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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생사의 길

기자명 이제열

보살은 갈애 없어도 자비심으로 세상 온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거사님, 당신의 병은 무슨 인연으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무명과 갈애로부터 생겼으며 일체 중생이 병 들었으므로 나도 병이 생긴 것입니다. 만일 일체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며 중생의 병이 없으면 보살도 병이 없습니다. 비유하면 아들이 아프면 부모도 아프듯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는 것입니다.”

중생은 무명으로 태어나지만
보살은 대비심으로 세상에 와
겉으로는 나고 죽음 있어도
실제론 결코 나고 죽음 없어

“중생이 병 들었으므로 나도 병 들었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는다”는 내용은 ‘유마경’을 상징할 만큼 유명하다. 불교의 동체대비 사상을 나타내는 명귀라 할 수 있다. 우선 여기서 유마거사는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묻는 문수사리의 질문에 자신의 병은 무명과 갈애로부터 생겼다고 답한다. 무명과 갈애는 중생들에게 괴로움을 발생시키는 근원적 번뇌들이다. 무명이 나무의 뿌리와 같다면 갈애는 줄기와 같다.

무명과 갈애라는 뿌리와 줄기는 수많은 가지와 잎들인 지엽번뇌들을 발생시키고 괴로움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낸다. 중생들이 당하는 모든 괴로움이라는 병들은 무명과 갈애를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무명이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고 갈애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크고 작은 욕망들이다. 이 갈애가 강화된 것이 집착이며 집착은 선악 업을 일으켜 과보를 초래한다. 그 과보가 바로 괴로움인 것이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이와 같은 무명과 갈애가 원인이 되어 자신의 몸에 병이 생겼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유마거사는 법신의 대사이다. 비록 모습은 거사의 몸을 하고 있으나 그의 경지는 부처님과 동일하다. 그런 유마거사에게 무명과 갈애가 존재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마거사가 무명과 갈애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에 병이 생겼다는 대답은 뒤에 나오는 문장과 연결해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곧 “일체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다”는 구절에서 유마거사의 발병동기를 이해하면 된다. 일체 중생의 병은 생로병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괴로움들이며 그 원인은 무명과 갈애이다. 만약 중생들에게 무명과 갈애가 제거된다면 모든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이 같은 이치에서 보면 유마거사가 병을 앓는 모습을 보인 것은 중생들에게 무명과 갈애가 있어서이다. 유마거사는 중생의 상황에서 자신의 발병원인을 설하는 것이지 자신의 상황에서 발병원인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무명과 갈애가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병들어 있는 중생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마거사는 보살이 이 세상에 몸을 나타내는 원리에 대해 답한다. 보살이 세상에 나고 죽음의 고통을 받는 것은 무명과 갈애 때문이 아니라 중생의 괴로움이라는 병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보살은 이미 번뇌를 여의고 괴로움의 해탈을 성취해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다. 그러나 중생을 향한 연민 때문에 해탈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일부러 이 세상에 몸을 받고 태어나 중생과 함께 하며 그들의 괴로움을 해탈시킨다.

불교에서는 나고 죽음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가 분단생사(分段生死)이고 다른 하나가 변역생사(變易生死)이다. 분단생사는 중생의 생사로 무명과 갈애를 원인으로 하여 나고 죽는 것이고 변역생사는 대비대원을 원인으로 하여 나고 죽는 것이다. 변역생사는 보살이 성취한 해탈과 열반을 그대로 누리면서 나고 죽음을 보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나고 죽음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나고 죽음이 없다. 이와 같이 열반과 생사를 둘로 보지 않고 차별을 넘어서 평등한 이치로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보살의 행을 무주(無住)라 한다. 유마거사는 둘 아닌 불이의 이치와 머무름이 없는 무주의 이치로써 병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16호 / 2017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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