나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다.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는 나는 어머니를 위해 신묘대다라니 108독송과 108번 사경기도를 하기로 하였다. 병실 침대에 부착된 환자용 식탁을 펼쳐놓고 어머니 앞에서 사경을 하면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고 고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와 오래토록 살 것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토록 그렸던 어머니와의 시간을 어머니가 많이 아파서야 갖게 되었다. 불효를 하며 살아온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관세음보살님의 보살핌인지 기도하고 사경하는 내내 어머니는 조용히 계셨다. 어머니는 힘든 투병 속에서도 잘 견뎌주셨다. 해마다 설날 다음날은 우리 4남매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를 모시고 근교로 나가 어머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올케가 보내준 설날 떡국 국물을 세배 대신 어머니 입에 조금씩 넣어드리고 남은 건더기를 먹는데 눈물이 흘려내려 삼킬 수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담당의사의 말도 잊은 채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어머니는 오래토록 계실 것만 같았다. 부처님의 가호를 믿으며 설날 연휴에 문병 차 내려온 식구들이 같이 집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 걱정도 되고 간병하느라 심신도 지쳐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연휴로 간병인을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 상태는 일반 간병과는 달라 경험이 풍부한 간병인이 필요했다. 연휴 끝나고 출근해야 하는 식구들은 먼저 올려 보내고 나는 간병인이 온 후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간병인은 설날 연휴 보내고 초삼일 10시까지 오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몇 시간이라도 더 있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을 잡기도 했지만 어머니 앞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독경과 108사경을 꼭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초삼일 간병인이 10시까지 오기로 하였지만 급한 일이 생겨 12시까지 온다고 했다. 아침밥을 음식호스로 넣어드리고 저혈당 조절을 위해 주스를 소량 넣어 드린 후 거즈에 가그린을 묻혀 개운하도록 입안을 닦아드렸다.

나이답지 않게 고운 어머니 얼굴에 내 얼굴을 비비며 이마부터 양볼 턱까지 뽀뽀를 해드렸다. 어머니는 가만히 내 얼굴을 만지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정신이 돌아오신 듯해 감격이 서러움 되어 북받쳐 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눈물을 보여드리기 싫어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머니 젖가슴을 만져 보았다. 따뜻한 젖가슴 아래 어머니의 심장이 고르게 뛰고 있다. 나의 원천 나의 고향. 어머니는 나의 체온을 느끼며 뭔가가 보이는 듯 허공을 향해 옹알이를 하고 계셨다.

“엄마. 평생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오면서 핏방울로 월계관을 만드셨네요. 먹이호스, 소변호스, 생명연명 링거호스는 수고했다고 인생이 주는 훈장 줄 같습니다. 나를 숨겨주고 지켜주던 엄마의 넓은 치마폭은 아기 강보가 되어 팔순엄마는 지금 삶의 잔상들과 옹알이를 하고 있습니다. 서럽고 기막힌 수많은 한을 가슴에 휴지 구기듯 넣고 가슴앓이로 만드시더니 이제 그 휴지를 하나하나 펼쳐 놓으시며 옹알이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모두 다 풀고 가옵소서. 설날 까치가 울면 좋다는데 울 엄마의 옹알이는 아픕니다.”

어머니는 옹알이를 하시고 나는 신묘대다라니 독송을 하니 하모니가 잘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도 건강하실 때 늘 하시던 관세음보살님 정근을 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108독송을 끝내고 108사경에 들어갔다. 108번째 사경을 끝내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직감이 있었다. 불길한 예감. 어머니의 심장 박동기를 보니 수치가 55,54,53…. 계속 떨어진다.

너무 당황하여 간호사를 불렀다. 수치를 본 간호사가 황급히 나가더니 응급 의료진들이 무더기로 들어와 병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응급 의료기구들과 심장충격기 등이 동원되고 의료진들은 긴박한 순간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꿈이길 바라는 모든 상황들이 어머니와 이별의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심폐소생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모습도 커튼에 가려진 무대 뒷모습 같았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광경이 연극무대이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많은 의료진에 둘러싸여 떠나실 준비를 하고 계신 듯 했다. 나는 동생들에게 연락을 했다. 병원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사는 동생들이 모두 도착하기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간절하게 기도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어머니께서 동생들을 보고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동생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설 연휴 중인 조카들까지 모두 왔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모두 도착하자마자 심정지 상태로 들어가셨다. 동생들이 좌우로 서서 어머니의 양쪽 손을 잡으니 어머니는 동생들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으셨다. 아! 어머니는 기다리고 계셨구나. 자식들이 보고 싶어 기다리고 계셨구나. 우리 형제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손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정유년 정월초삼일 오전 11시 편안히 영면에 드셨다.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신묘장구대다라니 108염송을 하고 사경을 하는 내가 기특해 부처님이 내려주신 크나큰 가피였다. 간병인이 도착시간을 12시로 늦춘 것은 부처님의 자비였다. 만약 내가 식구들과 함께 서울 집으로 돌아갔다면 어머니의 임종을 자식들은 지켜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 끝내고 싶었던 신묘장구대다라니 108사경이 어머니의 임종을 우리 4남매가 모두 지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머니를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를 부처님의 가피로 올리게 되었다.

“시방삼세에 함께 계옵시며 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는 거룩한 부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 가없는 어머니를 기리며 부처님 삼보에 사모곡으로 대신 합니다.”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법보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편집국 : 02-725-7014  |  광고문의 : 02-725-7013  |  구독신청 : 02-725-7010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등록일자 : 2005년 11월 29일  |  제호 : 법보신문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