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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과 칠장사


안성 칠장사가 있는 칠현산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갈려지는 삼각지에 솟은 산이다. 해발 516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산자락을 깔고 앉은 드넓은 안성뜰을 생각하면 그 음덕이 예사롭지가 않다.

칠장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고려시대에는 혜소국사 등 일곱 국사를 배출한 당대의 유수사찰이다. 지금도 큰 절이 없는 안성과 용인지역에서는 꽤 찾는 이들이 많은 절이다.

필자는 이 절과 숙세의 인연이 깊다. 필자가 처음 칠장사를 찾은 것은 30년 전, 학생들을 인솔해 칠장사로 봄소풍을 가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점심시간을 주고는 칠현선방 마루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그때 마침 절에 머물고 있던 객승 한 분이 차나 한잔 하자며 자기방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한 마디가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명제는 불교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내게는 청천벽력같은 ‘한 소식’이었다.

그 즈음, 10월 1일 국군의 날은 휴일이었다. 동료교사들과 사과밭에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을 이어기고 집을 빠져나와 칠장사로 향했다. 그 스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다시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먹물옷을 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죽산장에 가고, 고시생들만 절을 지키고 있었다. 스님들이 장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생처음 부처님께 참배를 올렸다. 등에 땀이 흠뻑 젖었다. 그러나, 칠현산 골짜기로 잔별이 뜰 무렵에야 돌아온 스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다시는 부처님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고시생들처럼 하숙비(?)를 주고 방 하나씩을 얻어 눌러앉아버렸다.

행자가 된 것은 그러고도 두어 달이 지나서였다. 도량 돌고, 예불하고, 풀 뽑고, 나무하고, 똥치고, 간경하고… 1년만에 계를 받고 그렇게 우러러 보이던 가사 장삼을 걸쳤다.

그때 나이 스물하고 다섯, 벌써 30년 저쪽의 일이다. 중 노릇 제대로 못하고 속환이가 된 후, 가끔 혼자 바람처럼 찾아나선다. 예나 지금이나 산문 앞에만 서면 늘 행자가 된다. 그러나, 나를 불문으로 인도했던 각진(覺眞) 객승은 여태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칠장사는 더욱 그리움으로 내 추억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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