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5.25 목 20:26
> 연재 |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17. 술로 인한 죄업과 고통노약자 취하게 해 재물 빼앗으면
온몸 잘리고 저며지는 형벌 받아
김성순  |  shui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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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6  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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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규환지옥의 별처지옥 중 여덟 번째 철림광야처(鐵林曠野處), 아홉 번째 보암화처(普闇火處), 열 번째 염마라차약광야처(閻魔羅遮約曠野處)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하겠다.

기나긴 지옥의 고통 다하여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끝내 굶주리며 사는 이유는
파계 업 중첩해 쌓았기 때문


철림광야처는 살생, 도둑질, 삿된 행의 세 가지 기본적인 죄업 외에도 술에 독약을 타서 사람을 살해한 죄를 지은 이들이 가게 되는 지옥이다. 이 철림광야처 안에는 뜨거운 불꽃의 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데, 그 밑에는 옥졸에 의해 뜨거운 쇠줄로 묶인 죄인들이 깔려 있다. 옥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바퀴에 깔리는 죄인들을 향해 뜨거운 쇠화살을 쏘아대서 죄인들의 몸에 겨자씨만큼도 성한 곳이 없게 만든다. 죄인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전생에 저지른 살생의 업력으로 인해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계속 다시 살아나 끊임없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수레바퀴 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달아나더라도 이내 지옥의 쇠뱀에게 잡히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먹히고 물리게 된다. 죄인이 기나긴 시간동안 고통을 받으며 죄업이 다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전생의 작은 선업이 익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남은 업력으로 인해 끝내는 뱀에 물려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고 한다.

다음 보암화처는 앞의 세 가지 기본 죄업 외에도 술값을 모르는 이에게 비싸게 술을 팔아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자가 가게 되는 지옥이다. 이 보암화처는 이름 그대로 지옥 전체에 좁쌀만큼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인데, 그 어둠 안에서 뜨거운 불이 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빛이 없는 지옥이다 보니, 죄인들이 서로 공격성을 곤두세우며 상대방을 때리는데, 어둠 속이라 누가 때리는지도 모르고 잡히는 대로 계속 치고받으며 싸운다고 한다. 또한 지옥의 불은 빛이 없는 뜨거운 열뿐이라, 그 어둠 속에서 죄인들은 데이고, 그을리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보암화처에는 불과 폭행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정확하게 죄인들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세로로 이등분하는 톱질의 공포가 버티고 있다.

이 보암화처의 죄인들은 혹여 기나긴 고통으로 죄업을 다 보상하고 난 후에 전생의 작은 선업으로 인해 인간 세상에 다시 나더라도, 남은 업력이 작용하여 늘 목마르고 굶주리는 삶을 살게 되며, 그가 사는 곳에는 흉년이 자주 들게 된다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금하고 있는 술을 다른 이에게 속여서 팔았다는 점에서 파계의 업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게 된 결과라 하겠다.

염마라차약광야처는 세 가지의 기본 죄업 외에, 노약자나 산모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 돈과 의복, 재물 등을 탈취한 죄업으로 인해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이곳 역시 뜨거운 불이 등장하는데, 죄인의 발끝에서부터 타기 시작한 불이 위로 올라가면서 머리끝까지 골고루 그을리게 된다. 지옥의 옥졸은 이렇게 불타고 있는 죄인의 몸을 뜨거운 칼과 창을 써서 점차 고통의 강도를 올려가며 찌르고, 자르며, 베고, 저민다. 한량없는 시간 동안 죽지도 못한 채 이 고통을 다 겪어내던 죄인이 마침내 죄업을 다 갚고 나서 다시 인간 세상에 나더라도 돼지를 기르는 비천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경전 속의 지옥 교설에서는 이처럼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 죄인들이 남아 있는 업력으로 인해 특정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고 제시하는 내용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주로 경전이 서술되던 당시에 최하위층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종사했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전생에 행한 죄업이 지옥의 참혹한 고통을 겪은 뒤에도 그 파장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현생에서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꺼리는 환경에 있게 되기가 쉽다는 정도로 수용하면 될 것이다. 현대적인 시각에서는 직업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겠지만, 경전이 성립된 사회문화적 배경에 비추어 해석한다면 특별히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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