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신라에서 8세기 후반에야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활성화되지 못했다가 고려초기 국가 제전에서 차 수요가 확대됐고, 고급차 생산과 이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왕은 공을 세운 공신과 고승들에게 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혹은 불교의례에 사용하도록 차를 선물하고 하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리산 남쪽에서 차 재배를 하면서 사원이나, 특수 행정단위인 소(所)에 위탁해 생산·관리하게 되면서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차를 중요하게 여겼던 불교국가 고려에서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차의 운명도 격변을 겪었다. 이용하는 이가 줄어들고 어물과 육류, 술이 제례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에 차가 아닌 술이 사용된 것 역시 이러한 영향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의 역사와 불교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동아시아에서 차는 선 수행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이는 곧 동아시아불교사와 연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대부분 학설은 선사상이 남전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에서 일어난 사상의 혁명이고 동아시아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차와 선의 밀접한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선의 기원을 북전불교에서 찾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허 교수는 “남전불교는 동아시아에서 수행의 방법인 참선에서 차와 만나 확산됐다. 때문에 선은 상좌부불교의 수행법을 강화한 남전불교라는 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며 “남전불교는 해로로 출발한 다음 육로도 겸하여 동아시아 서남부로 이동했는데, 선종은 동아시아에서 종파로 발전했지만 그 기원은 북전불교와 관련이 적다”고 선종의 역사를 남전불교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책 ‘고려의 차와 남전불교’에서 그 주장의 근거를 밝혔다. 전작인 ‘동아시아의 차와 남전불교’를 발표한 이후 월간지에 게재했던 글을 모아 논문 형태로 다듬은 책은 ‘차의 확산과 시대구분’ ‘고려의 남전불교 소승종’ ‘차와 남전불교의 만남’ ‘고려 차의 기원과 발전’ ‘고려 차의 전성시대’ ‘장흥 보림사의 차 생산’ ‘지공화상의 남전불교와 계승’ ‘지공화상 헌차례와 회암사의 전망’ ‘차의 유적과 헌차례’ ‘한반도의 음료와 뇌원차의 고향(전남 고흥)’ 등 전체 10개의 주제를 통해 고려의 차와 불교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고려시대 고문서와 금석문을 이용해 차의 생산과 유통·소비에 접근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현지답사를 통해 확인한 후 향토사가의 의견까지 추가했다. 때문에 책은 향후 차를 통한 사회사상사 연구영역의 확장은 물론, 불교와 차의 상관관계에 대한 역사적 이해도 한층 발전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만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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