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트롱 미국 베이츠대학 교수-상
존 스트롱 미국 베이츠대학 교수-상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7.09.18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아쇼카왕도 긍정성·부정성이 공존”

▲ 존 스트롱 교수는 "역사적으로 아쇼카왕은 가장 위대하고 정의로운 왕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다양한 전설 등에서는 아쇼카왕의 다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3세기 인물인 아쇼카왕은 인도사에서 가장 유명한 군주입니다. 마우리야 왕조의 세 번째 왕인 아쇼카는 인도를 사실상 통일했던 첫 군주로 그 명성은 오늘날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심지어는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 통일 첫 군주 아쇼카왕
많은 불사로 포교에 앞장서고
불교 가르침으로 통치하면서
불교 군주의 모델로 평가돼

산스크리트본 등 전설에서는
잔인하고 폭력적 모습도 비춰
위대한 군주로 모호함도 있어


역사 속의 아쇼카는 서북쪽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쪽의 벵골, 남쪽의 타밀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역에서 석주나 암괴에 자신이 다르마로 의도하는 바를 일련의 칙령과 명문으로 새기게 했습니다. 이 칙령과 명문들에 따르면 아쇼카는 다르마를 설명하면서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도덕적 정체(政體)의 수립, 종교에 대한 관용, 생태 환경에 대한 인식, 공통된 윤리 관념의 준수, 전쟁의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특히 참혹한 전쟁에서 빚어진 고통에 대해 참회하며, 그 이후로는 정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다르마에 따른 학습, 사랑, 포교에 헌신할 것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아쇼카의 훌륭한 행동들로 인해 그가 남아시아와 그 밖의 광대한 지역에서 불교 군주의 모델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거의 2000년 동안 인도와 불교권 아시아 전역의 불교도들은 명문에 아쇼카가 직접 쓰게 한 그의 다르마에 대한 비전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의 칙령과 명문들을 쓴 브라흐미 문자가 그의 사후 오래지 않아 잊혀졌고 19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해독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 불교도들은 역사상의 아쇼카를 알게 되었지만, 과거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불교도들은 아쇼카를 전설에 그려진 대로만 기억할 뿐입니다. 오늘 제 강연의 중심은 바로 이 아쇼카에 관한 전설들입니다.

아쇼카왕에 대한 전설은 여러 언어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어본은 불교 설화들을 집성한 ‘디비야바다나(Divyāvadāna)’라는 책에 실린 것으로 통상 ‘아쇼카-아바다나(Aśokāvadāna 아쇼카의 전설)’라고 불립니다. 이 전설의 팔리어본은 5세기에 스리랑카에서 편찬된 ‘마하밤사(Mahāvaṃsa)’에 실린 것이 가장 유명하고, 그밖에 이 본에 기초하여 흥미롭게 변형된 것들이 다른 텍스트들에도 실려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전설들은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뉩니다. 아쇼카는 파탈리푸트라(Pāṭaliputra, 오늘날 북인도의 파트나)에서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두 번째 왕인 빈두사라(Bindusāra)의 작은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부터 그는 사악하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는 배다른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흉포한 아쇼카(Caṇḑa-Aśoka)’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젊은 스님을 만나 감화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여 ‘정의로운 아쇼카(Dharma-Aśoka)’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불사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영토 전역에 8만4000개의 불탑을 세워 부처님 사리를 새롭게 봉안한 것입니다. 말년에 병에 걸리자 보시에 매진해 그의 개인 재산과 국고를 모두 승가에 바쳤습니다. 나중에는 ‘미로발란(myro balan)’이라는 과일 반쪽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고 전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이것마저도 스님들에게 바치고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아쇼카 전설들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또 동아시아 일부에서도) 군주들이 모방하고자 했던 군주의 모델을 제공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아쇼카 전설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군주에 대해 몇 가지 다른 이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선 이 전설들은 이상적인 불교 군주의 모델을 보여 줍니다. 즉 불교의 가르침, 다르마(정법)를 지키면서 스님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불교 군주를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전설들은 왕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들에 대해서도 경계합니다.

