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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명상음악 보급하는 나왕 케촉

기자명 김민경

바람의 소리로 평화를 기원하다

초원의 아들로 태어나
바람의 소리로 평화를 기원하다

그는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의 고향은 동부 티베트 고산 초원지대. 나무도 자라지 않고 바람만이 사는 곳.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3세 되던 해 어느날 요기 명상가가 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가족에게 큰 화(禍)가 미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가족들은 야크를 타고 수천 마일의 길을 떠나 인도로 망명했다. 매우 험한 길이었다. 두 여동생이 인도의 뜨거운 기후를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의 곁을 영영 떠났다. 요기의 예언대로 3년 뒤 티베트는 중국의 침략을 받았다.

인도로 망명 후 출가 수행
인도에서 그는 30년 이상을 살았는데 그중 11년간은 스님으로 지냈다. 달라이 라마와 다른 티베트 스승들에게 불교 철학과 명상을 공부했으며 수년간은 히말라야 산 기슭에서 은둔한 채 수행했다. 청명한 대기를 호흡하고 땅의 기운을 느끼며 부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하고 그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새벽 산이 안개를 피워 올리듯이 천천히, 그러나 넘치도록 충분하게, 아름다운 대자연과 인간 정신의 순일함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비폭력과 연민 그리고 무한한 영적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자리를 정화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의 음악 소리는 인도에서 시작돼 호주와 미국, 남미 등지로 국경 없이 넘나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티베트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히말라야에서 수행 할 때와 변한 것이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이곳 사바 세계를 히말라라에 못지않은 수행도량으로 삼고 연주를 화두 삼아 가일층 정진했다.


티베트의 고통 음악으로 호소
처음 그의 손에는 티베트 전통악기만이 들려 있었다. 차츰 세계 고유 악기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아프리카의 북과 심벌즈, 남미 마야족의 오카리나, 호주 원주민의 악기, 미국 원주민의 플롯들을 손에 들고 스스로 익힌 후 콘서트에 나섰다.

호주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과 함께 티베트의 고통을 호소했다. 89년 달라이 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전 티베트 민중의 감격을 시상식장에서 음악으로 표현했다. 1991년 티베트 불교의 신실한 신도 리처드 기어와 뉴욕 티베트 하우스가 그의 북미 순회 공연을 주선했다. 국제 티베트의 해 기념 주간 동안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공연하고 신문 방송에 출연하여 티베트의 상황을 알리는 날들이 시작됐다.

콘서트 틈틈이 7개의 연주 앨범을 완성했다. 세계적인 뮤지션들과의 공동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 방문 후 달라이라마 친견”
장 자끄 아노가 감독하고 브레드 피트가 주연한 ‘티베트에서의 7년’의 영화음악으로 그의 음악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12일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18일부터 사흘간 서울과 수원, 인천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연주회를 앞두고 마련된 작은 기자 간담회에서 그를 만났다. 같은 검은 머리 몽골리안인 한국인들 속에서 그를 찾아내는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웃집 청년같은 친근함과 아티스트 특유의 부드러움이 돋보였다. 듣기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바람의 느낌을 담고 있었다. 한정된 인터뷰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질문에 성의를 다하여 꼼꼼하게 대답했다. 간간이 그는 매우 유쾌한 웃음을 흩뿌렸다.

인천불교청소년협회의 초청을 받아서 방한 콘서트를 열게 되었는데 이번 콘서트를 수락한 이유는?

초청을 받았을 당시에는 달라이 라마 성하의 방한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는 성하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더구 한국은 해외에 부강하고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회에 한국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경험하고 싶었다.

앨범 제목에 ‘자비’나 ‘평화’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음악은 보편적인 언어이다. 문화와 사회,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가장 뛰어난 언어이다. 이런 음악은 평화의 도구로도, 파괴의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 평화를 노래하면 마음에 평화를 주고 저주와 폭력을 노래하면 폭력을 조장하는 언어가 되는 양면성을 지닌 언어가 바로 음악이다. 나는 나의 음악이 세계인들이 서로 융화 될 수 있는 평화로운 음악으로 쓰여지길 원한다.

당신의 음악이 국경을 넘어서 세계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마도 나의 음악이 지적인(논리적인 사유를 지닌) 음악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온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수용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여러 계층이 나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나 자신도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이다.

한국인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외에 따로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그가 마땅히 받을 만한 상이라고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축하를 보지만 이상한 것은 같은 인권 문제로 상을 받은 이, 도반과 같은 이의 방한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만 같이 한국보다 작은 나라의 국민과 정부도 중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23일 이한 후 인도를 방문한다고 들었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가?

성하를 뵙고 한국에서의 활동을 전할 예정이다. 또 올해는 성하가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한 꼭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는 다큐멘타리가 제작 중인데 이 작업을 위해서 만날 예정이다.
이후에는 태국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의 성스러운 음악축제’에 참석하여 연주할 예정이다.




취재 후기
-티베트 민중에게 가피를
제한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전 세계를 돌며 몇번이나 같은 내용의 질문을 받고 대답했을 터인데도 귀찮은 기색도 없이 오늘이 마치 처음인양 답변했다.

인터뷰를 하며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음악’과 ‘평화’였다. 그와 그의 조국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고통이 물러가고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불시에 통역을 맡아서 인터뷰를 도와준 임진숙씨에게도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 김민경 기자·사진 황 도 기자
mkkl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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