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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13. 에로스와 프시케 ③사랑에서 시작하고 완성되는 내면의 성장
김권태  |  munsach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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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17: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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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는 에로스를 되찾기 위해 아프로디테가 내준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만 했다. 첫 번째는 밀·보리·기장·콩 등이 섞여있는 곡식들을 각각 종류별로 분류해놓는 명령이었는데, 수많은 개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황금털을 가진 사나운 양들에게서 양털을 구해오는 일이었는데, 바람의 도움으로 양떼들이 건너간 후 덤불과 나무줄기에 걸려 붙어있는 양털을 구해올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계곡에서 폭포수를 길어오는 일이었는데, 독수리의 도움으로 물통 가득 물을 길어올 수 있었다. 네 번째는 명부의 세계에 내려가 상자 속에 아름다움을 담아오는 일이었는데,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그만 영원한 잠인 죽음에 빠져들었다.

잃어버린 에로스를 찾는 여정
네 가지 과제 보편적 통과의례
의식주 해결과 대인관계 배움
사랑, 비움이 곧 채움임을 증명


이것은 인간이 독립된 주체로 성장하기 위해서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할 보편적인 통과의례다. ‘곡식’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일과 ‘양털’을 구해오는 일, ‘계곡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오는 일들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의 해결을 뜻한다. 그리고 ‘미의 상자’를 얻어오는 일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 되어 사회에 나가 타인들과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이다. 아이가 어머니와의 이자관계에서 정신의 내적구성물들을 채워나간다면, 아버지와의 삼자관계에서는 타인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대인관계양식을 배운다고 할 수 있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녀가 혼례를 치를 만큼 보호자가 필요 없는 성인이 되었는가, 죽음의례와 죽은 자에 대한 추모의례를 완수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시험하는 관혼상제의 통과의례를 시연한 것이다.

이를 욕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곡물과 양털 등 의식주의 해결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적 욕구(instinct)’를 채우는 과정이다. 또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의식적 충동(drive)’과 그 무의식적 진실의 대면을 뜻한다. 그리고 미의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긴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더 나아지고 싶은 인간의 ‘채울 수 없는 욕망(desire)’을 뜻한다. 욕망은 금기와 결핍,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데, 금기와 비교가 주어지면 그것이 현재 내게 부재하다는 결핍이 느껴지고, 지금 내게 없는 것을 소유해 채워 넣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구멍 난 전능감의 회복, 그러나 욕망은 욕망이 구멍 낸 자리를 다시 욕망으로 채워 넣으며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잃어버린 에로스를 되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불현 듯 프시케를 찾아온 에로스, 몸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만 존재를 알리는 에로스, 자기의 실체를 알려하지 말라는 금기를 깨자 실망감에 떠나버린 에로스, 그러나 미의 상자를 열지 말라는 금기를 깨고 죽음에 떨어진 프시케를 끝내 살려내는 에로스…. 영혼의 이 기나긴 사랑의 여정은 나만의 욕구와 충동과 욕망을 채우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나를 던져주며 오히려 기쁨을 얻는, 비우는 일이 곧 채우는 일임을 증명하는 기이하고도 역설적인 욕망, 즉 ‘사랑(love)’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살아있다(I am)’는 느낌을 성취하는 분리-개별화부터 세상의 갖가지 경험들을 하나로 응집하고 의미화 시켜주는 ‘나는 누구인가?(Who I am)’라는 정체성의 물음까지, 영혼의 성장은 이 사랑에서 시작하고 또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영혼에겐 곧 사랑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본능과 충동과 욕망으로 말미암아 번뇌에 물든 마음이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전식득지(轉識得智)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가 전해주는 오묘한 신통이요 묘용일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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