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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카 닮은 인도 우화로 읽는 통치학 교과서

  • 불서
  • 입력 2017.06.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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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짜딴뜨라’ / 저자 미상·현진 스님 옮김 / 아름다운인연

▲ ‘빤짜딴뜨라’
‘용왕이 병들어 좋다는 약을 다 써봤으나 낫지 않았다.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사는 토끼 간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 했다.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로 간 자라는 용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는 등의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했다. 이를 믿고 용궁에 간 토끼는 용왕 앞에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둘러대 위기를 모면했다. 자라와 함께 육지로 돌아온 토끼는 ‘간을 빼놓고 다닐 수 있느냐’며 자라를 비웃고 도망간다.’

‘별주부전’ ‘토별가’ ‘수궁가’ ‘토끼전’ 등으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이다. 본래 교훈적·종교적 의미였으나 소설과 판소리로 개작되면서 사회풍자 성격이 강해졌다. 그래서 조선 왕조가 위기에 이르렀음을 병든 용왕을 통해 나타냈다고 보기도 한다. 또한 용왕은 자기 병을 고치려는 욕심에 무고한 백성을 속여 희생시키는 것을 예사롭게 여기는 통치자이며, 자라는 충성만을 보람으로 여기며 온갖 수모를 감수하는 우직한 신하이고, 토끼는 헛되이 벼슬에 욕심을 품었다가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는 백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원조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인도의 설화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된 고전소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도 문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빤짜딴뜨라’가 ‘별주부전’의 원조다. 주인의 아들을 뱀으로부터 구해 놓고 오히려 주인에게 맞아 죽은 몽구스 이야기를 전하는 티베트 민담, 늑대를 물리치고 주인 아들을 구하고도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개 이야기를 전하는 영국 웨일즈 지역 민담 등도 그 시작은 ‘빤짜딴뜨라’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 곳곳 우화들의 시발점이 된 ‘빤짜딴뜨라’는 부처님 전생담을 담은 ‘자타카’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이야기 흐름이 동일한 것들이 있는 등 그 배경이나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다.

‘자타카’가 그랬던 것처럼 ‘빤짜딴뜨라’ 역시 단순한 우화집이 아니다. ‘다섯 장으로 된 논설’이란 의미의 책은 단순한 이야기 묶음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을 가진 논설이다. 다섯 개의 장은 각각 주제를 갖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왕이 현자에게 세 왕자의 교육을 맡기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통치학이나 정치학에 해당하는 논설로 취급되고 있다.

▲ 통치학 교과서로 불리는 ‘빤짜딴뜨라’는 정치, 외교, 치세 등을 다룬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그림은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가 대신들의 이간질에 속은 사자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빠짜딴뜨라’는 전 세계적으로 약 200종 이상의 판본이 존재하며 인도 내 지역어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약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됐다. 또한 페르시안 의사에 의해 번역되어 서양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미 6세기 중엽이다.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이 국내 최초로 산스끄리뜨 판본을 완역한 이 책 ‘빤짜딴뜨라’는 왕으로부터 왕자들의 교육 권한을 부여받은 현자가 왕자들에게 들려주는 우화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외교, 전쟁, 치세에 대한 이야기들이 동물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통치학 교과서’이기 때문에 우화에서 흔히 보는 권선징악의 내용은 많지 않다. 오히려 세속적 지혜를 가르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1장 ‘우정의 파괴’는 ‘싼지와까’라는 소가 숲속 사자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는 대신인 두 자칼의 도움으로 사자왕과 가까워 졌다가, 두 자칼의 이간질에 의해 결국 사자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두 대신은 사자왕을 보좌해 숲속 왕국을 이끌어 나간다. 물론 그들의 대화 사이에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거나 정당화할 많은 이야기들과 여러 구절의 시구로 읊어지는 격언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1장에서 세상의 냉혹한 실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책은 제2장 ‘우정의 성취’에서 힘이 약한 네 동물이 서로 연대해 거대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통해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정치가 무엇인지 까마귀와 올빼미의 전쟁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고, 4장과 5장은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의 물정을 일러주는 내용들이다. 다섯 장의 이야기 속에 모두 34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은 우화의 나열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인성 계발을 위한 치밀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산스끄리뜨 산문과 운문이 적절히 결합된 책을 통해 인도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서 보다 현명한 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하다. 2만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95호 / 2017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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