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정 희경실련 시민입법국장 3월 30일 고위직 공직자 1058명에 대한 재산이 공개되었다. 공직자윤리법에 의해 해마다 4급 이상의 공직자는 재산을 각 기관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토록 돼있고, 정부의 고위공무원단, 국회의원, 법원, 검찰 등의 1급 이상의 재산은 공개토록 돼있다. 이 법에 따라 공개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들여다보면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의 어려움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의 급증으로 가계살림이 힘들다는 세상살이와는 다르게 살고 있으며, 내 집 한 채 갖기를 평생 소원하는 보통 시민들의 삶과는 너무도 달라 보여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변동신고 결과를 분석한 언론보도를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평균 3억1900만원 늘었고, 전체 고위 공직자의 재산 평균은 15억1600만
이 찬 수종교문화연구원장 전철에서 어떤 사람이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어떤 사람은 험악한 말도 불사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진다. 습관이 되다시피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믿어져야 믿지!” 믿고 싶건만, 믿어지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 분명한 것은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믿어져야만 믿을 수 있는데, 무조건 믿으라니. 참 공허한 외침이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러니 믿으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 생겨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이요 은총이다. 믿음이 주어져야만 “나는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믿는다”
김 광 하작은손길 대표 지난 2월 11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명이 죽고 17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 동포가 불만을 품고 방화를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 불만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주노동자들의 사회적 불만이 나타난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돼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의 수는 약 40만명이다. 이 중 불법체류자는 약 18만9천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 이주노동자의 약 50퍼센트 수준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04년과 2005년 동안 약 6만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를 단속 추방했다. 20만명이나 되는 외국인들이 불법체류자로 일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안고
정여 스님여여선원 선원장 최근 몇 년 사이 자살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스스로 고귀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가 1만 2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생의 길(삶)을 함께 가는 동반자 입장에서 보면 목이 메고 가슴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공인인 젊은 연예인들의 자살은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부여된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스스로 끊기까지는 얼마나 아프고 괴롭고 힘이 들었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을 포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없고 절망감에 빠지기 때문이리라. 살아서 행복을 누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
위 정 희경실련 시민입법국장 경실련의 창립을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으므로, 우리나라 시민운동 역사는 이제 2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시간동안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온 시민단체들은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여론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이후 과거 어느 때 보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커졌고, 시민운동의 영역 또한 분야의 전문성, 다양성, 지역성 등을 가지며 셀 수 없이 많아졌다. 혹자는 민간단체라는 명칭으로 이미 2만여 개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시민단체에 대한 많은 비판과 비난들이 쏟아졌고,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도 눈에 띄게 약화되었음을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정파적으로 편향되었다.’, ‘정치 지향적이다’, ‘비전문성으로 대안이 없다’, ‘시민
이 찬 수종교문화연구원장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막론하고 지난 천오백 년 동안 전 세계 많은 그리스도 교회에서 예배시간마다 여전히 바쳐지고 있는 대표적인 신앙고백문이 「사도신경」이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셨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 가운데 예수가 “저승/지옥에 가셨다”는 구절을 누구인가 언제인가 슬쩍 빼버려 일반 신자들의 관심 너머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천주교회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구절을 담아 신앙고백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은 뒤 땅에 묻혔고, 그런 다음에는 저승, 즉 지옥으로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지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일반 개신교인들에게는 생경하게 느껴지고, 실제로 그렇게 외우고 있는 천주교인들에게조차 의아하게 다
김 광 하작은손길 대표 지난 1월 16일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 성당에서 노숙인 11명이 인문학 과정을 수료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이들은 성공회에서 마련한 철학과 문학 그리고 문화체험 등의 인문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수료증을 받은 것이다. 노숙인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지난 8개월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이런 새로운 시도는 이미 프랑스에서 몇 년 전부터 시행하기 시작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새로운 자활프로그램이다. 노숙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부랑자와는 다르다. 아이엠에프 이후 우리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노숙자는 경제의 양극화 현상과 고도 산업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노숙자로 추
남궁 영동아방송대 교수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에 ‘같기도’라는 것이 있다. 출연자의 말을 빌리자면 ‘같기도’란 춤의 절대무공을 지향하는 바,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같기도’라고 한다. 출연자들은 이소룡 풍의 체육복과 도복을 입고 나와 합기도 아니면 태권도와 같은 무슨 무술을 보여줄 것처럼 ‘같기도’를 외치지만, 막상 코너가 시작되면 딴 판이다.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김준호는 허연 눈자위를 드러내고 마치 신들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녀, 이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녀’란 말을 되풀이하며 무대를 휘젓는다. 이를 보는 객석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안방의 시청자들도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와 우스꽝스런 몸짓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최 명 숙 시인 영화 마니아는 아니지만 영화를 심심치 않을 정도로 보는 편이다. 연초라 다른 때보다 부산하게 일주일을 보낸 금요일 저녁에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았다.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혼자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인데, ‘오래된 정원’이 영화는 혼자 보아야 좋을 것 같았던 예감이 적중한 영화였다.이 영화는 1980년대 광주민주항쟁에 연루되어 17여 년간 수감생활을 마친 뒤 출소하는 오현우와 그의 수배기간 중 짧은 사랑을 나누었던 미술교사 한윤희와의 1980년대 이후 삶을 다룬 영화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원작으로 했으나 소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1980년대를 조명하고 있다. 소설에서 1980년대에 대한 오현우의 성찰과 한윤희를 빌어 동구권 몰락 뒤
권 오 민경상대 교수 지난 연말 동국대 총장으로 선임된 오영교 씨는 선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동국대가 세계적인 불교학의 메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피력하였다고 한다.(본보 881호) 그 기사를 접하면서 본보 877호 1면 톱으로 실린 “동대 불교대 존립기반 휘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오버랩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전과하는 바람에 학과운영은 물론이고 불교대학의 존폐위기로까지 치달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설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잘못된 전과제도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전과제도만을 탓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견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승려의 환속이나 탈종을 제도로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혹 사설대로 “불교대학은
청운 스님표충사 주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며 또한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들은 보는 대상마다 다르고, 보는 때에 따라 다르고, 보는 곳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장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산비탈 같은 곳을 자주 올라가야 하므로 기존에 갖고 있던 승용차를 팔고 지프차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마음먹고 중고차 시장을 돌아 다녔는데 하루 종일 눈에 지프차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속에서 ‘지프차’‘지프차’하니까 실제로 지프차만 지나가더란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에게 드러나는 모든 것은 한마디로 ‘마음작용’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남궁 영동아방송대 교수 지난 연말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생겨 불국사에 들를 기회가 생겼다. 1,400여 년 전 이 땅에 불국토의 이상을 심었던 곳, 불국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불교 예술품들과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과 기도하는 신도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연화교와 칠보교, 노인의 지혜로 청년의 발걸음을 떼라고 일러주는 청운교와 백운교. 그저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지고 품고 싶은 저 다리들을 밟고 선 사람들은 구름 위를 딛듯 사뿐히 사바세계로 들어섰을 것이라고 상념에 잠겨 본다. 그런데 순간 쇳소리를 내는 스님의 설교 음성이 확성기를 통해 계속하여 경내에 울려 퍼지고 있어 신경을 자극한다. 어디서 음악 대신 틀었거니 생각했지만 영 귀에 거슬린다. 옆문을 통해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