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가 지났습니다. 계절로는 여름이라 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세상은 완연한 봄인 듯합니다. 만화방창의 꽃들은 지금도 저마다 간직한 향기를 지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봄이라 하든, 여름이라 하든,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입니다. 이 맘 때쯤이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사찰의 손길도 제법 바빠집니다. 겨울과 이른 봄에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멈추지 않지만, 그래도 산사를 찾는 발길은 이 때 부터 초가을까지가 제일 붐비기 때문입니다. 산사를 찾는다는 것, 며칠이라도 사찰에서 머무르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단순관광 차원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고, 듣고, 나아가 경험해 보려는 의식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나아가 경험케 해 주어야 할 의
종종 우리는 뜻하지 않은 존재자가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예전에 그것은 네스호의 괴물이나 UFO, 혹은 영매의 몸에 갑자기 내려앉은 귀신처럼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던 것들, 혹은 과학의 시선 바깥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것이 별로 남아나지 않게 된 지금, 그런 ‘신비한’ 사실 자체도 별로 남아 있지 않거니와, 어쩌다 귀에 들어온다 해도, 일축의 감탄사와 함께 쉽게 묻혀버리고 만다. 그래도 종종 당혹을 야기하는 뜻밖의 존재자들이 있다. 전에 태평양의 어딘가에 있는,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가 떠돌다 모여 만들어졌다는 거대한 쓰레기의 섬 얘기를 인터넷서 보았을 때 그랬다. 이때의 놀라움과 당혹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것이었다는
“아들아 서러워 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오월항쟁에 나선 민주시민의 묘비명 가운데 하나다. 1980년 오월 그날로부터 31년이 흘렀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적잖은 사람들은 새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오월의 민주시민들이 꿈꾸던 새날이 과연 부익부빈익빈 세상이었을까.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그날의 민주시민들을 다시 학살하는 야만이 벌어지고 있다.자칭 ‘보수단체’인 ‘국가정체성회복 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까지 직접 찾아가 5·18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5월이다. 옅은 초록으로 대지가 수줍다. 길을 걷자니 나도 아이인 양 설렌다. 고개 들면 황사로 대기가 무겁지만 눈높이 세상은 꽃피고 푸르다. 고맙다. 이 계절이 있어 아무튼 고맙다. 길가엔 줄지어 달린 연등이 봄바람을 맞는다. 흔들흔들 하느작하느작. 하기야 시절을 생각하면 적이 처량도 하다만 애써 반갑다. 그래 부처님오신날이다. 크고 작은 절에선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 힘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절집 구석구석 사람들이 들어차니 시끄러워도 꽤 힘차다. 이 폭풍이 지나면 얼른 쓸쓸해지겠지. 부처님오신날은 마야부인이 아들 고타마 싯다르타를 낳은 날이다. 경전에선 싯다르타는 도솔천에 있다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하얀 코끼리를 타고 천신의 호위를 받으며 왔다. 그가 도솔천에 있을 땐 인간이
부처님오신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시라도 중생의 아픔을 잊지 않으신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일심(一心)으로 염송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 게 이 마음이 바로 자비(慈悲)로 가득한 자량(資糧)의 씨앗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나투신 오월, 자연의 푸르름은 ‘희망’과 ‘긍정’을 말하고 있는데 불자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요? 그리 편치만은 않을 듯 합니다. 소납 역시 그러합니다. 장로 정권의 반문화적인, 반생명적인, 반민주적인, 반인권적인 정책과 행동들은 불자들은 물론 국민과 이 땅의 생명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엔 국민을 향해 온갖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더니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더니 이제는 그런 공약을 한 적이 없다며 국민을 혼란과
한국에서 자살은 이제 양적으로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최고 수준이 된 듯하다. 지난해 서울대생 가운데 5명이 자살했다고 하더니, 올해는 몇 달 안되는 사이에 카이스트 학생 4명, 급기야 교수도 1명 자살을 했다. 잘나가는 엘리트들이 앞장서 자살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드러난 카이스트의 현실은 자살의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징벌 등록금, 예외 없는 영어강의, 등록연한 제한, 교수들의 실적주의 등등 단 한순간도 경쟁에서 피할 수 없는 제도로 학생은 물론 교수들을 토끼 몰듯 쪼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끼몰이 제도들이 한때는 총장이름을 따 ‘서남표 개혁’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찬양되었다고 한다.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멀쩡한 소 돼지가 잔계산의 경
