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9.21 목 21:26
> 연재 | 강병균의 수학자가 본 금강경
25. 감성과 이성의 진화자비 확장시키는 힘은 감성이 아닌 이성 영역
강병균 교수  |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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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17: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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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 어의운하 보살장엄불토부. 불야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본능이 아닌 합리적 감정은
이성이며 지혜의 다른 이름
불경 나오는 이성적 이야기
개체 벗어난 이타주의 키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더 나아가 의식하지 않고, 하는 장엄불토가 최고의 장엄불토이다.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내세우면 밖으로는 사람들의 인정·칭송을 기대하고, 안으로는 교만한 마음을 내어, 결국 실망·분노·시기·질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그만 선행일지라도, 타인의 선행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에게 아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거대한 선행이랴.

철학자 피터 싱어가 최근 ‘합리적 이타주의자’란 책을 썼다. 합리적 이타주의란, 단순히 감성적인 이유로 이타행(利他行)을 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합리적인 사고로 이타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매년 자신의 수입 중 수십 프로를 아프리카인들에게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그 돈이면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이렇게 얻어지는 그들의 행복의 양이 그 돈으로 얻어지는 자신의 (여분의) 행복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족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으나 인류는 그렇지 않다. 모든 중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인류로, 나아가 모든 중생으로, 확장하려면 본능적인 감성으로는 부족하다. 이성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에 자비와 행복을 증장시키기 위해, 묵자는 귀신의 힘을, 공자는 예의 힘을 빌리려 했고, 맹자와 주자는 본성이라 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이성이 필요하다. 개인의 이성뿐만 아니라 문화 속에 축적되는 집단의 이성을 키워야 한다. 이성의 다른 이름은 지혜이다. 성태장양(聖胎長養)이란, 신비로운 원신(元神)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를 키우는 것이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인간에게 변연계가 생기면서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대뇌에 거울세포(mirror cell)가 생기면서 타인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같이 느끼게 되었다. 군집생물이나 사회적 생물은 다른 구성원들의 감정을 알아야 집단이 효율적으로 유지된다. 이 점에서 거울세포는 무선통신기기이다. 요즘말로는 생체 스마트폰이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개·늑대·물소들도 감정이 있지만, 거의 본능적이다. 그래서 즉각적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본능적이 아닌 합리적인 감정이 있다. 이것은 깊은 사유를 통해 나오므로 즉각적이지 않다. 이 감성에 이름을 붙이자면 ‘이성적 감성’이다. 인간의 대뇌신피질이 발달하면서, 이성이 강화됨에 따라 생긴 기이한 감성이다. 이게 발달하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감성에 끌려 다니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 (바람직한) 감성도 이성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런 이성적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이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없던 감성이, 들은 후에 생겼다면 이는 ‘이성적 감성’이다. 사슴 왕이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왕에게 스스로 몸을 바치는 일화가 이성적 이타주의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병사들은,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전자는 두고 온 가족걱정으로 몸을 사리지만, 후자는 지켜야 하는 가치를 위해 몸을 던진다고 한다. 배우고 사유하고 이해하면 힘이 생긴다! 죽음을 이기는 힘이!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슴 왕이 자기의 정체성을 자기라는 개체에서 국한시키지 않고 무리 전체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현대적으로는 역설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유전자를 이용하면 생물의 이타적인 행동을 상당히 설명할 수 있다. 생물학의 근본부등식인, 해밀턴의 ‘포괄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이 있다. 부등식 br>c로 표현된다. 윌슨은 이를 br+r'>c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b는 이타적 행위로 발생하는 개체적 이익(benefit)으로서 소승, r은 이익을 얻는 개체의 비율, c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며, r'은 ‘집단이 얻는 이익’으로서 대승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이익과 비용의 단위가 유전자라는 것이다. 윌슨의 주장의 핵심은, 이타적인 행동은 개체가 얻는 이익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고, 집단이 얻는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설명이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은 최고 수준의 r'에 대한 경전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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