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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아 [1]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신은 지난 날을 상고해봅니다. 가뭄과 흉년이 들기는 신주를 묻는 해로 시작하여 4년 동안에 곡식은 낫에서 물러났고 음식은 솥에서 떠났으니, 남편을 가지고 좁쌀과 바꾸고 내외간은 마주 울고, 자식을 팔아 살기를 꾀하고 부모는 서로 헤어졌으며, 떠돌아 다니는 사람은 길을 덮었고, 굶어 죽은 사람은 거리를 메웠습니다.

백곡스님은 여기서 붓을 놓았다.
좀 쉬어야겠다.
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한여름의 왕성한 울음이 아닌 걸 보면 가을이 깊은 모양이다. 며칠 밤낮을 뛰는 가슴 잠재우며 평상심을 불러들이느라 애쓰면서 상소문을 마련해온 탓에 눈두덩이 파여지는듯이 당겨왔다. 이제 조용히 마지막 몇 구절만 덧붙이고 나서 상께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무너져오는 것 같았다.

백곡의 왼손바닥으로 오른쪽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목 뒤가 뻐근하니 당겨온다.
스승께서는 함부로 허리를 굽혀 앉지 말라고 늘 가르치셨지. 나이가 들어서인가. 며칠 밤낮을 책상 위에서 필묵과 씨름하다 보니 저절로 등허리가 굽어지고 어깨가 쑤셔오는구나.

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직도 분노의 불씨가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음을 스님은 스스로 감지할 수 있다. 이십년이 넘도록, 아니다, 삼십년이 가깝도록 마음 재우는 길에 정진해왔건만, 이렇게도 성난 마음의 파도가 잦아들 줄 모르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장지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찬 바람이 머리를 식히고 지나간다. 툇돌 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을 짚신을 신으려 하는데 몸이 휘청 흔들렸다. 백곡스님은 무의식 중에 기둥을 붙들고 기대어 섰다. 이틀간 곡기를 끊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선응사미가 달려왔다. "시님, 시님." 울먹이며 말을 말을 잇지 못하는 사미의 목소리가 애잔하다. "괜찮다. 걱정말고 어서 네 할일이나 마저 하여라." "시님, 이렇게 맹물만 드시고 공양을 안 하시니 기운이 다 떨어지시잖아
요." "괜찮다지 않느냐. 조선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는 세상인데 내가 이틀 쯤
안먹고 지낸다고 무슨 일이 나겠느냐. 큰 일이다. 천지가 타들어가고 살아 있는 목숨들이 다 죽어가고 있으니" "그래도 시님께서 건강하셔야 저희들이 기운을 내지요." "그래, 그러마. 어서 네 일이나 보아라."

백곡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선응의 눈동자를 지긋이 내려다 보았다. 선응사미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잡았던 백곡의 어깨죽지에서 두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는 합장하여 반배하고 돌아섰다.

아직도 변성기가 되지 않아 계집아이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선응이의 뒷모습을 보면 앞으로 장정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강보에 싸인 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여 데리고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기티를 벗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견스럽기 한량없는 일이다.

아마도 선응 이놈이 저녁 공양 후 자기 할 일을 접어두고 일없이 내 방을 쳐다보며 앉아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백곡은 생각했다. 벌써 보름째 방의 불을 밝히고 소장을 준비하느라 밤을 세우는 일이 허다했는데 선응이는 그 때마다 백곡의 처소와 마주한 요사채의 마루에 걸터앉아 마치 신장처럼 긴 밤내내 자신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였다.

백곡은 조용히 툇돌에서 발을 내려 딛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만 조절을 하면 이 어지러움도 가실 것이다. 끼니 때마다 밥상 앞에 앉는 것은 마음 여린 백곡에게 여간 감당하기 힘든 일이 아니었다. 4년째의 흉년으로 이제는 더 남아있는 곡식도 없었다. 백성들은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로 겨우겨우 연명을 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없으면 앉아서 굶어죽는 형편이었다. 다행히 함경도는 가뭄이 덜 해 그곳에서 실려 오는 낟알로 온 백성이 겨우겨우 연명은 하고 있지만, 그것도 양반네나 그 가솔들의 일이지, 8천에 속하는 천민들에게는 없는 일이나 매한가지
였다.

