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10.24 화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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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하안거 해제법어
송지희 기자  |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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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4  09: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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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邪是正(사인가? 정인가?)  

중흥선사(仲興禪師)가 도오선사(道悟禪師) 회하에서 시봉하고 있을 당시 한번은 도오스님께 차를 올리는데 스님께서 중흥스님에게 인가?, 인가?”라고 물으셨습니다.
 
중흥스님은 도오스님 앞으로 나아가 정면으로 도오스님 존안을 바라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도오스님께서는 는 항상 이고 은 항상 이다.”라고 하셨지요.
 
중흥스님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고서 자신의 견해를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도오스님께서 되물으시길 그렇다면 자네의 견해는 무엇인가?”하니
중흥스님은 도오스님이 잡고 계시던 찻잔을 빼앗더니 반문을 하였습니다.
인가?, 인가?”
 
도오스님께선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시며 자네는 나의 시자라고 일컬어질만 하구나!”하시니
중흥스님께서 예배를 하였습니다.
 
도오스님과 중흥스님께서 말씀하신 , 란 말 속에는 깊은 선리(禪理)가 들어있습니다. 소위 삿된 사람이 正法을 말하면 바른 법도 삿되게 되고 바른 사람이 邪法을 말하면 삿된 법도 바르게 된다.”는 말이 그런 것이지요 명의가 독약인 비소를 처방하면 좋은 약이되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는 항상 이고 은 항시 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명예가 있으면 자랑스럽고 사랑이 있어야 즐거우며 금전적으로 풍요로워야 편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왜 명예있는 사람이 번뇌를 하고 사랑을 할수록 고통스러워지고 금전이 있음에도 더욱 미래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상과 신념, 책임을 확실히 갖추지 못하여 그렇습니다. 이상, 신념, 책임은 텅빈 소리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매순간 순간 생활중에서 체현되어야합니다. 반드시 정법불교를 수행하여일용생활중의 굳어진 의식, 개념과 관성적인 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본신이 변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무상, 무아를 체득하여 명예는 중생들을 위하여 일할 때 빛이 나고 사랑은 헌신을 하여야 의미가 있으며 금전은 집착없이 보시를 할 때 그 가치가 더욱 있게됩니다. 이러한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 있는 삶입니다.
 
은 자주, 해탈, 안정이 있으며 즐거움이 생기는 원천입니다. 에는 보물이 아주 많아 늘 평안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 경계에도 집착은 금물입니다.
 
왜냐구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바로 그것은 이기 때문입니다. 의 기쁨에 마음이 일어나면 그 순간 헛된 의 경계로 떨어져버립니다. 그래서 금강반야경에 과거심도 잡을 수 없고 현재심도 잡을 수 없으며 미래심도 잡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마음이란 것은 환영이요, 무상하여 잡을 수도 없고 얻을 바도 없는 것이기에 이 이치를 깨달으면 단박에 해탈하게 됩니다.
 
어떠합니까? 금번 하안거가 즐겁고 좋았습니까?
마음()은 종잡을 수 없고 변화가 무궁하여 달리는 말이나 뛰어다니는 원숭이와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변화가 무궁하기로 禪理는 어떤 경우에는 사실로써 설명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도리로써 해석을 합니다 우주세간에는 사실 속에 도리가 있고 도리 속에 사실이 있습니다.
수미산이 한 알의 겨자씨에 들어가기도 하고 겨자씨 한 알 속에 수미산이 들어간다는 말이 그러한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내려가겠습니다. 항마(降魔)스님이 북종의 신수대사를 참례하였는데 신수대사께서 묻기를 너의 이름이 항마(降魔)라고 하나 여기에는 산귀신도 목괴도 없다 그러니 네가 마()가 되겠느냐?”
 
항마장 스님이 답하기를 부처님이 계시니 도 있습니다.”
 
그러자 신수대사께서 네가 만일 라면 반드시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에 머물겠구나?”
 
항마장스님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처님이라하여도 텅비어있는데 무슨 경계가 있겠습니까!” 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도리를 잘 참구하여 보십시오!
 
오늘 해제를 하고 이 산중을 나가더라도 경계가 있고 없음이 분명하니 정진의 힘으로 자유자재하십시오! , , !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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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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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8-04 18:10:06

    철학은 본질을 탐구하고 과학은 현상을 연구한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길로 가고 있지만 계속 전진하면 결국 서로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본질을 발견하면 현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현상을 이해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올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종교 때문에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발생해서 문제가 많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가 합리적으로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과학과 철학이 협력해서 종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신고 | 삭제

    • 이산 2017-08-04 18:09:28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면서 그 이론에 반론하면 5천만 원의 상금을 주겠다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대한민국의 과학자들 중에서 아무도 반론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이기일원론과 무아연기론)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했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과학을 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문교양서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과 지식은 물론 철학과 가치관도 바뀐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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