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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구지 선사의 손가락-하

머물지 않고 종횡 넘나드는 능력 이것이 ‘공’

▲ ‘직입천봉만봉거(直入千峰萬峰去)’고윤숙 화가

풍혈이 대중설법을 했다.

중생과 부처의 세계가 다르지 않지만
분노로 만든 세계가 부처세계는 아냐
그때마다 손가락 세워 그곳서 나와야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이를 두고 원오는 묻는다. “말해보라, 한 티끌을 세워야 옳은지, 세우지 않아야 옳은지를.” ‘나라(家國)’라는 말은 앞서 했던 것처럼 ‘세상’이나 ‘세계’라고 해석해도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흥성하다’나 ‘멸망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된다. 하여 여기에선 ‘국가’라고 해석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원오는 이렇게 말한다.

“한 티끌을 세워 나라가 흥성하여도 촌 늙은이는 이맛살을 찡그린다. 그 말의 뜻은 나라를 세우고 국가를 안녕하게 하는 데에는 반드시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한 장수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기린이 나오고 봉황이 나오니 바로 태평성대의 상서(祥瑞)이다. 그러나 세 집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 사람이 이러한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하여 찬바람만 쓸쓸히 부는데, 촌 늙은이는 무엇 때문에 나와서 노래를 부를까? 나라가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다.”(‘벽암록’ 중, 217)

그렇다면 티끌을 세워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말일까, 그 반대일까? 풍혈의 말이나 원오의 말이나 얼핏 보면 나라가 멸망하지 않도록 한 티끌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처럼 읽힌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세운 국가가 작은 시골 마을의 촌부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나라를 세우겠다며 죽고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운영한다면서 세금을 더 걷지 않으면 다행일 게다. 태평성대라고 해도 국가를 세우겠다며 일으키는 소란이 없는 것만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가 사라진 터에 거꾸로 촌 늙은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는 노자 ‘도덕경’의 잘 알려진 문구를 생각나게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를 친하게 여기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다.”(‘도덕경’, 17장)

여기서 풍혈이 한 티끌 일으켜 흥하게 세운 ‘나라’는 불법을 일으켜 세운 ‘불국토’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풍혈의 말은 황금가루가 아무리 귀하여도 눈에 들어가면 눈병을 일으킬 뿐인 것처럼, 불국토조차도 한 티클 일으켜 세우는 것보다는 그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사는 게 더 낫다는 뜻일 게다. 하여 원오도 다음과 같은 남전의 말을 인용한다. “황매산(黃梅山) 7백 고승은 모두가 불법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오조(五祖)의 의발을 얻지 못하였으나, 노행자(盧行者, 혜능)만은 불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의발을 얻었다.”(218) 하물며 손가락을 일으켜 세우는 세계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운문이 주장자를 들고 대중에게 설했다는 다음의 얘기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천지를 삼켜버렸으니, 산하대지는 어디 있느냐?”

손가락을 세워 세계를 만들어내고 한 티끌을 일으켜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과 반대로 여기서 운문은 주장자를 들어 천지를 삼켜버리게 한다. 한 티끌, 꽃 한 송이 속에 열린 세계를 통째로 다 삼켜버리게 한다. 한 손가락이나 한 티끌, 꽃 한 송이에 이어져 현행화된 세계를 모두 지워 순수 잠재성으로 되돌려버리는 것이다. 다른 세계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공’한 세계로. “가슴 속에 한 물건이라도 남아 있으면 산하대지가 들쑥날쑥 눈앞에 나타나겠지만, 가슴 속에 한 물건도 없다면 밖으로 실오라기 하나도 없을 것이다.”(‘벽암록’ 중, 210)

이런 점에서 보면 구지의 손가락이나 풍혈의 한 티끌과 운문의 주장자는 정반대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그때마다 티끌과 손가락에 따라 현행화되는 세계와 본체 내지 본래면목이라 불리는 잠재성의 세계를 대립되는 것으로 보게 되고, 불법이나 도란 손가락과 티끌에 따라 일어난 세계의 저편을 향해 가는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금가루가 아무리 좋아도 눈에 들어가면 병을 일으킬 뿐이라며 따로 불국토를 찾거나 만들겠다는 발상을 비판했던 이유 아니었던가?

중요한 것은 티끌이나 손가락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세계로부터 후퇴하여 불법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런 세계는 따로 없다. 중생이 곧 부처인 것처럼 중생들이 사는 세계, 중생들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각각의 세계가 바로 부처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원한과 미움의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를 그저 부처의 세계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힘든 세계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부처의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면 불법은 불난 집에 편히 앉아있으라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난 집에서 얼른 나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세계도 다시 손가락을 세우거나 티끌을 일으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뀐 세계 또한 하나의 티끌일 것이다. 심지어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세계일 수 있을 게다. 그러면 다시 손가락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해도 그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평생을 써도 다시 또 손가락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구지의 가르침은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티끌을 하나 일으키는 것으로 또 다른 세계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장자를 들어 삼켜버린 것은 이 사라지는 세계들이다. 그 자리에 다른 세계가 출현한다. 문제는 어떤 세계에도 머물지 않고 넘나드는 것이다. ‘금강경’의 한 구절에 깨우침을 얻었다는 혜능이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느 세계에도 머물지 말고 손가락을 세우라.” 그렇기에 주장자를 세우면서도 주장자에 머물지 않고 때론 내던져버리는 것일 게다. 손가락 또한 그렇다 해야 할 것이다. 들었는가, 연화봉 암주가 주장자를 들곤 20년을 반복했다는 물음을?

“옛사람이 여기[주장자]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을까?”

이에 제대로 대답한 자가 끝내 없었다고 하는데, 결국 입적하던 날 그 물음을 다시 던지곤 대중을 대신해 스스로 대답했다고 한다.

“그것이 수행의 도상에서 별로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필경 어찌해야 하겠는가?”

대답이 없자 다시 스스로 답했다고 한다.

“주장자를 빗겨든 채 한 눈 팔지 말고 천봉우리 만봉우리 속으로 들어가노라.”(‘벽암록’, 상, 225~226)

별로 쓸모가 없었다 함은 금가루와 마찬가지로 그것에 매인다면 병을 야기할 뿐이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 없이는 불법을 찾는 것도, 수행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터이다. 도는 본래 말이 아니지만 말로 인해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니 그것을 들고 첩첩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첩첩한 세계 하나하나를 삼키고 일으키며, 종횡으로 자유롭게 오가야 한다.

주장자와 손가락, 주장자와 티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하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계를 사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상이한 세계를 넘나들며 사는 것이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그렇게 종횡으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 바로 그것이 ‘잠재성’이니 ‘공’이니, 혹은 본래면목이니 본체니 하는 말로 지칭하는 것일 게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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