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일심청정
45. 일심청정
  • 성원 스님
  • 승인 2017.12.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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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서 벗어날 때 완성되는 큰 그림

 
계절은 언제나 문득 다가온다. 지구 역사와 더불어 단 한 번도 그 시간을 달리하여 오간 적이 없었고,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들은 늘 문득 다가 온 계절을 이야기 한다. 우리들이 삶에 취해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연합합창단 참가팀 늘어나며
경쟁적 구도 만들어질까 염려
이기심 버리고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무대 선보이고 싶어


어린 시절 추억은 저 혼자 멀리 떠나 마치 타인인 냥 기억에만 아롱져있다. 어린 시절 눈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요즘은 눈이 왜 적게 내리는지 궁금했다. 습관처럼 구글 검색 창을 두드려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통계에도 예전에 눈이 더 많이 왔다는 자료는 없었다. 눈은 몇 해를 두고 폭설을 내리면서 우리의 겨울 풍경을 그려주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들은 제법 긴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 우리들이 좋아하는 눈의 추억만을 고스란히 담고 다른 기억들은 다 망각시켜 버렸던 것이다.

우리들 모두 이기적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엄격히 보면 인간뿐만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을 통해 종족의 실체를 전해가는 모든 생명들은 언제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달리표현하면 생존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추억의 시간마저도 이기적 아름다움으로 편집하니 말이다. 물론 상처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이것도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보호적 이기성으로 인해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억으로 남은 시간 사이에 묻혀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불법이 팔만사천이라고 한다. 매우 많다는 인도식 표현이라고 했다. 우연하게도 해인사 대장경판의 수가 딱 팔만이 넘는다. 아무리 빼곡히 쌓인 경전의 법문이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담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계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살다가 일과가 없던 어느 날 문득 부처님께서는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셨는지 궁금해졌다. 노래는 음표를 쫓아 부르는 것이지만 음표사이에 숨어 있는 쉼표가 없다면 음악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 쉼의 시간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삶은 쉼을 통해 온전히 완성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다가 온 계절 앞에서 자꾸 떠오른다. 보리왓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부터 생활이 여유로워졌다고 할까?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 물론 인연의 끈이 쉬이 놓이지 않고 그물망같이 얽혀 적막함까지는 아니다. 어제 같은 날도 하루 종일 정말 손님 치르다 시간을 다 잃어버렸다. 그런 날이면 늦은 밤 자꾸 허전함을 느낀다.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훗날 나의 사건 나열적 기억에서는 사라지고 없을 지라도 혼자의 시간은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만 같다. 지난 시간 어린이합창단을 운영하면서 영혼을 살찌우는 아이들의 시간을 내가 너무 빼앗아 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벌써 6개 합창단으로 늘어난 천진불어린이합창단연합회가 2018년 1월13일 새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참가 팀이 늘어나서 당연히 공연시간이랑 방식에 변화가 요구되었다. 모두 이해하며 지혜를 모으고 있지만 진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각 합창단들이 나열식으로 발표만 하는 이기적 발표의 장이 아니라 연합합창단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공연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첫 공연의 기억도 경쟁적 모습은 지양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남아있다. 내가 조금 이기적이고 거기에 조금씩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기적인 집단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한 국토가 청정해지고 한국토가 청정하면 시방 모든 법계가 청정해진다’는 ‘원각경’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르고 내 맘을 먼저 부처님처럼 조금의 이기심 없는 청정함으로 일구고 싶다. 계절의 흐름이 낯설지 않고 늘 내 것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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