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힌탈레 유적지
3. 미힌탈레 유적지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8.02.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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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승가 함께 공양하던 장엄한 공동체의 향기로운 바위산

▲ 스님들의 공양간이었던 다나살라와에 남아있는 돌확. 500여명의 스님들이 함께 공양할 수 있도록 밥을 담았던 거대한 공양기 바트오루와의 엄청난 크기는 당시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함께 수행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힌탈레는 그리 크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다. 야쇼카왕의 아들이자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마힌다 스님이 이곳에 도착해 데바남피야팃샤왕과의 첫 만남이 이뤄진 이후 미힌탈레 주변에는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다. 아누라다푸라가 스리랑카의 수도로 14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미힌탈레 역시 싱할라왕조와 함께 찬란한 불교사의 중심지로 영광을 누렸다.

불교에 귀의한 데바남피야팃샤
마힌다 스님에게 승원·석굴 보시

미힌탈레 주변 거대한 사원으로
공양간·목욕탕·병원 등 유적 산재

공양간엔 거대한 돌확 유적
사원 운영규정 기록한 석비도

마힌다와 왕 첫 만남 기념하는
불탑 주변 줄지어선 돌기둥은
스리랑카 전통건축양식 보여줘


마힌다 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받은 데바남피야팃샤왕은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 거대한 탑을 조성하고 스님들이 생활할 수 있는 승원을 건립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스님들은 도심에서 적당히 떨어진 외곽, 특히 산속의 동굴 등에서 수행하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데바남피야팃샤왕 또한 1개의 승원과 68개의 동굴을 스님들의 거처로 보시했다는 기록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68개의 동굴이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곳 미힌탈레 곳곳에서도 동굴 수행처의 모습이 확인되고 있어 불교 전래 초기부터 이곳이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됐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힌탈레에는 스님들의 수행에 필요한 부대시설들이 들어섰다. 공양간을 비롯해 목욕당, 설법당, 병원 등이다. 남아있는 유적의 규모를 살펴보면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스님들이 함께 수행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규모다.

미힌탈레 순례는 산 중턱에서부터 시작된다.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1840개의 계단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옛 스님들의 수행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 남아 있다.

▲ 마힌다 스님과 데바남피야팃샤왕이 처음 만난 자리에 조성된 암바스탈라다고바.

다나살라와(Dana Salawa)로 불리는 이 유적지는 스님들의 공양간이다. 예전에는 줄지어 서 있는 기둥 위로 비를 막고 그늘을 드리워주는 지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넓은 직사각형의 터만 남아있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중앙에 넓은 홀이 조성돼 있고 맞은편 맨 안쪽에는 거대한 화강암 돌확이 자리하고 있다. 바트오루와(Bat Oruwa)로 불리는 이 돌확은 스님들에게 공양 올린 밥을 담았던 거대한 그릇이다. 바트오루와 옆에는 캔다오루와(Kenda Oruwa)로 불리는 조금 작은 크기의 돌확이 하나 더 남아있다. 캔다오루와에는 죽이나 물을 담았다. 돌로 만들었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져있어 갈라진 틈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돌을 다루던 석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또 돌확 안쪽에는 음식이나 물이 새지 않도록 금속판을 덧대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이 돌확의 크기를 살펴보면 적어도 500명 이상의 스님들이 한 번에 공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나살라와 옆에는 스님들의 토론실, 회의실로 쓰였던 건물이 남아있다. 스님들이 이곳에서 법담을 나누고 사원 운영에 필요한 여러 사안들을 논의했던 장소다. 이곳에 남아있는 거대한 두 개의 석비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미힌탈레 석비로 불리는 이 화강암 석비는 서기 10세기경의 국왕 마힌다4세(A.D 956~976)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석비에는 사원의 규정들과 함께 이곳에서 일했던 종무원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흥미를 끈다. 종무원의 규모와 업무 내용, 특히 이들에게 지급됐던 임금에 관한 규정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종무원들의 보수는 돈이 아닌 땅으로 지급됐음을 알 수 있다.

