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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나율과 천안통

기자명 이제열

“진정한 천안은 모든 게 실체 없음 보는 것”

“부처님께서 아나율에게 이르셨다. ‘그대가 가서 위문하여라.’ 아나율이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제가 옛적에 어느 곳을 거닐고 있는데 엄정(嚴淨)이라는 범천이 권속들과 함께 찾아와 저의 천안통의 능력을 묻기에 나는 석가모니부처님 국토를 손바닥 안의 망고열매를 보듯이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마힐이 나타나 ‘아나율님, 천안통은 지음이 있이 보는 것입니까? 지음이 없이 보는 것입니까? 만약 지음이 있이 본다면 외도들의 오신통과 다를 바 없으며, 지음이 없이 본다면 지음이 없는 것은 무위의 법으로 본다는 일이 성립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천안은 부처님이니 부처님은 이 세계를 두 가지 모습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었던 엄정 범천과 그 권속들이 아뇩다라삼먁 삼보리를 일으키고, 그의 두 발에 정례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위문할 수 없습니다.’”

눈 잃고 천안통 얻은 아나율에
유마거사가 ‘보는 이치’ 질문
모두 공해 본 바가 없는 것이
부처님이 갖춘 진정한 천안통

아나율존자는 부처님의 숙부인 감로반왕의 아들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잠을 많이 자는 버릇이 있었다. 비구가 되었는데도 부처님이 설법할 때면 꾸벅꾸벅 졸기만 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은 그런 아나율존자를 호되게 꾸짖었다.

이에 분심을 일으킨 아나율존자는 그 뒤로 잠을 자지 않기로 맹세하고 정진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모두 잃게 되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 대신 아나율존자는 천인의 눈을 얻어 천안통을 성취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인 그에게 범천 엄정이 찾아와 당신의 천안통으로 얼마만큼의 세계를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아나율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머물고 계신 이 세계를 손바닥의 망고열매처럼 본다고 대답한다.

필자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천안통이나 천이통의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아라한들과 부처님의 위덕을 강조하려는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실제로 눈도 없이 세상을 마음대로 본다는 의미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처님이나 아라한은 시각과 시각 대상에 대한 집착이 없으므로 눈이 없고 귀가 없어도 마음에 걸림이 없고 괴로움이 없다. 바로 이렇게 시각과 시각대상에 대해 집착이 없는 경지를 천안통이나 천이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유마거사가 아나율 존자에게 묻고자 했던 내용은 천안의 능력이 아니다. 육안이 있어 육안으로 보았건, 천안이 있어 천안으로 보았건 어떠한 이치로 보느냐는 것이 유마거사가 던진 질문의 핵심이다. 유마거사는 아나율에게 당신이 만약 ‘지음이 있게 본다’면 외도나 중생들이 보는 것과 같을 것이요 만약 ‘지음이 없게 본다’면 본다는 일도 없는 것인데 본다는 일이 성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마거사의 질문은 아나율존자를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어떠한 대답을 해도 길이 막혀있다. 여기서 ‘지음이 있게 본다’는 말은 안근과 색경과 안식을 조건으로 보는 일이 성립한다는 의미이고 지음이 없게 본다는 것은 안근과 색경과 안식을 조건으로 하지 않고도 보는 일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이 아닌 외도나 중생들이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안근과 색경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발생한 안식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만약 이들 세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본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아나율이 세상을 지음으로 보았다면 범부나 외도와 같기 때문에 진정한 천안이라 할 수 없고, 지음이 없이 본다면 본다는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천안은 무엇일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더라도 근과 경과 식과 보는 일이 모두 공하여 참으로 본 바가 없는 것이다. 유마거사는 보는 눈과 보여지는 대상과 보는 마음과 본 내용이 모두 환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실체가 없는 것을 부처님의 천안통이라고 답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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