이 전설들 속에서 아쇼카는 일반적으로 정의로운 왕, 법왕으로서 칭송받지만, 동시에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아쇼카의 지옥’이라 불린 감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겉에서 보면 아름답지만 이곳은 잔인하게 죽음이 내려진 고문의 방들로 가득 찬 공포의 현장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곳은 왕권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metaphor)로 볼 수 있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정의롭고 선의(善意)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다른 때에 아쇼카는 복종하지 않는 것을 구실로 500명 신하들의 목을 자르기도 했고, 자신을 조롱한다는 구실로 500명의 후궁을 불에 태워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악행들은 산스크리트어 전통에서 그의 성품이 잔인하고 권력에 굶주린 일면을 강조하며 ‘찬다(흉포한)’라는 호칭을 붙여 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불교에 귀의하기 전 아쇼카의 흉포하고 충동적인 기질을 보여 주는 것이고, 그가 다르마에 따라 통치하면서 달라지게 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설에서 그의 성품이 흉포하고 충동적인 면은 그가 불교도가 된 뒤에도 때때로 드러났습니다. 불교에 귀의한 직후 새로운 신앙과 비폭력에 대한 가르침에 깊이 심취했을 것 같으나, 오히려 아쇼카는 1만8000명의 무리 가운데 한 명의 잘못에 대해 분노하여 모두를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이나교도들을 학살하고 비불교도들의 머리에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물론 같은 텍스트에서 아쇼카가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논점은 이 전설들 속에서 군주로서 아쇼카에 대해 종종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더 모호한 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모호함은 산스크리트어본에서 아쇼카에게 주어진 흥미로운 호칭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륜성왕’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말은 그가 다르마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정의로움과 카리스마의 힘으로 네 개의 대륙을 다스리는 위대한 전륜성왕과 달리 아쇼카는 하나의 대륙만을 다스리기 위해 군대에 의존했습니다. 때로는 전륜성왕은 금으로 된 수레바퀴, 즉 금륜의 전륜성왕, 철로 된 수레바퀴, 즉 철륜의 전륜성왕으로 나뉩니다. 전설에 묘사된 아쇼카는 확실히 철륜의 전륜성왕에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아쇼카에게 드러난 위대한 군주로서의 모호한 면모를 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산스크리어와 팔리어 전승의 여러 아쇼카 전설들을 통해 군주로서 아쇼카에게 드러난 정의로운 면모와 흉포한 면모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인도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고 합니다. 카르마(karma)의 법칙은 어떤 사람의 과거 행동이 어떻게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산스크리트어 전설에서 아쇼카가 군주로서의 ‘잔혹한’ 면은 그가 매우 추한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데에 기인합니다. 특히 그는 만지기 싫을 정도로 매우 거친 피부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그를 싫어했고 후궁들도 싫어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은 그가 전생에 부처님에게 흙을 공양했다는 사실로 설명됩니다.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은 보시를 얻기 위해 탁발을 나갔습니다. 머지않아 큰 길에 다다랐는데 그곳에 두 어린아이가 흙으로 집을 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아이의 이름이 자야(Jaya)였고, 다른 아이는 비자야(Vijaya)였습니다. 둘은 부처님의 훌륭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린 자야는 ‘이 분께 가루로 빻은 음식을 드려야지’ 하면서 한 줌의 흙을 부처님 발우에 넣었고, 그의 친구 비자야는 이 행동을 도왔습니다. 부처님에게 공양을 한 자야는 “선한 공덕을 가져오는 이 행위로 제가 미래에 왕이 되고 이 땅이 한 군주 밑에 놓이게 해 주십시오. 위대한 부처님을 경배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서원했습니다.

당시 어린아이 자야는 아쇼카였고, 비자야는 그의 신하인 라다굽타(Rādhagupta)였다고 합니다. 자야가 흙을 바친 행위는 순전히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흙은 부정(不淨)한 공양물이었기 때문에 그는 거친 피부를 갖고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아쇼카의 이 행동으로 그가 나중에 갖게 될 양면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진실한 관대함으로 행동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적절한 공양물을 바쳤습니다. 다른 후대 본들은 이러한 양면성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즉 어린아이 자야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공덕을 심는 복전(福田)으로서 부처님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공양물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 오히려 흙은 정말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 대지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야가 세계 전체를 부처님에게 바친 것을 의미하고 그가 장차 왕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을 미리 예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또는 흙 자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후대의 팔리어 텍스트에서 부처님은 자야가 바친 흙을 받아 시자인 아난에게 그 흙을 물에 개어 승방의 벽에 난 틈을 메꾸게 합니다. 그리하여 흙을 부정한 것에서 적어도 유용한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매우 늦은 시기의 또 다른 텍스트는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흙을 공양함으로써 위대한 아쇼카의 영광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 텍스트는 부정적으로 답합니다. 다른 전생에서 미래의 아쇼카가 무수히 많은 불상을 만듦으로써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 흙의 공양은 그가 거친 피부를 갖고 태어나게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계속)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내용은 재단법인 리앤원이 9월9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진행한 ‘초기불교 언어, 전설, 유물’ 국제학술강연회에서 존 스트롱 미국 베이츠대학 교수가 강연한 ‘호불왕 아쇼카의 전설과 그 다양한 면모’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