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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알음알이를 선적으로 노래한 실험 시

  • 불서
  • 입력 2017.07.24 14:57
  • 수정 2017.07.24 14:58
  • 댓글 1

‘선의 유혹’ / 한태호 지음 / 동숭동

▲ ‘선의 유혹’
“염불이 여름 계단 위에서 존다. 형틀 찬 여신이 코브라 긴 목덜미 위에서 미끄러진다. 어딘가 꿈의 모래 위에서 여름 환상이 생의 지혜를 치고, 깎아내며, 수세미로 몰래 빨아낸다. 황야의 독수리가 여신의 풀 먹인 목소리 위에 서린 눈물을 쪼아댄다.

실존주의 땡중은 자신의 심장 박동도 듣지 않는다. 그의 굽이진 발걸음은 원초시대로 올라간다. 그곳은 아직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회랑에서 색 바랜 흔들의자만이 외로이 흔들리고 있다. 그곳에 앉지도 못하는 그의 영혼 음계가 금박 카드처럼 하나하나씩 무너진다. 고요히 회전하며 하늘을 나는 술 취한 연처럼 날아간다.”(반야, 까뮈의 음악 계단)

국내에서 대학교수로 문학을 가르치고 창작활동을 하다가 인지학과 불교학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이국생활을 하고 있는 시인의 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시를 “아직 무한한 회색 그림자로 어리는 이끼꽃이 될지언정, 풍자와 모욕과 뱉어내고 싶은 캐리커처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표현하자면, 선 수행자적 명상과 그 명상을 통해 얻은 알음알이를 ‘선 취향적’ 문학성으로 표출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시를 ‘선취시’로 명명한 시인은 “선시는 분명히 섣달 동지 밤에 환하게 불 밝힌 횃불을 들고 서있는 요괴스런 여인이 부르는 슬픈 노래가 아니다. 대사원이나 성당의 너른 회랑에서 춤추는 요정이 부르는 영가(靈歌)도 아니다. 선시는 아귀의 피 흘리는 지옥 명부의 어둠과 죽음이 널려 있는 법당에서 생성되지만, 산수풍경의 긍정적 밝은 기운이 넘치는 대자연 속에서 지적 이성과 감성적 열정이 함께 어우러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선취시’는 소리와 생각, 동작과 이성 행위가 서로 갈등하는 명상과 시심의 창조로 새롭게 서정성을 격양시키는 실험적 시 창조 작업이다. 우물가에 서서 노란 개나리꽃잎을 깊고 푸른 우물 아래로 떨어트리는 어린 소년의 호기심과 시적 꿈이 아무 격조 없이 우러나오는 즉흥성, 자유성, 개방성이 넘친다.

‘선의 유혹’은 실험적 시 창조 작업에 천착한 시인이 일상의 경험이 일어나는 개인 시공간의 리듬과 틀을 시적으로 번역해 낸 것들을 옮겼다. 선의 문턱에 서서 그림자가 비추는 그림자를 좇는 시인만의 독특한 색채가 가득한 70여 편 시에서 문득문득 낯섦을 느끼기도 하지만, 시적 본질과 종교적 체득을 통합시키려는 시적 조화력도 엿볼 수 있다. 1만1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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