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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삼세에 구속도 걸림도 없는 자유인

기자명 정운 스님

법신은 오고가는 시간적 거래가 없다

원문: 반야를 배우는 사람은 일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마음에는 삼승을 끊고 오직 하나의 진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혹 증득하지 못했는데 ‘내가 증득했다’고 한다면, 이는 증상만인이다. 법화회상에서 옷을 떨치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보리에서 실로 얻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묵연하셨다. 범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만 5온이 공이며, 4대가 무아임을 관한다. 진심은 모습이 없어서 거래가 없다. 생겨날 때도 참된 성품이 오는 것이 아니요, 멸할 때도 참된 성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맑고 원만하며 고요해서 마음과 경계가 일여하다. 다만 이와 같이 곧바로 몰록 깨닫는다면, 삼세에 구속되거나 결박되지 않는 출세인이다. 절대로 털끝만큼이라도 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설령 좋은 현상으로서 제불의 영접을 접하거나 가지가지가 현전하더라도 마음에 따라 가지 말라. 또한 설령 좋지 않은 현상으로서 가지가지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마음에 두려움을 갖지 말라. 다만 스스로 마음을 잊어 법계와 하나가 된다면, 문득 자재를 얻을 것이요, 이것이 마음의 긴요한 진리이다.   
 
과거 현재 이름만 존재할뿐
찰나에도 머물러 있지 않아
좋은 현상 와도 끌리지 말고
나쁜 현상에도 실망 말아야

해설: 원문 ‘마음에는 삼승을 끊고 오직 하나의 진실임을 알아야 한다’ 부분을 보기로 하자. 깨달음의 길이 여러 갈래이지만, 목표인 부처가 되는 것, 바로 일승을 최상승으로 염두에 두라는 뜻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시방불토 중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을 뿐이요,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다”고 했으며 “모든 부처님의 말은 허망하지 않나니 다른 법은 없고, 오직 일불승뿐이다”라고 하였다. 일승이란 누구나 성불할 수 있는 근기가 내재되어 있음을 뜻한다. ‘법화경’은 일불승을 지향하지만, 중생의 근기에 맞춰 방편(성문ㆍ연각ㆍ보살)을 시설했다. 각각의 방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긍정하면서 일승의 참 의미를 밝히기 위한 3승방편(三乘方便) 일승진실(一乘眞實)임을 강조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경에서 3계화택이나 장자궁자 비유를 들고 있다.

원문에서 ‘법화회상에서 옷을 떨치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무리들’이라고 했는데, 증상만인을 말한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기 전, 무량의처삼매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설법해줄 것을 요청해도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지 않았다. 세 번 청했을 때, 부처님께서 법을 막 설하려고 하는데, 비구ㆍ비구니ㆍ재가자 5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상을 떠났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근이 깊지 못하고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난 척 하는 증상만인들은 회상을 떠났다. 여기에는 법을 듣고자 하는 알갱이들만 남았다. 이제부터 법을 설하리라.” 이를 ‘오천기거(五千起去)’라고 한다.         

‘5온이 공이며, 4대가 무아임을 관한다’는 부분을 보자. 4대와 5온은 인간 범주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5온이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고, 4대란 지ㆍ수ㆍ화ㆍ풍을 말한다. 원문에서는 범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본다고 했지만 불자들은 4대와 5온이 공이며 무아임을 사무쳐 깨달아야 한다. 불자들이 자주 독송하는 ‘반야심경’의 첫 머리에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5온이 공(空)이라는 것을 관조해 깨닫고 모든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났다”는 구절이 있다. 즉 반야의 공관으로 비춰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몰록 깨닫는다면 삼세에 구속되거나 결박되지 않는 출세인’이라는 부분을 보자. 여기서 삼세란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삼세에 대해서는 ‘금강경’이나 ‘유마경’ 등 여러 대승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과거ㆍ현재ㆍ미래라는 것도 이름 붙였을 뿐 정의할 수 없으며,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다. 그래서 ‘유마경’에서는 “법에는 개아가 없는데,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끊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음에 과거ㆍ현재ㆍ미래 시제가 없듯이 무위법(無爲法) 경지에는 과거ㆍ현재ㆍ미래가 끊어졌다. 그래서 법신(法身)은 오고가는 시간적인 거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하려는 마음을 쉬라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현상 경계가 나타나도 끌려  가지 말고, 설령 나쁜 경계가 나타날지라도 현혹되어 의기소침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법계와 하나가 되면, 삼세에 걸림 없는 대자유인, 무사인(無事人)이 되는 것이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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