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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처를 죽여서 사리를 얻겠다고-하

웃음, 절박함에도 여백 만들어 상황 바꾸는 힘

▲ ‘덕산탁발’고윤숙 화가

유머는 대개 웃음을 동반하고 웃음을 긍정한다. 그렇지만 유머는 단지 농담이 아니며, 유머감각이란 남들을 웃기는 말재간을 뜻하지 않는다. 유머란 차라리 웃음을 위해 무언가를 망가뜨리거나 웃음 때문에 무언가가 망가짐을 견디는 능력이다. 혹은 어떤 상황에서든 웃을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을 갖는 능력이고, 주어진 상황을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유머감각을 가진 이는 웃음을 통해 주어진 상황에서 몸을 빼 여백과 거리를 만들어내고, 그럼으로써 몸을 돌려 상황을 돌아보며 치고 들어가 사태를 바꾸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주어진 것에 쫓기고 상황에 몰린 이들이 결여하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유머다. 그렇기에 역으로 몰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면, 거기서 몸을 돌릴 곳을 찾을 수 있다. 몸을 돌릴 수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주인과 객을 바꾸어버리고, 눈과 손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선어록을 조금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들을 빈번하게 보았을 터이다. 이런 점에서 유머란 선승들이 가르침을 펴는 방법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둔한 제자 설봉을 깨우치기 위해 
덜 떨어진 스승 역 기꺼이 맡았던
덕산 스님 행동에 선사 유머 담겨

덕산 선감(德山宣鑑)과 제자인 암두와 설봉의 유명한 얘기처럼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싶다. ‘덕산탁발’로 불리는 이 공안은 표면상으로 보면,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지위마저 뒤바꾸어버리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모를 정도로.

설봉은 덕산의 회상에 있으면서 밥 짓는 일을 하였는데, 어느 날 공양이 늦자 덕산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내려오니, 설봉이 말하였다.

“종도 울리지 않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이 늙은이가 발우를 들고 어디 가는 거요?”

이 말을 듣고 덕산은 아무 말 없이 방장실로 돌아갔다. 설봉이 이 일을 사형인 암두에게 이야기 하니 “아이고, 가엽게도 천하의 덕산이 아직 말후구(末後句)를 몰랐구나”라고 했다. 말후구란 ‘최후의 한마디’를 뜻한다. 덕산이 이 말을 전해 듣곤 암두를 방장실로 불러 물었다.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느냐?”

암두가 덕산에게 은밀히 그 이유를 아뢰자(密啓其語), 다음날 덕산이 법상에 올라 설법을 하는데, 과연 평상시와 달랐다. 그걸 보고 암두가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기쁘다. 덕산이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젠 천하의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벽암록’, 중, 158~159)

설봉의 얘기에 암두는 “덕산이 말후구를 몰랐구나”라며 맞장구를 치고, 나중에 암두의 귓속말을 듣고 덕산이 평소와 달라졌다고 하니, 암두의 말후구에 덕산이 뭔가 새로 깨친 듯이 보인다. 표면상 이렇게 해석되기 십상이다. 허나 걸리는 게 있다. 먼저 덕산의 행동이다. 설봉의 비난을 듣고 말없이 방장실로 돌아간 것을 덕산이 자기 잘못을 시인한 것이라고 하면 동쪽으로 쏘아야 할 화살을 서쪽으로 쏜 게 된다. 이처럼 문답을 ‘그만두어 버리는’ 일은 선승들의 행동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상대방의 말을 수긍하여 물러서는 게 아니다. 공양시간에 발우를 들고 오가며 말을 주고받은 것이니, 설봉의 말이나 덕산의 행동이나 모두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일상 속에서의 도와 관련된 문답일 게다. 거기서 도를 공양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귀착시키는 설봉의 말을 덕산은 긍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제자에게 욕을 먹었음에도 다시 대응하기를 그만두고 말없이 돌아온 것이다. 그 뒤에 덕산이 암두를 불러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느냐?”고 물은 것 또한 덕산이 자신의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음을 다시 확인해준다.

