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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편 일화로 만나는 향곡 스님의 삶과 사상

  • 불서
  • 입력 2017.06.26 16:18
  • 수정 2017.06.26 16:23
  • 댓글 18

‘봉암사의 큰 웃음 : 향곡 큰스님 일화’ / 법념 스님 지음·서주 스님 그림 / 답게

▲ ‘봉암사의 큰 웃음 : 향곡 큰스님 일화’
“니는 밥은 잘 묵나?”
“아니오, 오전 불식 합니다.”
“야. 니도 대데 빠짓네(덜 떨어졌네). 밥은 거르지 말고 잘 무야 하니라.”

후학들로부터 깨달음의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로 존경받는 향곡 스님은 선방에서 누군가가 아침이나 저녁을 안 먹는다고 하면 덜된 인간이라고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안 묵는 기 무순 공부가. 공부를 힘써 할라 카몬 뭐든 동 묵어야 되니라. 하라는 정진은 안 하고 묵는 거 가지고 야단을 지기네. 허허.”

스님은 이처럼 ‘안 먹는 것이 무슨 공부냐’고 질책하면서 “공부를 힘 있게 밀고 나가려면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삼매에 들어가 저절로 먹고 자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 경지에 들어갔으면 모를까. 일부러 끼니를 굶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애쓴다고 너무 잠을 안자는 것도, 안 먹고 버티는 것도 정진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일부러 무리하게 하면 병만 생긴다. 그저 평소대로 꾸준히 하다 보면 화두가 죽 이어져 언젠가는 저절로 몽중일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향곡 스님(1912∼1979). 스님은 불심이 깊었던 집안에서 성장하던 중 이미 출가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둘째 형님을 만나러 천성산 내원사를 찾았다가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곳에서 운봉 스님을 만나고는 함께 갔던 어머니를 홀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남아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2년 동안의 행자 생활을 마친 스님은 20세에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운봉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10여 년 간 운봉 스님을 시봉하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던 어느 봄날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열어놓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마음의 경계가 있어 스승을 찾았다.

▲ 향곡 스님의 일상과 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70편 일화가 한 권 책으로 엮였다. 곁에서 시봉했던 제자 법념 스님의 글과 법념 스님의 제자 서주 스님 그림이 더해졌다.

스승 운봉 스님이 목침을 내놓고 “한 마디 일러라!”고 하자, 목침을 발로 차버렸다. 이에 스승이 “다시 일러라”라고 하자, “천언만어(千言萬語)가 다 몽중설몽(夢中說夢)이라. 모든 불조(佛祖)가 나를 속였습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스승이 기뻐하며 향곡(香谷)이란 법호와 함께 상수제자로 봉하고 법을 전했다.

이렇게 경허-혜월-운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잇는 전법게를 받은 스님은 제방 선원을 찾아 당대 수좌들과 다양한 교류를 거듭하다 1947년 성철, 청담 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에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1일 동안 먹고 자는 것을 잊고 정진하다 마침내 확철대오의 경지에 이르게 됐다. 이후 대중들의 요청으로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선방에서 조실로 주석했던 스님은 경남 월내에 묘관음사를 창건하고 선원을 열어 후학들을 지도했다.

특히 후학들을 가르치며 “부처를 절대자로 생각하지 말 것”과 “부처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부처 또한 스스로를 얽어매는 쇠사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구도열정과 후학들의 공부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스님은 1979년 1월16일 세수 68세, 법랍 50세로 입적했다.

이 책 ‘봉암사의 큰 웃음 : 향곡 큰스님 일화’는 3년 동안 곁에서 시봉하며 공부했던 법념 스님이 향곡 스님의 일상을 옮겼다. 향곡 스님은 생전에 남 앞에 나서거나 각종 매체에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평범하게 지낸 탓에 남긴 글과 묵적이 거의 없다.

사진 역시 제대로 남은 것이 없어 제자들이 영정을 만드는데도 애를 먹었을 정도였고, “사리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 대로 실제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스님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은 70편의 일화를 통해 스님의 평소 수행 모습은 물론, 후학을 제접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방식, 소탈하고 호방하면서도 섬세한 성격, 순수한 감성까지 엿볼 수 있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97호 / 2017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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