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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27. 도는 방소가 없거늘 어디에 마음이 있는가?배울 것이 없으니 오염시키지만 말라
정운 스님  |  saribu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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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31  10: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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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어떤 처소가 없으므로
알음알이로 배우면 그릇 돼
도를 배우라 가르치는 것은
깨우치기 위한 방편에 불과

원문: 황벽선사가 말했다.

“진실한 법이란 전도됨이 없는 것이다. 그대가 지금 질문하는 자체가 전도되어 있다. 무슨 진실한 법을 찾는가?”

배휴가 물었다.

“저의 질문이 전도된 것이라고 한다면 화상의 답은 어떤 것입니까?”

선사가 답했다.

“그대는 어떤 물체를 통해 자신을 비춰봐야지 다른 사람과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또 다시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한낱 어리석은 개와 비슷해 물건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선종에서는 일찍이 법이 전해진 이래로 사람들에게 알음알이 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도를 배우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말한 것이다. 실은 ‘도’라는 것은 배울 것이 없다. 뜻을 두어 알음알이를 배운다면 오히려 도의 미혹에 떨어진다.

도에는 어떤 처소가 없으므로 대승심이라고 이름한다. 이 마음은 안에 있지도 아니하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방소가 없다. 제일 중시할 점은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단지 그대에게 뜻으로 말한 것은 뜻이 다한 곳이 바로 ‘도의 자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만약 알음알이가 다한다면, 마음에 방소가 없을 것이다. 이 도는 매우 천진(天眞)해서 본래 이름도 없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미혹해서 뜻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불이 세상에 출현해 법을 설하였다.

해설: ‘전도(顛倒)’란 거꾸러졌다는 뜻으로 그릇되거나 잘못된 것을 말한다. 청정하지 않은 마음을 말할 때도 전도심이라고 한다.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1)은 ‘금강경오가해’에서 청정심과 같은 의미로 ‘부전도심’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원문에서 ‘진실한 법이란 전도됨이 없는 것’이란 진실되고, 청정한 진리라는 의미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원문에 ‘선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중국불교는 종파불교라고 할 만큼 경전을 중심으로 8종이 형성되었다. 선종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달마가 520년 인도에서 중국으로 도래한 이래 수많은 조사들에 의해 각 자파의 선사상이 정립되었지만, 정확히 ‘선종’이라는 호칭이 처음 언급된 기록은 황벽의 ‘전심법요’이다.

‘실은 도라는 것은 배울 것이 없다’는 내용은 ‘전심법요’의 주요 사상이요, 중심 주제로, 필자가 해설에서 자주 언급한다. 이 사상은 평상(平常)의 일상생활 그대로 무사(無事)하게 사는 것을 말하며,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부처이기 때문에 굳이 도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조(709~788)선사는 ‘도는 닦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道不用修]’라고 하였고, 백장(百丈, 749~814)선사는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無修無證]’라고 하였다. 또한 마조의 스승인 남악은 ‘단지 오염시키지 말라[不汚染]’고 하였다. 오염이란 바로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겠다는 인위적인 분별심, 조작하고 취사선택하는 마음, 밖에서 구하려는 어리석음 등을 말한다. 오염을 달마의 ‘이입사행론’에서는 ‘교위(巧僞)’ ‘임제록’에서는 ‘인혹(人惑)’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황벽은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말며, 일으키는 자체가 전도된 마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음은 안에 있지도 아니하고~진실로 방소가 없다’는 내용을 살펴본다면 ‘42장경 2장’에서는 “(道라는 것은) 안에서 얻을 수도 없고, 밖에서 구할 수도 없다”고 하였고 ‘유마경’에서는 ‘이 마음은 안과 밖, 그 중간에 있지 않다[此心不在內外中間]’라고 하였다. ‘능엄경’에서도 마음은 신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이 무엇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없고, 어디에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너무 커서 방소가 없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부처의 일대사인연은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서[開], 보여주고[示], 깨닫도록 하며[悟], 불지견의 길에 들도록 하기 위해[入]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였다. ‘화엄경’에서도 중생들이 지혜와 덕상을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가 어리석은 중생들을 일깨워 가르치려는 서원이 담겨 있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402호 / 2017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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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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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7-31 15:45:31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새롭게 밝히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다. 이 책에 반론하면 5천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공시했는데 아무도 반론을 못하고 있다. 이 책에 반론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새 이론을 겸허히 수용하고 기자들도 실상을 보도하라! 이 책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기원과 작동을 포한한 모든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동양철학 이론(이기일원론과 무아연기론)과 서양과학 원리의 동질성을 증명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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