미힌탈레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어 한 낮이라도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1840개의 계단 가운데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600여개의 계단이 끝나갈 때 즈음 갑자기 꽤 넓은 평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방이 바위산 봉우리로 둘러싸여 분지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은 평지에서 가장 먼저 순례객을 맞이하는 것은 아담한 크기의 새하얀 탑이다.

암바스탈라다고바(Ambastala Dago ba)로 불리는 이 탑은 여타의 스리랑카 탑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 탑이 서있는 자리는 기원전 3세기 마힌다 스님과 데바남피야팃샤왕이 처음 대면한 장소다. 1세기경 싱할라왕국을 다스린 마하다티카 마하나가(Mahadatika Mahanaga. A.D 9~21)왕이 역사적인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10세기 마힌다4세 왕에 의해 조성된 미힌탈레 석비. 당시 사원의 운영규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조성 당시의 모습은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탑 주변에 서 있는 여러 개의 돌기둥들이 이를 대변한다. 이 돌기둥의 용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아쇼카왕의 석주처럼 돌기둥 위에 장식물을 올리기 위한 용도라는 주장도 있고 걸개그림 같이 무엇인가를 걸기 위한 용도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탑을 보호하기 위한 건축물, 즉 나무로 만든 지붕을 떠받치기 위한 기둥이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탑을 덮을 수 있는 둥근 돔을 만들고 그 주변으로 기둥을 세워 돔과 연결되는 처마를 떠받치는데 마치 창이 넓은 모자와 같은 형태로 지붕을 만들어 탑을 보호하는 형식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러한 건축양식을 와타다게(Vatadage)라고 부른다. 와타다게는 ‘둥근집’이라는 뜻이다. 암바스탈라다고바 주변에 남아있는 돌기둥 또한 와타다게의 흔적으로 2~3세기에 이르러 와타다게가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나무로 만들어졌던 지붕은 사라지고 지금은 탑과 기둥만이 남아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탑에 83세에 입적한 마힌다 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힌다 스님의 유골을 모신 사리탑으로 조성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후대에 탑을 조성하며 마힌다 스님의 유골을 모신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탑의 역사 또한 스리랑카불교사 만큼이나 장대하다.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마힌다 스님은 이곳에서 입적에 들었다. 역사서에 따르면 마힌다 스님은 스리랑카에 법을 전하고 여법하게 승단이 구성된 것을 확인한 후 조국인 마가다왕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당시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사리탑 ‘투파라마’ 조성불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탑의 완성을 보기위해 스리랑카에 남기로 결심한 마힌다 스님은 결국 이곳에서 입적했다.

▲ 1세기 경 조성된 마하세야다고바. 후대에 중창을 거듭해 현재 불탑의 높이는 45m에 달한다.

미힌탈레 언덕 가장 높은 정상에는 암바스탈라다고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탑이 조성돼 있다. 높이 약 45m, 탑의 지름이 136m에 달하는 마하세야다고바(Mahaseya Dagoba)다. 이 탑 역시 마하다티카 마하나가왕에 의해 조성됐다. 기록에 따르면 가파른 산 정상에 탑을 조성하는 불사가 매우 난공사였지만 왕은 목숨을 걸고 이 탑을 완성시켰다고 전한다. 역사의 기록과는 달리 불사 현장에서 목숨을 건 이가 분명 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탑에는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봉안돼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스리랑카에 전해졌는지 그 기록 또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만나는 누구에게 물어보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곳에는 분명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봉안돼 있다고. 저렇게 큰 탑 어딘가에 봉안돼 있다는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찾을 방법은 없다.

가끔은 역사서를 잠시 접어두고, 신성한 탑에 예배하기 위해 가파른 산비탈을 맨발로 오르는 스리랑카인들의 걸음을 묵묵히 뒤따라야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미힌탈레=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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