8천의 하나인 스님네들에게 있어서랴. 선왕이신 효종대왕께서 승하하시고 새 임금이 보위에 오르신 뒤로 해마다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가며 강토를 휩쓸고 있다. 한해도 아니고 두해도 아니고 벌서 네번째 해가 된 것이다.

추수할 계절인데 거두어들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조정에서는 근년들어 해마다 진휼어사를 호남과 경남에 보내어 흉년의 실상을 알아보고 여러가지 구황책을 내놓곤 하였지만 실제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적었다. 임금은 팔도에 직접 조서를 내려 재해가 극심한 곳에 대해서는 세, 공 등의 역과 초군, 군포등을 경감해 주라고 명했다.

지난 2월에는 진휼어사로 호남에 내려갔던 이숙이 현종 앞에 나아가 흉년으로 굶어 죽은 자 1백42명이며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9백98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원자가 태어나고 왕비 및 대왕대비, 왕대비의 존호를 올리는 겹경사가 있었던 제작년에는 경상좌도에 큰 물이 져 1백20가구가 물에 잠기고 70여명이 떠내려갔다는 보고가 있었다. 엄청난 수해로 민간의 전답이 무너지고 벼곡식이 잠기어 그 피해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의 사치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이런 상소가 올라기도 했다.

`사치의 폐해는 도둑의 폐해보다도 더 심합니다. 속담에 `궁중에서 높은 상투를 좋아하니 사방이 상투를 한자로 높이더라'고 하였거니와, 이 사치풍조를 치유하는 정책은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다만 위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질 낮은 옷입기를 주 문왕같이 하고, 거친 밥 먹기를 하우같이 하여 검소함을 근본으로 삼는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조세감면은 한 문제같이 하고 백성 쉬게 하기를 진 도공같이 하고 나서야 사치의 풍습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는 백성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곡스님은 자신의 처소 앞마당에 서서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런 시련이 지난 천 삼백년동안 한번이나 있었습니까.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견디기 힘든 화두를 내리시는 겁니까.

백곡은 차리리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딩구는 것보다도더 무서운 것은 하루하루 옥죄어 오는 조정의 불교탄압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이 땅의 모든 스님네는 의지할데를 잃을 것이고, 빈 절의 부처님은 오늘날 구덩이에 쳐박혀 나딩구는 시체들처럼 언젠가 이사람 저사람의 발길에 채일지도 모르는 일인것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였다.

누군가에게 힘껏 소리지르고 싶었다. 이제 어찌하라는 것입니까. 살기등등하도록 검푸른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백곡의 가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그저 무심히 반짝이고 있는데, 동정성 근처에는 객성 하나가 밝은 빛을 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옛부터 객성이 자주 나타나고 하늘에 이변이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는데…

작년에는 월식마저 있었다. 광해조에는 이렇게 참혹한 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어왔다. 그 때는 배곡이 태어날 무렵이었으므로 갓난아이가 그 처참함을 기억할 리 없는 일이지만, 날이 가물어 농사일이 걱정스러울 때면 스승과 동양위 주변의 어른들은 하나같이 악몽같았던 광해조의 재변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럴때 들려온 한숨소리 다음에는 언제나 "객성이 자주 들어 걱정일세"하는 말이었
던 것이다.

언제 끝날 시련인고. 백곡은 검푸른 하늘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벌을 내리시나이까. 조상의 신위를 모래 속에 파묻고 비구니를 강제로 혼인시킬 뿐아니라 지나가는 스님을 재미로 두드려패는 이 못된 세월을 질책하시고자 함입니까. 그러나 너무 가혹합니다. 굶어 죽는 이런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으며 신음하는 백성들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십니까.

잘못이 있다면 저 유학을 따르는 무리들의 무도함에 있습니다. 혼조에 지은 궁궐은 부수는 것까지 무어라 하겠습니까마는 부처님을 안치한 절을 부수고 심지어 불을 지르며 무참하게 스님들을 내쫓고 있으니 어찌 하늘에서 내리는 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벌을 내리시되 가련한 백성을 생각하소서.


글:노명신 삽화: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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