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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37. 비단벌레가 주는 교훈삶은 과정 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것
김용규  |  happyforest@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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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5  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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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설립한 ‘자연스러운삶연구소’에 얼마 전 새 제자들이 여럿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까지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청춘이거나 중년입니다. 2년 과정인데 단 한 푼의 수업료도 받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삶연구소’의 제자
갑작스러운 업무전환으로 고통
가장 끌리는 길 선택하라 조언
충실히 걸어내면 자신 찾을 것


대신 과정은 엄격합니다. 지원자는 모두 나의 질문에 맞춰 스물두 쪽이 넘는 자기 이야기를 작성해 지원서로 내고 서류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달 간 매주 한 권씩의 두꺼운 책을 치열하게 읽고 한 편의 글을 기한 내에 수준을 갖춰 쓰는 과정을 통과해야 마지막 면접의 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면접을 통과한 사람만이 연구원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연구원 과정은 2년간 매주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연구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세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발과정을 성실하게 마친 연구원들 중 삼십대 초반의 한 사내가 어제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는 소위 명문대를 나왔고 잘 생긴 얼굴에 맑고 선한 품성을 가진 친구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고 누구의 말에도 잘 귀 기울이는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직장생활에 얄궂은 운명이 닥친 모양입니다. 자신의 인사고과 권한을 가진 상사로부터 어쩌다가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근무평점이 좋지 않아 회사생활이 고통스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의가 반쯤 섞여 있기는 하나 인사부서로부터 전혀 새로운 업무로의 전향을 권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제시된 하나의 전향은 영업부서로의 전직이고 다른 하나는 홍보부서로의 전직이라 했습니다.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인 그에게 두 가지 업무는 모두 거대한 도전이고 막막한 두려움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그를 짓눌러 스승이랍시고 산으로 떠나와 살고 있는 내게 조언을 구해온 것입니다.

미처 자신의 세계를 열지 못한 그는 아직 젊고 또 생계를 꾸려가야 합니다. 상황을 고려할 때 그에게는 당장 세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회사가 제시한 두 가지 분야 중 자신의 다음 인생경로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분야로 회사 내에서 전직을 택하는 것이 먼저 두 가지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예 그 회사를 나와 지난 경력을 또 다른 회사에 팔아 회사를 옮기는 길일 것입니다. 나는 조심스레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에게 물어 그중 어느 길이 가장 이끌리는지 선택하라!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낯설고 두려운 나날을 한동안 겪어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일단 그 길을 충실히 걸어내라! 거의 모든 나비가 그러하듯 알에서 시작한 일생은 애벌레로 사는 시간이나 번데기로 사는 시간과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그것이 나비의 운명이다. 나는 우리의 일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오늘 나는 그가 염려되고 그의 결정이 궁금하여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회사 내에서 다른 분야로 전직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결정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만나 비단벌레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딱지날개를 가져서 얻은 이름이 바로 ‘비단벌레’인데, 견고한 딱지날개는 그 빛이 너무 고와 신라 때 말안장에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빛을 지닌 채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사는 시간은 고작 10여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비단벌레는 1년 이상을 어둡고 축축한 나무속에서 애벌레로 살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인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비단벌레 등의 생명이 어둡고 축축한 나무속이나 땅 속에서 사는 시간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못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아채야 삶이 더 깊어질 것이라 귀띔해 주려는 것입니다. 삶은 과정 그 자체로 이미 의미 있는 것임을 귀띔하려는 것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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