좀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암두의 언행이다. 설봉의 말을 듣고 “덕산이 말후구를 몰랐구나”라고 했지만, “노승을 긍정치 않느냐”는 덕산의 물음에 암두는 은밀히 그 뜻을 알려준다. 정말 말후구를 몰랐다고 생각했다면 결코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터이다. 스승이라도 욕설 섞어 한 방 날리거나 발로 걷어차거나 했을 게다.

그런데도 미심쩍은 이 언행들을 그냥 넘어가게 하는 것은 다음날 설법을 하는데 평상시와 달랐다는 것, 그걸 두고 암두가 손뼉을 치며 “덕산이 드디어 말후구를 알았구나”라고 말하는 것 때문이다. 정말 말후구를 알려주어 덕산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니, 앞에서 미심쩍던 것이 모두 묻히고 만다. 가장 의심스런 것은 “천하의 덕산이 말후구를 몰랐구나”라고 한 암두의 말이다. 암두는 덕산의 행동을 부정하지 않았으면서도 왜 설봉의 말에 그렇게 맞장구를 쳤을까? 그건 정말 ‘맞장구’였을 것이다. 선사들이 생각과 다른 말을 던질 때는 상대방을 시험해보거나 아니면 어떤 방편을 구사하려고 할 때다. 이 말을 할 때 암두는 설봉을 잘 알고 있었고, 굳이 시험하는 문답을 주고받을 생각이 없었다. 사제인 설봉을 위해 어떤 방편을 구사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암두가 덕산에게 은밀히 말을 한 게 이해가 된다. 스승에게 말후구를 알려주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방편을 알려주려는 것이었을 게다. 덕산은 암두가 은밀히 전한 방편을 받아들인다. 덕산이 다음날 설법할 때 평소와 달랐다는 것은 이 공모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그는 암두의 방편을 위해 일부러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아야 확철대오한지 오래인 덕산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게 이해가 된다. 그런 덕산을 보고 “이제야 덕산이 말후구를 알았구나”라고 했던 암두의 행동도 덕산과 공모한 방편 안에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요컨대 설봉을 위해 암두는 생각에도 없는 말로 맞장구를 치며 설봉에게 ‘말후구’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고, 이를 덕산에게 귓속말로 전하며 그 방편의 공모자가 되어주길 요청한 것이다. 그걸 듣고 덕산은 마치 암두의 말후구 때문에 크게 달라진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말후구’라는 미끼를 던져, ‘그게 뭐길래 천하의 덕산마저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정을 설봉에게 일으켜주기 위한 한 편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결코 연극으로 보여선 안 될 이 ‘연극’에서 덕산의 언행은 정말 놀랍고 대단하다. 그는 암두가 생각한 방편을 위해 마치 제자 암두에 의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제자보다 못한 자리, 그 동안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듯 보이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설봉의 비난을 그대로 떠안고 방장실로 되돌아간 것도 그렇지만, 제자를 위해 자신을 덜떨어진 자리로 낮추는 이 언행은 보기 드문 것이다. 스승이란 자리나 권위 같은 걸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멋진 연극을 연출한 암두에게선, 설봉이 전해준 얘기를 듣곤 어느새 거기서 몸을 빼서 그것을 사제의 깨달음을 위한 방편으로 전환시키려는 장난기 어린 재치가 번쩍이고, 스승마저 끌어들여 덜떨어진 인물 역할을 떠안기려는 대담한 유머감각이 멋지게 빛난다. 스승과 제자의 자리를 바꾸어버리는 암두의 과감한 연출에서, 암두의 연출에 따라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덜 떨어진 스승 역할을 했던 덕산의 행동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하는 깊은 유머감각을 읽지 못했다면, 이 얘기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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