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행일기] 김술환
[나의 신행일기] 김술환
  • 법보신문
  • 승인 2017.09.1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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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대일
소리가 좋다.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경전 읽는 소리, 목탁소리, 염불소리, 풍경소리…. 법당에서 좌선이라도 하면 마음이 한없이 편해진다. 남의 집 같지 않다. 산행을 하더라도 사찰 있는 곳을 찾는다. 걷는 자체가 수행이라 여겨져 혹여 전생에 탁발승이 아니었는지 착각도 든다. 단순한 걷기이지만 수행이라 여기는 순간, 마음이 편안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오솔길 따라 걷다 산사를 만나면 극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송광사서 법명 받고 수계
일·가정에만 매달렸던 청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반추
‘금강경’ 간경 등 정진 중


조계총림과 인연은 특별하다. 구산 스님이 주석하실 때 불일회 모임을 하면서 지금의 법명을 받았다. 마침 여수에서 직장생활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나 둘 곱씹어보면 참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긴 있나보다.

20~50대엔 앞만 보고 회사와 가정에 매달려 생활했다. 부모, 남편, 아들이라는 역할이 정해져 있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됐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또 깊은 산길을 혼자 걸을 때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나에 대한 수많은 질문은 복잡한 생활 속에서 잠시 일을 멈추게 한다. 나를 돌아보거나,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계획하면서 또 취침 전 하루 일을 반성하면서 내가 오늘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던 일이 많았다. 젊을 때는 과업적인 측면에서 반성을 주로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행이나 휴가 중 간간이 자신과 지난 행적을 되돌아보지만 현실로 나오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생존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가 미약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일까. ‘금강경’에 따르면 ‘나 김술환은 김술환이 아니고 이름이 김술환’이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인연 따라 김씨 집안에 태어나 항렬과 태어난 순서에 따라 부모님이 ‘김술환’으로 작명했다. 연기법 따라 형상이 만들어졌고 수상행식이 들어간 인격체인 ‘나’는 누구인가.

지구상에 72억명 인간이 생존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 내 존재는 바닷가 모래알과 같이 너무 미미하다. 인간 개개인 모두가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나 삼라만상 속에 있는 내 위치가 그렇다. 하지만 생각만 살짝 비틀어 보면 다르다. 미미한 존재가 바로 소우주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그래서 수승하다.

지금은 졸업했지만 조계종 디지털대학에 입학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해 나가며 몇 가지 서원을 세웠다. 마음만 아닌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 무소유 정신으로 남을 돕는데 적극 뛰어들고 싶었다. 여태 타의에 의한 소극적 보시만 했다. 육바라밀에서도 가장 으뜸이 보시 아니던가. 먼저 보시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금전 아니면 육체적 노력 봉사라도 해야 참다운 불자가 아닐까.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세상살이나 인생사에서 탐진치 삼독심에 사로잡혀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당연하고 그러다보니 무한경쟁을 펼친 듯하다. 여기에 쏟아 부은 노력을 줄이고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도록 욕심을 버리는 연습 중이다. 욕심은 욕심을 낳고 사회를 메마르게 할 뿐만 아니라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비우지 않으면 이기심 덩어리에 깔려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불교공부와 수행에 더 노력을 하고자 한다. 학교 다닐 때 대학 불교학생회에서 ‘반야심경’ 외우고 철야정진을 했지만 사회 나오면서 파묻히고 말았다. 이런저런 핑계로 불교공부에 게을리 해서 창피하지만 이제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회 울타리를 벗어났고, 최근 ‘금강경’이 크게 마음에 와 닿는다. 디지털대학을 졸업한 동문이 정기적으로 만나 간경하고 있다. 서울·경기·강원지역에 거주하는 동문들이 매달 10~20명씩 정기모임을 갖는다. 서울 종로에서 만나 ‘금강경’을 간경하고 격월로 사찰 순례를 다닌다. 앞으로도 이런 경전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아 진실한 불자가 되고자 하며 불법승 삼보를 믿고 수행도 열심히 하고자 한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잘 가던 배도 키를 잡지 않으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좌초하고 만다. 이 세상을 항해하면서 본성의 키를 놓지 않고, 마음의 등불을 오래 지피도록 끊임없이 나를 찾아야겠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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