초과이익공유제. 한국 사회에서 곰비임비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삼성그룹 협력사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식’에 참석해 초과이익공유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며 ‘꺼져가는 불씨’에 호호 바람을 불었기 때문이다. 기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양극화가 무장 커져가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두루 알다시피 한국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기업의 99%에 이른다. 일자리를 보더라도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대기업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중소기업의 아우성은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언론에 광고를 많이 주는
지난달 모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때문에 시끄러웠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가수 일곱 명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부르고 심사자들이 그들을 평가해 최하위는 탈락시키고, 한 사람을 충원하여 다시 경쟁하는 방식이다. 요즘 좋아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작진은 바로 이 긴장으로 가수들의 노력을 유도하고 그것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길 기대했다. 요즘 대중음악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시도다. 최근 텔레비전 음악프로그램은 어떤가. 이른바 아이돌 스타가 점령한지 오래다. 짧게 소비되는 가수를 기획사에서 계속 찍어낸다. 민망한 노래실력으로 가수입네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30대가 된 전직 아이돌이 예능프로에 나와 무슨 원로 가수인양 회고담으로 시간을 때운다. 채널은 많지만 채널 선택권을 일찌감치 박탈당했다. 투표권은
요즘 시골도량에 가면 ‘참으로 생기(生氣)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만 가득한 우리네 농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인구 통계 조사에서 전 국민의 23%에 해당하는 1200만명 가량이 자발적으로 불자라고 밝힌 점을 생각하면 절에 불자가 없고 사람이 없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불자들이 일상적으로 정진하고 기도하고 참배하는 곳이 도량이거늘 한 달 30일 중 주말과 초하루를 제외하곤 한적한, 그야말로 고요한 산사(山寺)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중생과 함께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전제로 할 것 같으면 도량에 불자가 없다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활기찬 도량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불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
‘강남좌파’, 아마 지금 한국의 보수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인 듯하다. 며칠 전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서울대 조국 교수를 명시적으로 거명하면서 ‘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분당 우파여, 강남좌파에 속지 말고, 자신이 속한 계급을 지지하라!”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다. 다른 한편 지난달 초순 ‘B급 좌파’를 자처하는 한 논객이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비판하면서, “먹고살 걱정 없는 중산층 엘리트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을 위한 변화라고 과장하여 주장”한다며 비판했었다. 당신은 중산층 엘리트고, 당신이 주장하는 건 ‘민주집권플랜’이지 ‘진보집권플랜’이 아니라고, ‘진보’는 우리 땅이니 저기 당신들 땅(강남!)으로 가라고 비판한 것이니, 단어는 직접 사
선진국. 참 좋은 말이다. 선진국으로 가자는 데 반대할 국민이 있을까? 없다. 문제는 선진화의 내용이다. 선진국을 가장 부르대온 정당은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시절 ‘선진국’을 내세웠다. 그의 선진국 담론에 핵심은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이다. 하지만 747은 언제나 한나라당을 두남두는 부자신문에서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세계 금융위기 탓이라고 둘러대지만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이었다. 현재까지 선진화 주장에 상대적으로 가장 체계적 담론을 내놓고 있는 곳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다. 재단 책임자는 박세일이다. 문제는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박세일의 선진화 담론이 공허하다는 데 있다. 두루 알다시피 박세일은 한나라당 정책위 위원장과 여의도
누구나 꿈이 있었다. 그래 꿈이 있었다는 표현이 맞다. 많은 이들에게 꿈 얘기는 그저 추억이다. 멋모를 적 나는 뭐가 될 거라고 허풍을 떨었지. 선생님하고 대통령 가운데 뭐가 될까 고민도 했지. 그야말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이 시대에 꿈은 매뉴얼이 있다. 대학 가는 게 꿈이고, 취직하는 게 꿈이다. 이 정도도 힘들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게 꿈이다. 존재하는 게 꿈인 웃긴 현실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장래 꿈이 뭐냐고 묻는 게 민망한 시대다. 다섯 살 배기 아이가 “제 꿈은 취직하는 거요” 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듣고 있는 부모나 어른들은 정말 미안할 것이다. 일찍 철이 들어서 좋긴 하다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